3월14일 대면 및 화상회의로  “안보환경 대격변기 통일 공감대 확산” 주제로

 

 

민주평통 토론토협의회(회장 유건인)는 지난 314 오후 5안보환경 대격변기 통일 공감대 확산 방안’을 주제로 한 2025년 1분기 정기회의를 온라인 화상 및 오프라인 대면회의(더퍼린 서울관)로 모두 63명의 자문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었다.

 

이날 정기회의는 △개회식 △의견수렴 주제설명 △주제토론 및 발표 △토론토협의회 2025년 주요 통일활동 사업계획 논의 △재무 및 감사보고 △정관 논의 등 순으로 진행됐다.

 

유건인 협의회장은 개회사에서 “현재 민주평통은 유례없는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러한 때일수록 자문위원들은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업들을 차질없이 수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또“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안보환경을 염두에 두어 이번 회의의 주제인 통일 공감대 확산에 대해 다양하고 좋은 방안들을 내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들은 분과위원회별로 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시간에 대외협력분과의 송재환 위원장과 청년분과의 이종명 위원장이 대표로 발표한 내용을 듣고 토론을 가졌다. 두 위원장은 트럼프 2기 출범,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 등으로 인해 변화하는 안보환경 속에서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통일비전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면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토론토협의회는 이날 2025년도 사업 추진방향을 미래·차세대관련 통일활동 사업과 한인 단체와 연계하는 사업 추진으로 정하고, 미래·차세대들이 통일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도록 지원하며 한인사회의 통일 공감대와 통일담론 확산 등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는 또 재무보고와 2024년도 정기감사 실시 결과보고 및 정관에 대한 논의를 가진 후 마쳤다.

 

한편 토론토협의회는 4월12일(토) 오후 4시 토론토한인회관 대강당에서 김영재 토론토 총영사를 초청해 ‘통일정책 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문의: toronto.puac@gmail.com >

반민주주의·권위주의·외국인 혐오 ‘극우 핵심 성분’
윤석열 12·3 비상계엄 ‘명분과 행동’에 모두 포함
윤 처벌 ‘정무적 판단’ 제외시 13~20%가량 추정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8일 저녁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들머리 인근에서 집회를 하며 손팻말과 태극기 등을 흔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한국의 극우’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는 일은 ‘극우’를 정의하는 일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정의가 미국의 극우 연구자 카스 무데의 것이다. 그는 극우의 특징으로 반민주주의, 권위주의 국가관,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추출해냈는데, 그중에서도 ‘반민주주의’를 가장 중요한 성분으로 꼽았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극우’는 ‘12·3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로 판별하는 게 합리적이다. 12·3 비상계엄이야말로 ‘반민주주의’(군을 동원한 헌정질서의 중단)와 ‘권위주의 국가관’(“계엄은 정당한 통치권 행사”)과 ‘외국인 혐오’(“중국 간첩의 국정 교란”) 같은 극우의 핵심 성분을 ‘명분과 행동’ 안에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부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극우’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3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건 ‘탄핵 반대’ 응답층 안에 비상계엄 선포에 부정적이고, ‘서울서부지법 난동’ 같은 극단 행동에도 반대하는 이들이 다수 섞여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평가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처벌의 경중’과 ‘파급 효과’에 대한 ‘정무적 판단’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극우의 판별 기준을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로 좁히면, 그 규모는 유권자의 20% 안팎으로 추산할 수 있다. 한국의 유권자 수를 여기에 대입하면 대략 880만명 안팎이란 계산이 나온다. 참고로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 조사(1월22~23일 1514명 웹조사)에선 13.9%, 시사인-한국리서치 조사(2월3~5일 2천명 웹조사)에선 18%가 계엄 지지자였다. 두 조사에서 계엄에 대한 부정 평가는 각각 72.9%, 73%였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 가운데 참조할 만한 것은 박범섭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지난 2월 동아시아연구원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누가 계엄을 지지하는가?’라는 논문이다. 여기서 박 교수는 “강한 정부를 선호하며,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 지도자에 대한 정서적 양극화가 강한 사람일수록 계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성별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60대 이상은 제외)은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부분은 ‘대통령이 국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강행해야 한다’, ‘국회의 견제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일수록 계엄 지지 비율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극우에 친화적인 국가주의·권위주의 성향이 계엄 지지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아울러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이 큰 집단에서 계엄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이 높게 나타났는데, 연구는 “윤 대통령(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이재명 대표(민주당)를 혐오하는 응답자에서 계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진단한다. ‘윤석열 강성 지지-이재명 강력 혐오’ 집단에선 계엄에 반대하는 응답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박 교수는 통화에서 “정서적 양극화가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시키고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상황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극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황인정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은 2023년 1월 20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웹조사에서 스스로 이념 성향을 극단적 보수에 가깝게 표시한 이들의 특성을 분석한 바 있다. 황 연구원의 결론은 한국에서 스스로를 극우 성향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13% 정도라는 것이다. 이들은 특징은 △한-미 동맹을 강력히 지지하고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으며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 등이었다.

 

황 연구원은 “국민의힘이 서부지법 폭동에 동조한 이들, 탄핵 이후 거리로 나온 극우 성향 유권자들까지도 지지층으로 편입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극우는 국민의힘의 주력부대로 당 내외 정치에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승준 기자 >

 

“헌재 쳐부수자”는 국힘 의원…브레이크 없는 ‘극우화 폭주’

 

김기현,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등이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주최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

 

국민의힘 의원들의 ‘헌정질서 부정’이 도를 넘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격화된 헌법재판소에 대한 폄훼와 흔들기가 급기야 ‘헌재 파괴 선동’으로까지 치달았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제되지 않은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이 줄어들 것이란 세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극우화’의 외길을 따라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모습이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보수성향 기독교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여의도 집회에서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 모두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고 말했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이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집회에 참석해 극우적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적은 있지만, 선관위 같은 독립적 헌법기관과 헌재라는 최고 사법기관에 겨냥해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고 선동한 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김기현·나경원·추경호 등 국민의힘 의원 37명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성태 전 원내대표 등 원외 인사들이 참석했다.

 

경찰 출신인 서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돼 2019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형이 확정됐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었지만, 22대 총선을 앞두고 ‘사면’ 조치로 서 의원에게 공천받을 길을 터준 것도 윤 대통령이었다.

 

같은 날 전광훈씨가 이끄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의 광화문 집회에서는 “불법 탄핵 재판을 주도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을 즉각 처단하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옥중 편지가 낭독됐다. ‘헌법재판관 처단’을 선동하는 내란 주범의 극단 발언이 여과 없이 전파된 것이다. 이 집회에는 박대출·강승규·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함께했다.

