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불복’은 정치의 세계에서는 금기 언어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요, 유권자에 대한 모독 행위로 간주된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문제를 여권이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이나, 민주당이 수시로 ‘대선 불복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 후 재선거’ 발언은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준다. 장 의원의 발언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두고는 여러 견해가 가능할 것이다. 종교인 등과 달리 현역 정치인으로서 발언에 좀더 신중을 기해야 옳다는 지적도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민주당의 공식 입장과 다른 발언으로 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여권에 역풍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의문 제기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장 의원이 지적한 대로 지난 대선이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개입한 부정선거였음을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선거가 명백한데도 그냥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는 최선의 길인가. 게다가 관권 부정선거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상태다. 장 의원은 이 대목에서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
사실 제18대 대선과 관련해 맨 처음 ‘선거 불복’을 입 밖에 낸 사람은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다. 대선 당일인 지난해 12월19일 새누리당 선대위 공보단장이었던 그는 박근혜 후보가 질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오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명의의 불법 선거운동 문자가 전국적으로 뿌려지고 있다. 설령 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당선무효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선거 자체가 불법·부정선거여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장 의원과 뭐가 다른가.
 
새누리당은 장 의원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대통령한테 쓴소리 좀 했다고 ‘의원직 제명’ 칼을 빼어 든 것은 새누리당의 시대착오적 정신상태를 잘 보여준다. 새누리당은 그런 호들갑을 떨기에 앞서 지난 대선이 공정한 선거였는지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선거과정에 흠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 흠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특히 이정현 홍보수석은 장 의원의 발언에 비분강개하기에 앞서 자신의 ‘대선 불복’ 발언부터 해명하는 것이 순서다.


[칼럼] 나라걱정

● 칼럼 2013. 12. 16. 17:57 Posted by SisaHan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폭락하는 집값, 무너지는 금융기관, 치솟는 실업률, 엄청난 정부부채 때문에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시대는 끝난 것 같지 않다. 정치적 대립으로 정부지출이 축소되는 와중에도 올해 미국 경제는 회복 중이고 내년 성장률은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실업률은 빠르게 떨어지고 주가는 크게 올랐다.
 
지난 5년 동안 무슨 일이 미국에서 일어난 것일까. 최고의 디플레이션 전문가가 중앙은행의 수장이 되고 사상 최대의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됐다. 파산 위기에 몰린 회사들에 유동성이 제공되는 대신 강도 높은 구조개혁이 실시됐다. 정부는 의료보험 대상의 확대를 위해 ‘오바마케어’를 추진하고 관철시켰다. 금융개혁을 통해 은행의 위험을 통제하고 사회적 자원을 금융에서 제조업으로 유도했다. 인재들이 ‘월스트리트’보다 ‘실리콘밸리’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변화와 개혁은 더 강력한 미국 헤게모니를 예고한다. 흥미롭게도 미국이 추진하는 ‘오바마케어’와 금융개혁 법안들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의 취지와 맥락이 닿아 있다. 문제는 시대정신을 따르고 있는 건 구호뿐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공허하고 엉터리란 것이다. 많은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재원 부족을 이유로 공약으로만 남았다.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며 기업들의 진출을 막는 정책은 단기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훼손하고 장기적으로 골목상권 자체도 보호하지 못하는 나쁜 정책이다.
 
한국 경제는 창조성 없이 효율성을 얻기 어려운 단계에 있다. 하지만 창조성은 일사불란함이 아니라 자유분방함 속에 꽃을 피운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주는 창조적 지성의 수준은 새마을운동으로 달성될 수 없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이나 경찰의 수사 조작과 양립할 수 없다. 한 사회가 달성하는 창조성은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의 펀더멘털의 결과이지 심리전으로 보호되는 억압된 사회의 돌연변이일 수 없다. ‘창조경제’가 표류하는 이유다.
일본은 강력한 미국의 귀환을 잘 이해하고 편승하고 있다. 미국이 엔화 약세를 용인하면서 20년을 잃어버린 일본의 시계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어 중국을 견제해주기 바란다. 일본 경제가 개선될수록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현금인출기 구실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퇴로 없이 경색시켰다. 통쾌하다는 사람들의 인기는 얻었을지 모르지만 전략적이지 않은 어리석은 외교다.
 