 

당 지도부는 서 의원 등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 입장’이란 공식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번엔 너무 나갔다. 당 차원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 지도부 핵심 인사는 “(여당 의원이) 헌재 등을 쳐부수자고 한 것은 선을 한참 넘은 발언이다. 중도층 지지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의원들 발언은 거꾸로 가고 있다. 당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성동 원내대표는 삼일절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집회에) 가고 안 가고는 각자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극우의 미몽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황정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법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극렬 지지층들에 탄핵 불복을 선동하고, 폭동을 사주하고 나섰다”고 비판하며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고 주장한 서천호 의원의 즉각적인 제명을 요구했다.   < 한겨레 서영지 고한솔 기자 >

 

국힘 극우화 8년…두 번의 총선 참패와 윤석열이 ‘폭주 기폭제’

박근혜 탄핵 뒤 황교안 체제-극우 결탁
2020년 총선 패배로 ‘일시적 거리두기’
‘윤석열 포퓰리즘’ 실패에 극우 재활성화
2024년 총선 참패, 내란·탄핵 거치며 폭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한겨레 자료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를 정체의 기본원리로 삼는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다. 군사정권에 뿌리를 둔 권위주의 세력과 영남 기반 자유주의 세력이 연합한 민주자유당(1990~1995년)을 계승한다. 이념적으로 반공·국가주의 성향을 띠면서 경제적으로는 친대기업 노선을 걸었다. ‘북한 변수’의 영향으로 매카시즘적 성향이 도드라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 당을 ‘극우’로 규정하는 이는 드물었다. 권력분립과 법치, 개인의 자유 보장이 핵심인 현행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은 12·3 내란을 거치며 급변했다. 많은 이들이 국민의힘을 ‘극우 정당’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군을 동원한 헌정 파괴 시도를 옹호하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권위를 흔들면서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잠복해 있던 배외주의(반중국)와 소수자 혐오를 키우는 전형적 극우 정당의 행태를 보인 탓이다.

 

 

전조

모든 것을 12·3 내란이라는 ‘정치적 급변사태’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민의힘 극우화’의 기운이 문재인 정부 출범(2017년)을 전후로 싹텄다고 본다. 2016년 총선 패배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새누리당 분당을 거치며 보수정당이 원내 소수파가 되고, 남북 관계의 급속한 해빙과 시민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 등에 자극받은 반공·반북, 극우 개신교 집단이 ‘광장에 결집된 힘’을 등에 업고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던 시기다.

 

변곡점은 2019년 자유한국당 황교안 체제의 등장이었다. 이 체제는 문재인 집권 중반기, ‘보수 몰락’이라는 위기의식 속에 주변부에 머물던 극단주의 세력이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며 주류 보수정당을 압박해가는 흐름 속에 탄생했다. 실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에 본격 돌입한 2019~2020년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취임한 전광훈 목사가 태극기 부대와 함께 전국조직을 만들어 ‘문재인 하야 서명’을 받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2019년 10월부터는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들도 이 흐름에 합류하는데, 당시 전광훈 목사 집회에서 마이크를 쥔 정치인 중에는 김진태 강원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도 있었다.

 

같은 달 25일 전광훈 세력의 광화문 집회에는 황교안 대표가 의원들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해 12월16일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주최한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집회’에는 극우 개신교 세력이 대거 참여해 “목숨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자”는 황교안 대표의 발언에 “아멘”과 “할렐루야”로 화답했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일부 참가자가 국회 본관 난입을 시도해 국회 경비대와 충돌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2017년 5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독자유당·범기독교계 지지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와 손을 잡고 있다. 연합

 

거리두기와 재결합

황교안 체제에서 시작된 ‘극우와의 동거’는 결과가 처참했다.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꿔 치른 2020년 총선에서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다. 황교안 체제가 1년2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섰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전광훈 목사와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극우 손절’에 착수했고,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사회에서 소위 ‘극우’라고 하는 분들, 당은 우리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별’이 아닌 ‘일시적 거리두기’에 불과했다.

 

‘극우화’의 새로운 국면은 윤석열의 대선 도전과 함께 시작됐다. 전광훈 목사는 2022년 1월 교회 설교에서 “윤석열을 통해 정권교체 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으면 가져와 보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시기 윤석열 후보 역시 ‘우파 포퓰리스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윤석열이 가장 공을 들인 작업은 ‘공정과 상식 회복’이란 슬로건 아래 ‘약탈세력’과 ‘국민’으로 사회를 갈라치는 일이었다.

 

윤석열식 포퓰리즘에서 ‘약탈세력’은 리버럴 성향의 86세대 정치인과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정규직 노조, 페미니스트, 진보시민단체, 성소수자와 이주노동자 등 평소 윤석열과 주변 세력이 강한 적대감을 표출해온 집단이었다. 그런 다음 이 약탈세력을 제외한 모든 이를 ‘국민’으로 호명해 제 편으로 끌어모았다. ‘국민’의 핵심은 종합부동산세와 고액 재산세 납부자, 극우 노인층, 대형 교회 신도, 20~30대 남성, 전통적 보수 유권자, 양극화로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이었다. 결과는 0.73%포인트 격차의 초박빙 승리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가 2022년 2월15일 부산 서면에서 지지자의 환호에 어퍼컷(올려치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잠복과 재활성화

문제는 우파 포퓰리즘이 ‘집권 전략’으로는 효과적이었지만, ‘통치’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며 대항 세력을 모으는 것과 국가 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집권 1년차까지는 뚜렷하게 가시화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 국민의힘은 전광훈 세력을 경계하며 그들과 당 내부의 유착 움직임을 과감히 차단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2023년 3월 전광훈 목사 집회에 참석한 김재원 최고위원이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 황교안 전 대표는 전광훈 목사의 공천 청탁 사실을 폭로하며 “(전광훈 세력을)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김재원 전 의원은 국민의힘 1·2·3기 지도부 선거에서 연이어 최고위원에 뽑히며 당의 징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기엔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와 2019년 극우-자유한국당 밀착, 2022년 대선을 거치며 국민의힘에 대거 입당한 극우 개신교와 태극기 세력의 조직화된 움직임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만큼 잠복기는 1년을 채 넘기기 어려웠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전쟁의 언어’로 가득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를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로 규정했다. 그해 경축사의 말들은 “일거에 척결” “처단한다” 등 1년3개월 뒤 비상계엄 담화와 포고문에 등장할 ‘절멸의 언어’의 예고편이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집권 초엔 공정을 강조하며 민생을 챙기겠다더니, 통치가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야당을 탓하며 이념적 내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했다. 지지율 하락과 거대 야당과의 갈등, 그로 인한 국정 교착이 장기화하자 잠복했던 극우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된 것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23년 3월12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에서 열린 주일예배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와 보수 유튜버 신혜식씨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광훈 목사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너알아TV’ 갈무리

 

참패와 혼돈

극우화가 윤석열 대통령 탓만은 아니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대통령의 생각과 행동을 집권 여당이 제어하지 못한 게 뼈아팠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극우화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쪽을 택했는데, “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했던 2023년 8·15 경축사에 대한 국민의힘 논평이 이를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는 대선과 당직 선거를 거치며 당 전체가 친윤석열계 일색으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과 대립하던 이준석 대표가 2022년 7월 당대표에서 축출됐고, 2023년 3월 전당대회 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압박 속에 당권 레이스에서 강제 하차했다. 이런 기형적 ‘당정일체’ 시스템 아래서 당의 모든 의사결정은 윤석열·김건희의 ‘부부 의지’에 좌우됐다.

 

결과는 또 한번의 총선 참패였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는데, 이 가운데 부산·울산·경남이 34석, 대구·경북이 25석으로 영남 지역구 의원이 당 전체 의석의 54.6%를 채웠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내에 진입한 의원이 영남권에 편중된 것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국민의 평균적 요구 대신 영남권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면서 당의 극우화를 제어할 역량 자체가 거세돼 버렸다는 것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와 함께 2월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한 뒤 취재진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내란과 폭주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일본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분석한 ‘전전(戰前) 일본의 통치 메커니즘’과 비슷했다. 여기서 권력은 ‘천황’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분배됐는데, 이 시스템의 특징은 권력을 분배받아 행사하는 주체들이 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자기 내부’에 갖기보다 ‘중심(천황)과의 거리(근접성)’에 의존한다는 데 있었다.

 

국민의힘 역시 각 주체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크기는 중심(윤석열 부부)과의 근접도에 비례했다. 문제는 이 시스템에선 중심이 사라지거나 약화될 경우 각 단계의 권력이 중심을 추종해온 하부로부터의 압력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게 된다는 데 있었다. 12·3 내란 뒤 국민의힘의 모습이 그랬다. ‘윤석열 없는 친윤계’는 사라진 권위와 권력을 안으로부터 새롭게 만들어 채워나가기보다, 폭민화된 윤석열 추종세력에 올라타 붕괴 위기의 통치 레짐을 지켜나가려고 했다. 그 결과는 ‘극우의 주류화’였다.

 

일련의 과정은 12·3 내란 이후 정국의 전개 상황을 살피면 명확해진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12·3 내란 사태의 전개를 5개의 국면으로 정리하는데, 1국면은 12월3일 집권세력의 친위 쿠데타 시도와 국회·시민의 방어행동이 펼쳐진 시기다. 2국면은 계엄 해제 뒤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최대 합의가 일시적으로 형성된 시기, 3국면은 국회의 탄핵으로 제도적 권력 자원을 상실한 윤석열이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헌법기관 공격을 선동하는 단계다. 4국면은 극우의 대규모 결집과 법원 폭동 등 극우 테러가 본격화하는 시기, 5국면은 국민의힘이 극우세력의 폭력 선동에 동참함으로써 파시즘 경향을 강화하는 단계다.

 

국민의힘 김기현, 추경호 의원 등이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주최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

 

파국이냐 회생이냐

12·3 내란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하지 않을뿐더러,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압살하려는 집단이 한국 사회에 상당 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극우 사회세력과 보수 정치세력의 동맹이 심각한 단계까지 진전됐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한국 보수정당의 구조적·이념적 취약성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처럼 보수 정치세력과 극우 사회세력의 동맹이 유지되면서 집권에까지 이를 경우 한국 사회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파국’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을 막는 길은 보수 정치세력을 극우 사회집단으로부터 격리하는 것, 국민의힘의 ‘보수정당화’다. 이 목표를 국민의힘의 의지만으로 성취하기란 무망한 일이다. 정당의 체질 혁신은 내부의 자구노력과 경쟁 정치세력의 충격, 사회의 집요한 압력이 합쳐질 때 완수될 수 있음을 세계 정당사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 한겨레 이세영 신민정 기자 >

 

 

박근혜 탄핵 뒤 황교안 체제-극우 결탁

2020년 총선 패배로 ‘일시적 거리두기’
‘윤석열 포퓰리즘’ 실패에 극우 재활성화
2024년 총선 참패, 내란·탄핵 거치며 폭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한겨레 자료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를 정체의 기본원리로 삼는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다. 군사정권에 뿌리를 둔 권위주의 세력과 영남 기반 자유주의 세력이 연합한 민주자유당(1990~1995년)을 계승한다. 이념적으로 반공·국가주의 성향을 띠면서 경제적으로는 친대기업 노선을 걸었다. ‘북한 변수’의 영향으로 매카시즘적 성향이 도드라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 당을 ‘극우’로 규정하는 이는 드물었다. 권력분립과 법치, 개인의 자유 보장이 핵심인 현행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은 12·3 내란을 거치며 급변했다. 많은 이들이 국민의힘을 ‘극우 정당’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군을 동원한 헌정 파괴 시도를 옹호하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권위를 흔들면서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잠복해 있던 배외주의(반중국)와 소수자 혐오를 키우는 전형적 극우 정당의 행태를 보인 탓이다.

 

 

전조

모든 것을 12·3 내란이라는 ‘정치적 급변사태’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민의힘 극우화’의 기운이 문재인 정부 출범(2017년)을 전후로 싹텄다고 본다. 2016년 총선 패배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새누리당 분당을 거치며 보수정당이 원내 소수파가 되고, 남북 관계의 급속한 해빙과 시민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 등에 자극받은 반공·반북, 극우 개신교 집단이 ‘광장에 결집된 힘’을 등에 업고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던 시기다.

 

변곡점은 2019년 자유한국당 황교안 체제의 등장이었다. 이 체제는 문재인 집권 중반기, ‘보수 몰락’이라는 위기의식 속에 주변부에 머물던 극단주의 세력이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며 주류 보수정당을 압박해가는 흐름 속에 탄생했다. 실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에 본격 돌입한 2019~2020년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취임한 전광훈 목사가 태극기 부대와 함께 전국조직을 만들어 ‘문재인 하야 서명’을 받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2019년 10월부터는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들도 이 흐름에 합류하는데, 당시 전광훈 목사 집회에서 마이크를 쥔 정치인 중에는 김진태 강원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도 있었다.

 

같은 달 25일 전광훈 세력의 광화문 집회에는 황교안 대표가 의원들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해 12월16일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주최한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집회’에는 극우 개신교 세력이 대거 참여해 “목숨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자”는 황교안 대표의 발언에 “아멘”과 “할렐루야”로 화답했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일부 참가자가 국회 본관 난입을 시도해 국회 경비대와 충돌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2017년 5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독자유당·범기독교계 지지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와 손을 잡고 있다. 연합

 

거리두기와 재결합

황교안 체제에서 시작된 ‘극우와의 동거’는 결과가 처참했다.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꿔 치른 2020년 총선에서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다. 황교안 체제가 1년2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섰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전광훈 목사와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극우 손절’에 착수했고,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사회에서 소위 ‘극우’라고 하는 분들, 당은 우리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별’이 아닌 ‘일시적 거리두기’에 불과했다.

 

‘극우화’의 새로운 국면은 윤석열의 대선 도전과 함께 시작됐다. 전광훈 목사는 2022년 1월 교회 설교에서 “윤석열을 통해 정권교체 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으면 가져와 보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시기 윤석열 후보 역시 ‘우파 포퓰리스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윤석열이 가장 공을 들인 작업은 ‘공정과 상식 회복’이란 슬로건 아래 ‘약탈세력’과 ‘국민’으로 사회를 갈라치는 일이었다.

 

윤석열식 포퓰리즘에서 ‘약탈세력’은 리버럴 성향의 86세대 정치인과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정규직 노조, 페미니스트, 진보시민단체, 성소수자와 이주노동자 등 평소 윤석열과 주변 세력이 강한 적대감을 표출해온 집단이었다. 그런 다음 이 약탈세력을 제외한 모든 이를 ‘국민’으로 호명해 제 편으로 끌어모았다. ‘국민’의 핵심은 종합부동산세와 고액 재산세 납부자, 극우 노인층, 대형 교회 신도, 20~30대 남성, 전통적 보수 유권자, 양극화로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이었다. 결과는 0.73%포인트 격차의 초박빙 승리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가 2022년 2월15일 부산 서면에서 지지자의 환호에 어퍼컷(올려치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잠복과 재활성화

문제는 우파 포퓰리즘이 ‘집권 전략’으로는 효과적이었지만, ‘통치’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며 대항 세력을 모으는 것과 국가 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집권 1년차까지는 뚜렷하게 가시화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 국민의힘은 전광훈 세력을 경계하며 그들과 당 내부의 유착 움직임을 과감히 차단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2023년 3월 전광훈 목사 집회에 참석한 김재원 최고위원이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 황교안 전 대표는 전광훈 목사의 공천 청탁 사실을 폭로하며 “(전광훈 세력을)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김재원 전 의원은 국민의힘 1·2·3기 지도부 선거에서 연이어 최고위원에 뽑히며 당의 징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기엔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와 2019년 극우-자유한국당 밀착, 2022년 대선을 거치며 국민의힘에 대거 입당한 극우 개신교와 태극기 세력의 조직화된 움직임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만큼 잠복기는 1년을 채 넘기기 어려웠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전쟁의 언어’로 가득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를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로 규정했다. 그해 경축사의 말들은 “일거에 척결” “처단한다” 등 1년3개월 뒤 비상계엄 담화와 포고문에 등장할 ‘절멸의 언어’의 예고편이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집권 초엔 공정을 강조하며 민생을 챙기겠다더니, 통치가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야당을 탓하며 이념적 내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했다. 지지율 하락과 거대 야당과의 갈등, 그로 인한 국정 교착이 장기화하자 잠복했던 극우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된 것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23년 3월12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에서 열린 주일예배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와 보수 유튜버 신혜식씨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광훈 목사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너알아TV’ 갈무리

 

참패와 혼돈

극우화가 윤석열 대통령 탓만은 아니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대통령의 생각과 행동을 집권 여당이 제어하지 못한 게 뼈아팠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극우화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쪽을 택했는데, “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했던 2023년 8·15 경축사에 대한 국민의힘 논평이 이를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는 대선과 당직 선거를 거치며 당 전체가 친윤석열계 일색으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과 대립하던 이준석 대표가 2022년 7월 당대표에서 축출됐고, 2023년 3월 전당대회 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압박 속에 당권 레이스에서 강제 하차했다. 이런 기형적 ‘당정일체’ 시스템 아래서 당의 모든 의사결정은 윤석열·김건희의 ‘부부 의지’에 좌우됐다.

 

결과는 또 한번의 총선 참패였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는데, 이 가운데 부산·울산·경남이 34석, 대구·경북이 25석으로 영남 지역구 의원이 당 전체 의석의 54.6%를 채웠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내에 진입한 의원이 영남권에 편중된 것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국민의 평균적 요구 대신 영남권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면서 당의 극우화를 제어할 역량 자체가 거세돼 버렸다는 것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와 함께 2월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한 뒤 취재진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내란과 폭주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일본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분석한 ‘전전(戰前) 일본의 통치 메커니즘’과 비슷했다. 여기서 권력은 ‘천황’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분배됐는데, 이 시스템의 특징은 권력을 분배받아 행사하는 주체들이 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자기 내부’에 갖기보다 ‘중심(천황)과의 거리(근접성)’에 의존한다는 데 있었다.

 

국민의힘 역시 각 주체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크기는 중심(윤석열 부부)과의 근접도에 비례했다. 문제는 이 시스템에선 중심이 사라지거나 약화될 경우 각 단계의 권력이 중심을 추종해온 하부로부터의 압력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게 된다는 데 있었다. 12·3 내란 뒤 국민의힘의 모습이 그랬다. ‘윤석열 없는 친윤계’는 사라진 권위와 권력을 안으로부터 새롭게 만들어 채워나가기보다, 폭민화된 윤석열 추종세력에 올라타 붕괴 위기의 통치 레짐을 지켜나가려고 했다. 그 결과는 ‘극우의 주류화’였다.

 

일련의 과정은 12·3 내란 이후 정국의 전개 상황을 살피면 명확해진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12·3 내란 사태의 전개를 5개의 국면으로 정리하는데, 1국면은 12월3일 집권세력의 친위 쿠데타 시도와 국회·시민의 방어행동이 펼쳐진 시기다. 2국면은 계엄 해제 뒤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최대 합의가 일시적으로 형성된 시기, 3국면은 국회의 탄핵으로 제도적 권력 자원을 상실한 윤석열이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헌법기관 공격을 선동하는 단계다. 4국면은 극우의 대규모 결집과 법원 폭동 등 극우 테러가 본격화하는 시기, 5국면은 국민의힘이 극우세력의 폭력 선동에 동참함으로써 파시즘 경향을 강화하는 단계다.

 

국민의힘 김기현, 추경호 의원 등이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주최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

 

파국이냐 회생이냐

12·3 내란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하지 않을뿐더러,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압살하려는 집단이 한국 사회에 상당 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극우 사회세력과 보수 정치세력의 동맹이 심각한 단계까지 진전됐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한국 보수정당의 구조적·이념적 취약성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처럼 보수 정치세력과 극우 사회세력의 동맹이 유지되면서 집권에까지 이를 경우 한국 사회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파국’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을 막는 길은 보수 정치세력을 극우 사회집단으로부터 격리하는 것, 국민의힘의 ‘보수정당화’다. 이 목표를 국민의힘의 의지만으로 성취하기란 무망한 일이다. 정당의 체질 혁신은 내부의 자구노력과 경쟁 정치세력의 충격, 사회의 집요한 압력이 합쳐질 때 완수될 수 있음을 세계 정당사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 한겨레 이세영 신민정 기자 >

 

“헌재 쳐부수자”는 국힘 의원…브레이크 없는 ‘극우화 폭주’

 

 
 
김기현,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등이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주최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

 

국민의힘 의원들의 ‘헌정질서 부정’이 도를 넘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격화된 헌법재판소에 대한 폄훼와 흔들기가 급기야 ‘헌재 파괴 선동’으로까지 치달았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제되지 않은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이 줄어들 것이란 세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극우화’의 외길을 따라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모습이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보수성향 기독교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여의도 집회에서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 모두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고 말했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이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집회에 참석해 극우적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적은 있지만, 선관위 같은 독립적 헌법기관과 헌재라는 최고 사법기관에 겨냥해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고 선동한 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김기현·나경원·추경호 등 국민의힘 의원 37명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성태 전 원내대표 등 원외 인사들이 참석했다.

 

경찰 출신인 서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돼 2019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형이 확정됐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었지만, 22대 총선을 앞두고 ‘사면’ 조치로 서 의원에게 공천받을 길을 터준 것도 윤 대통령이었다.

 

같은 날 전광훈씨가 이끄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의 광화문 집회에서는 “불법 탄핵 재판을 주도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을 즉각 처단하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옥중 편지가 낭독됐다. ‘헌법재판관 처단’을 선동하는 내란 주범의 극단 발언이 여과 없이 전파된 것이다. 이 집회에는 박대출·강승규·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함께했다.

 

당 지도부는 서 의원 등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 입장’이란 공식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번엔 너무 나갔다. 당 차원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 지도부 핵심 인사는 “(여당 의원이) 헌재 등을 쳐부수자고 한 것은 선을 한참 넘은 발언이다. 중도층 지지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의원들 발언은 거꾸로 가고 있다. 당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성동 원내대표는 삼일절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집회에) 가고 안 가고는 각자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극우의 미몽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황정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법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극렬 지지층들에 탄핵 불복을 선동하고, 폭동을 사주하고 나섰다”고 비판하며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고 주장한 서천호 의원의 즉각적인 제명을 요구했다.  < 서영지 고한솔 기자 >

 

‘비상계엄 근거’ 부정선거론 “증거 없다”면서…국힘 당원들 ‘이재명 탓’

국민의힘 당원 3인의 ‘계엄 지지’ 이유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서울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는 국민의힘의 40대 여성 당원 이아무개씨는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유를 묻자 “야당이 줄탄핵에 예산삭감으로 정부를 마비시키지 않았나?”라며 “진짜 내란범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7~10일 한겨레와 인터뷰한 다른 국민의힘 당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거대 야당, 민주당의 횡포”를 지적하며, “윤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비상계엄’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2023년 국민의힘 당원에 가입했다는 윤성열(35)씨는 지난해 12월3일 전까지는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탄핵반대 청년연대’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윤씨는 비상계엄 선포 당일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국정을 마비시키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반국가세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비상계엄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응원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말처럼 ‘반국가세력’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비상계엄 선포였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원이 된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유아무개씨도 비슷했다. 그는 처음 계엄령 발동 소식을 접했을 때 “간첩을 잡았나 싶었다”고 한다. 국내 정치 상황으로 계엄을 선포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 담화를 듣고 “그 심정을 이해했다”고 한다. 그는 “윤 대통령을 평소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투표로 뽑힌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며 “야당이 줄탄핵에 정부 운영에도 사사건건 비협조적이지 않았느냐. 나였어도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한덕수 총리도 탄핵하고, 걸핏하면 탄핵으로 겁박하고 있다. 벌써 여당이 된 것처럼 그러는데, 그 모습을 보기 싫어서라도 탄핵에 반대한다”고 했다.

 

앞서 인용한 40대 당원 이씨는 “탄핵 문제는 ‘체제의 전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탄핵이 인용되면 국가 성장을 방해하는 세력이 더 활개를 치고, 정말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60대 윤씨 역시 “행정부 운영을 마비시킬 정도의 줄탄핵과 예산 삭감이 있었지 않았나.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는데 민주당이 무조건적으로 방해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비상계엄은 대통령 입장에선 당연한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한겨레 자료

 

이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선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유씨는 “앞뒤 말이 다르다. 대통령이 되면 또다시 반대 세력을 숙청하려 할 건데, 나라가 계속 시끄럽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도 민주당이 장악하고, 대통령도 이 대표가 하면 정말 나라를 마음대로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이재명처럼 거짓말하고 앞뒤가 다른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작은 사업도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의 불신과 적대감이 야당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법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으로까지 향해 있다는 점이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 이후 지속적으로 전파해온 메시지들의 효과로 보였다.

 

윤씨는 “공수처는 권한도 없는 수사를 하며 대통령을 불법 체포하려 했고, 법원 역시 수사 권한이 없는데도 영장을 발부했다”며 “헌재는 재판 진행 과정이나, 재판관들의 성향을 보면 공정한 법 집행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편향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씨는 ‘서부지법 난동 사태’에 대해 “난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극우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건 맞지 않은 것 같다”며 “나라를 위해, 애국심으로 낸 목소리를 과잉 진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했다. 유씨는 “입장 바꿔놓고 내가 재판을 받는데, 판사가 저쪽 편이라는 생각이 들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탄핵반대 세력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해선 세 사람 모두 “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의혹이 커진 게 사실이니, 문제를 확인하고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손현수 기자 >

 

‘권력형 개소리’…계엄 지지 극우의 파시즘 선동 [.txt]

보수우파와 달리 민주주의 ·헌정질서 파괴

친일·반공에 뿌리…12·3 계엄 올라타 급팽창

‘정변 불능’ 믿음 뒤엎고 민주정 취약성 일깨워

 

미국 영화 ‘조커’의 주인공 광대로 분장한 한 극우 유투버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 정문 앞에서 탄핵 촉구 기자회견 중인 학생들을 향해 차량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소리치고 있다. 12·3 계엄 사태는 한국의 극우세력이 반민주적 폭력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사진가 박민석 제공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직무 정지)의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시민과 국회의 긴박한 대응으로 좌절된 이후 한국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심리적 내전’이란 말이 나올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한국 극우세력의 조직적 결집과 준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계엄(戒嚴)’은 한자 말로만 보면 그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계엄은 군대가 행정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행사하며 국민 기본권을 제약하는 군사 통치다. 영어로 ‘계엄령’을 뜻하는 ‘martial law’는 “일반법의 정지를 포함하는 군정 체제(military government, involving the suspension of ordinary law,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다.

 

“12·3 이후 우리 사회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오게 됐다”, “지금 상황은 극우의 차원도 넘어선 파시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보수집단의 극우화에 주목해온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진단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 극우는 민주화 이후 ‘조직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집단행동의 대중화’ 단계를 거쳤고, 12·3 계엄 사태 이후에는 내란에 동참(‘반란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석열 지지자들의 행태는 학자들이 설명하는 ‘극우’ 개념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극우는 보수 우파와 어떻게 다른가? 그에 앞서, 좌파와 우파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그 핵심적 차이는 불평등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극우와 포퓰리즘 연구의 권위자인 카스 무데(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익 성향은 불평등이 인간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긍정적 현상이므로 정부는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보는 반면, 좌익 성향은 (불평등이) 인위적·부정적 현상이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없애려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주류 우익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에 적대적인 ‘반체제 성향’의 우익을 나는 ‘극우’라고 부른다.”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위즈덤하우스, 2021)

 

민주주의의 가치와 극우·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의 일부. ©한겨레

 

극우는 단순한 보수주의를 넘어선다. 극우의 사전적 의미는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성향. 또는 그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표준국어대사전)이다. 학계에서는 단순 우파와 극우의 본질적 차이를 헌정 체제의 인정 여부로 본다. 카스 무데는 극우를 다시 ‘급진 우익’(radical right)과 ‘극단 우익’(extreme right)으로 구별했다.

 

“극단 우익은 민주주의의 본질인 국민 주권과 다수 통치를 거부한다. 대표적 예가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쥐여준 파시즘이다.”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극우는 배타적 국수주의, 권위주의적 성향, 사회적 소수자 혐오, 가짜뉴스와 음모론 의존, 포퓰리즘 성향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국 극우의 뿌리는 해방 이후 친일파 잔존 세력과 냉전·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반공 이념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지지 세력이 보수층으로 자리 잡았고, 200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극우 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 극렬한 반정부 운동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2024년 12·3 계엄 사태는 한국 극우 성장사의 결정적 변곡점이 됐다. 윤석열과 그의 지지자들은 뜬금없는 계엄의 명분을 국회 다수당인 야당(민주당)과 반국가세력, 북한과 중국 간첩, 그리고 부정선거 탓으로 돌렸다. 근거는 없으나 믿음이 넘쳤고, 부족한 설득력을 선동으로 채웠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괴물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 (…)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윤석열, 2024년 12·3 계엄 선포)

 

“대한민국을 붕괴시키는 저들(민주당)이야말로 암흑의 세력, 어둠의 세력, 내란세력.”(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2024년 12월28일 광화문 집회)

 

“비상계엄 당일 계엄군은 미군과 공동작전으로 선거연수원을 급습해 중국 국적자 99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 체포된 중국인 간첩들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이송됐다.”(1월16일, 극우 인터넷매체 스카이데일리)

 

이러한 억지 주장과 극우 인터넷 매체의 가짜뉴스가 결합하면서,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극우 세력의 집단적 결속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내부에서 부풀어 오른 ‘열정’은 외부의 ‘적’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터져 나왔다.

 

“진실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파멸은 기성 언론이 거짓되거나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 사람만은 ‘진짜 사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한다. 지지자들은 그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를 믿기 때문에 그를 믿는다.” ―‘극우, 권위주의, 독재’(루스 벤 기앳 지음, 글항아리, 2025)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실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전적 폭정이 시민들을 단순히 억압하며 침묵시킨 것과 달리, 대중의 열정을 끌어모아 내적 정화와 외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향해 국민적 집결을 강화하는 데로 돌리는 기술을 찾아냈다.” ―‘파시즘’(로버트 팩스턴 지음, 교양인, 2005)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지난 1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사회는 1987년 이후 점진적이나마 꾸준히 민주화와 다원화 사회로 나아갔다. 군사 쿠데타나 계엄 같은 정치 후진국형 정변은 다시 없을 거란 믿음이 확고해 보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국에서도 극우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집단 여럿이 존재해왔다. 해방 이후 반공을 기치로 활동한 정치세력부터, 특정 지역과 여성 혐오를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시킨 일간베스트(일베)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 이승만·박정희 권위주의 정권 시대를 향수의 대상으로 삼고 그 연장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맞불 집회인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 극우 기독교 세력으로 불리는 전광훈씨를 주축으로 동성애·이민자·난민을 공격하는 세력까지 다양하다.” ―‘누가 한국의 극우인가? 한국 극우의 특징과 정치적 함의’(황인정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선임연구원, 한국정치정보학회, ‘정치정보연구’, 2024년 6월)

 

위 논문이 발표된 지 불과 6개월 뒤, 한국의 극우는 윤석열 계엄과 탄핵심판이라는 ‘예외 상태’를 자양분 삼아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윤석열 계엄은 헌정 파괴도 불사하는 극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아래 막말들은 차고 넘치는 사례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같은 평화 집회로 탄핵을 막을 수 있을까.(…) 지금쯤이면 곳곳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지며, 횃불과 가스통이 집회에 등장해야 정상이다.”(한정석 전 선거방송심의위원, 2월 22일 페이스북 게시글)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모두 때려 부숴야 됩니다. 쳐부수자!”(서천호 국민의힘 의원, 3월1일 서울 광화문 집회)

 

“문형배, 정계선, 이미선(민주당 추천 헌법재판관), 야 이 개××들아 당장 멈춰라. 대통령을 탄핵하면 나한테 죽어.”(오영석 목사, 3월1일 서울 광화문 집회)

 

“불법 탄핵 재판을 주도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을 즉각 처단하자.”(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구속 수사 중 옥중서신)

 

‘처단’이라는 단어는 12·3 계엄포고령에도 나온다.

“포고령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내란 세력이 말한 ‘처단’이 불법체포와 살해도 서슴지 않는다는 끔찍한 사실이 내란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12·3 계엄의 설계자인 민간인 노상원(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는 ‘수거 대상 처리안’이라는 항목에 “연평도 이송”, “이동 간 적정한 곳에서 폭파”, “확인 사살” 같은 메모가 적혔다.

 

2025년 1월 19일 새벽, 윤석열 지지자들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직무정지)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겠다며 서울 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해 폭동을 벌였다. 한겨레 뉴스룸 동영상 갈무리

 

앞서 1월19일 새벽 3시께, 윤석열 극렬 지지자 수백명이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겠다며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했다.

 

우리 헌정사에서 사법부를 겨냥한 전례 없는 집단 폭력이었다. 꼭 4년 전인 2021년 1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패배 결과에 불복해 지지자들을 선동하자 2천여명이 폭도로 돌변한 연방의회 의사당 습격 사건의 판박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극단주의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등장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런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 막을 수 있는가이다.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어크로스, 2018)

 

위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들의 진단을 적용하자면, 집권당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권은 이미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불통의 정치, 뉴라이트 중용, 검찰권의 무기화, 공영방송 장악 시도, 계엄선포권 오용 등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근거는 많다.

 

“일단 잠재적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는 두 번째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제도가 그를 통제할 것인가? (…) 선출된 독재자는 사법부를 비롯한 중립기관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거나 무기로 활용하고 (…)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한국 극우의 핵심 집단 중 하나가 개신교 일부의 극단적 보수 성향 분파다. 배덕만 목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선임연구원)는 “전체적으로 한국 교회는 근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고 말한다.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은 극우파의 특징으로 ①극도의 편협성과 폐쇄성 ②편 가르기의 비열성 ③상대방을 정복·타도·파멸하려는 목표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드러난 개신교 극우파의 언동에서도 드러난다.

 

“2030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탄핵 반대 운동을 펼치는 수확을 거뒀다. 계엄령이 ‘신의 한 수’가 됐다.”(1월27일, 김진홍 목사,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판사 검사들이요, 야 이 개××들아! 공수처 너희들 용서 못 해. 헌법재판소를 해체하겠습니다.”(3월4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사법 절차를 지키지 않는 헌법재판소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3월4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담임목사, 세이브코리아 대표)

 

지난 1월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왼쪽)가 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가운데)이 참석해 전 목사에게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MBC TV 뉴스 갈무리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신학적 근본주의가 정치적 극단주의로 변모했을까? 배덕만 목사는 불안과 공포, 기형적 신학, 지성의 상실 등 세 가지를 꼽았다.

 

“19세기 후반 이후 꾸준히 입국한 미국의 보수적 장로교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도 근본주의적 성경론과 종말론이 일찍부터 유행했다. 이런 신학적 근본주의는 한국 근대사의 격랑을 통과하며 특정한 정치적·경제적 이념과 결합해 자신의 범주와 특성을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 특히 해방 전 한국 교회의 70퍼센트 이상이 있었던 평안도, 황해도, 북간도의 교인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갈등 후 대거 월남해, 반공을 국시로 내건 극우 정권을 끝까지 지지했다. 반공주의는 근본주의 신학과 함께 한국 교회의 핵심 도그마로 뿌리내렸다.”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배덕만 외 5명 지음, 한국교회탐구센터, 2021)

 

계엄·탄핵 정국에서 한국 극우는 가짜뉴스를 생산, 확산, 신봉하고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우기는 행태도 도드라졌다. 2월1일, 개신교 우파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연 집회에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비상계엄은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계몽령’”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극우 집단에선 ‘계엄=계몽’이라는 궤변이 화두처럼 확산했다. 급기야 윤석열 탄핵심판의 변호인단에서도 ‘계몽 간증’이 나왔다.

 

“임신·출산·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더불어)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일당독재의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계몽되었습니다.”(김계리 변호사, 2월25일 헌법재판소 최종변론)

 

계몽.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표준국어대사전)이란 뜻이다. 같은 뜻의 영어 단어 ‘인라이튼먼트’(enlightenment)는 ‘빛을 비추다’(en + light)라는 어근에서 왔다. 그 빛이 계엄 선포 직후 국회를 침탈한 계엄군 헬기의 서치라이트와 특전사 군인들의 플래시 불빛일까, 계엄령이라는 두려움과 모멸감을 딛고 강추위 속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 2030 청년과 시민들의 응원봉 불빛일까.

 

2025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집회에서 응원봉을 든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한국 극우의 몽상에 가까운 독선과 타자 혐오, 가짜뉴스 맹신은 반지성주의적이라는 혐의를 받는다. 반지성주의는 지식수준이나 학력과는 상관이 없다.

 

“반지성주의는 지적인 삶과 그것을 대표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혹(…), 그러한 삶의 가치를 늘 극소화하려는 경향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교유서가, 2017)

 

“반지성주의의 핵심은 지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에서 지성의 작용에 대해 모멸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있다. (…) 정치권력은 우민화 정책을 실행하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정을 권력의 차원으로 끌어들인다.”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중 시라이 사토시의 글(우치다 다쓰루 엮음, 이마, 2016)

 

미국의 도덕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짧고 강렬한 에세이에서 ‘개소리(bullshit)’와 ‘거짓말(lie)’을 구별한다. 둘 다 “부정확한 전달 또는 기만의 양상”이지만 개소리에는 “기만하려는 기획 의도”가 있으며, “자기 말이 맞든 틀리든 그 진릿값은 중심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 (…)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개소리에 대하여’(필로소픽, 2023년 개정판)

 

윤석열이 내세운 계엄의 명분, 한국 극우가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며 쏟아내는 주장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권력형 개소리는 자신이 진리보다, 타인보다 힘의 우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데서 비롯한다. (…) 권력형 개소리는 진리에 대한 무시와 타자에 대한 멸시라는 이중적 악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일반적 개소리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다.” ―‘개소리에 대하여’ 옮긴이의 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전광훈은 윤석열 탄핵 반대와 헌법재판소 공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국민저항권’을 외친다.

 

“국민저항권은 헌법 위에 있다. 국민저항권이 발동됐기 때문에 우리가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도 있다.”(1월19일 서울 광화문 집회)

 

극우화하고 있는 보수우파 일부 세력이 이른바 ‘계몽령’과 ‘국민저항권’을 주장하는 것은 적반하장과 아전인수격 궤변의 생생한 실례다. 국민저항권의 참뜻은 선출된 정치권력이나 공권력의 행사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독재로 변질될 때 국민이 그에 맞서 저항할 권리다. 윤석열의 반헌법적 비상계엄과 그 지지자들이 내란 상태를 지속하려는 시도야말로 국민저항권의 대상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저항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책임이다. 하지만 저항의 목표는 권리와 제도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앞서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 선고에서, ‘저항권’ 행사의 세 가지 필수 요건을 명시했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 또는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하며,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 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한다.” (2013헌다1,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12·3 계엄 사태는 민주화 성취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도 어렵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 전문가인 미국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예일대 교수)가 민주정의 취약성을 경고한 통찰은 곱씹을 만하다.

 

“우리가 참된 것과 매력적인 것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때 권위주의가 시작된다. (…) 파시즘은 지도자가 선택한 적이 모든 국민의 적이어야 한다는 거짓말이다. 그러면 정치가 감정과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평화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부키, 2019)         < 한겨레 조일준 기자 >

 “윤 파면 후 조기 대선은 헌정질서 수호 ‘민주헌정주의’와 ‘반헌정주의’ 싸움돼야"

[인터뷰]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안병진 경희대 교수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12·3 내란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헌정주의 기초가 무너지고 초법적 폭력에 의존하는 세력들이 계속 존재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처럼 한국도 언제든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가 다시 집권할 수 있다. 그때는 윤석열보다 훨씬 유능한 사람이 돌아올 것이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찻집에서 만난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12·3 내란 이후의 정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보였다. 미국 정치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그는 “한국도 미국처럼 헌정질서가 위협받는 ‘차가운 내전’ 또는 ‘유사 내전’이 빈발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펼쳐질 조기 대선은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민주헌정주의’와 ‘반헌정주의’의 싸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우의 부상 움직임이 심각하다.

 

“윤 대통령 당선 뒤 ‘검찰 통치’가 국정 전반의 운영 원리가 되고, 행정권력을 이용한 권위주의적 통치가 강화됐다. 권위주의 통치와 독재, 파시즘 사이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한국은 그 경계를 일거에 뛰어넘어 극우 파시즘 단계에 들어섰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더 초법적이고 파쇼화되는 세계적 흐름이 한국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한국은 이미 미국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백인 노동계급의 박탈감, 이민자 혐오 같은 극우화 토양이 약하지 않나?

 

“트럼프가 지난달 에스엔에스에 “조국을 구하는 사람은 그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올렸다. 행정 수반이 초법적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지난 4일 상·하원 합동연설에선 ‘급진적인 좌파 미치광이들’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최후진술과 내용이 유사하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2021년 1월 미국 의사당 폭동 때도 폭력을 정당화했다. 윤석열과 그 지지층이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정당화하는 것도 비슷하다. 미국의 이민자 혐오처럼 한국 극우도 중국이라는 새로운 적을 만들고 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 뒤 국민의힘은 극우 세력을 끌어안는 모습이다.

 

“미국 공화당은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트럼프를 내세우고 다들 그에게 엎드렸다. 국민의힘도 선거 승리의 길을 찾는 과정에서 ‘아웃사이더’ 윤석열이 들어왔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차지한 것처럼 윤석열 앞에 국민의힘도 엎드렸다. 이게 정치를 악화시켰다. 물론 국민의힘이 진짜 윤석열을 믿고 따르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은 광장의 강경 세력 지지를 흡수하는 게 이득이 된다고 본 것이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카페에서 12·3 내란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대선이 열리면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닌 ‘민주헌정주의 대 반헌정주의’ 싸움을 시대정신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헌정주의의 핵심은 헌법과 적법 절차에 따른 대통령의 국정운영, 선거 결과 승복, 언론·출판·표현의 자유, 개인의 권리 보장 등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계엄을 반대하고 탄핵을 찬성하는 세력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보수라도 헌정주의에 동의한다면 내치지 말고 연대해야 한다. 그렇다고 헌정 수호에만 머무를 순 없다. 더 나은 민주공화국이 되길 바라는, 사회대개혁을 꿈꾸는 광장의 목소리도 대변해야 한다.”

 

―대선 이후 ‘극우의 주류화’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민주헌정주의 세력이 당선된다면 대연합의 정신 속에서 국정운영이 이뤄져야 한다. 사회대개혁위원회나 미래전략위원회 같은 조직을 초당적으로 설치해 공통의 의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극단적 폭력에 기대는 세력에는 단호한 법의 지배를 보여줘야 한다. 극단적 세력이 대통령제를 오용할 수 없게 하려면 다당제 연합 정치를 위한 결선투표제 도입도 추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시민의 광범위한 참여에 의한 더 큰 개혁과 개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이승준 기자 >

 

조갑제 “윤 대통령 복귀하면 공화국 무너지는 것”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유튜브 갈무리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파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대표는 14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헌재의 감사원장과 검사 3명에 대한 (탄핵) 기각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전원일치 탄핵인용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관들이 여타 탄핵심판 선고에서 정치 성향 구분 없이 만장일치 결론을 내린 만큼, 이런 흐름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조 대표는 “자꾸 보수 성향 헌법재판관들이 탄핵 기각 쪽으로 설 거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 보는 것”이라며 “보수 성향이라는 것은 헌법 수호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탄핵 기각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을 복귀시켜서 국군 통수권을 행사토록 하면 앞으로 수시로 계엄령을 하라는 면허증을 주는 것”이라며 “그러면 공화국은 무너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군을 통솔할 수 있겠느냐. 군 장교단이 윤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겠느냐”며 “그것까지 다 고려한다면 8 대 0 전원 일치 이외의 시나리오는 법률가들의 머릿속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에 따라 풀려난 윤 대통령이 여권에는 독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밟고 가야 조기 대선에 희망이 있는데, 윤 대통령을 업고 가는 선택을 했다. 윤 대통령을 업고 인수봉을 지금 오르고 있지 않느냐”며 “윤 대통령이 바깥에 나왔으니, 탄핵 결정이 나왔을 때 태세 전환을 할 수 있겠느냐. 관성이란 게 있다”고 말했다.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해도, 윤 대통령의 구심력이 강하다 보니 국민의힘이 단번에 관계를 끊긴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반면,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그런 위험한 존재를 검찰총장이 사실상 석방하도록 해가지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다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비판하는 동력이 약해진다”고 짚었다.

 

조 대표는 헌재의 탄핵소추안 인용 시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서 윤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조 대표는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존재 자체가 국민의힘의 (대선) 경선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것”이라며 “지난 3개월을 허비하는 바람에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끊을 찬스를 놓치고, 이제는 윤 대통령에게 기대고 조기 대선을 하려고 할지 모른다”고 짚었다. ‘친윤 일변도’를 보이는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를 두고는 “대선을 포기한 걸로 본다”며 “속셈은 당권을 가지고 당권만 확보하면 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대표는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돌고 있는 김건희 여사 대선 출마론에 대해서는 “처음엔 웃었지만 그다음부터는 웃지 않았다”고 했다. 김 여사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없다고 보지만, 이런 뜬소문 자체가 김 여사가 윤 대통령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그는 “김 여사가 (윤 대통령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쳐왔다고 생각한다”며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의 관계가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의 뿌리”라고 덧붙였다.   < 한겨레 심우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