핵무기 폐기를 대북 협상의 전제로 내세우면서 남북관계도 교착되었다. 개성공단은 폐쇄되었다가 다시 열렸지만 북한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10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가계부채, 향후 가속화될 엔화의 약세, 임박한 중국의 거품 붕괴를 고려하면 남북간의 경제협력은 북한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남북간 경제협력이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돌파구가 없는 한국 경제는 4년 뒤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국가의 운명에서 4년은 긴 시간이다. 한 나라가 망가지기에 충분하다. 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바라지만 비관적이다. 실패한 정권을 교체하지 못했을 때 이번 정권의 실패는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패하고 부패하고 하고 싶은 대로 막 해도 아무도 견제하고 문제 삼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다. 자연법칙이다. 지역감정이 나쁜 이유는 성과가 나빠도 정권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야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민주당의 분발을 촉구한다.

< 김동조 -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삶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드러나나 봅니다. 엊그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한 ‘마디바’(존경받는 사람) 넬슨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 지도자들이 성명을 통해 애도를 표시했습니다.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추모 성명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없는 나의 인생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용기있고 선한 인물을 잃었습니다.” “위대한 빛이 졌다”는 캐머런 영국 총리의 성명도 간결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북한이 추모 대열에 참여한 것입니다. 북한은 유엔이 2005년부터 매년 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대상국이니, 만델라의 꿈과는 거리가 먼 나라입니다. “(고인은) 남아프리카 인민이 낳은 훌륭한 아들”, “남아공 정부와 인민, 고인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4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이와 비슷했죠. 오바마 대통령은 그때 “조국에 대한 헌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자유를 위한 개인적 희생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였습니다. 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많은 갈등을 빚었지만,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고인과는) 수많은 정상회담을 했으며, 21세기를 향한 양국 관계의 비전과 북한 문제 등에 관해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일본 정부는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그에게 큰 빚은 지고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아마 이렇게 집약될 겁니다. “(고인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납치, 투옥,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투쟁했던 위대한 인물.”(프랑스 일간 <르몽드>)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30년 전에 참혹하게 세상을 뜬 대통령이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부하의 총탄에 절명한 죽음이었으니 더욱 그러했겠지만, 진심이 담긴 추모 성명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그의 죽음을 공식 발표한 직후 이런 한 줄짜리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것도 국무부 대변인 성명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서거를 깊이 애도합니다.” 거기엔 어떤 평가도 추억도 없었습니다. 3시간 전, 그러니까 정부 발표 2시간 전 국무부는 이런 특별성명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어떤 외부 침략도 용납하지 않는 게 미국의 입장.’ 참으로 건조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들의 정서였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죽음. 그 사이엔 이렇게 깊은 강이 흐릅니다.
만델라가 추구했던 가치는 자유와 평화와 정의였습니다.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삶은 용서와 화해, 관용이었습니다. 그런 만델라를 두고 최악의 흑백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펼치던 백인정권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처벌했고, 그가 몸담고 있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공산주의를 세뇌시키는 집단으로 매도했습니다. 만델라가 처음 기소될 때 그에게 적용된 법률은 ‘공산주의 활동 금지법’이었습니다. 우리의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법률이었죠. 이후 그를 ‘빨갱이’로 만들려는 공작은 집요하게 계속됐습니다. 1960년 민족회의를 불법단체(우리 식으로는 이적단체)로 규정했고, 1962년 만델라를 불법 국가 탈출(잠입·탈출) 혐의로 5년 징역을 선고했고, 복역중이던 1964년 정부 전복 기도(내란) 혐의로 종신형에 처합니다. 그 시기가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을 앞세워 공포정치를 강화하던 때와 일치합니다. 만델라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아마 빨갱이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항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막히면 종북 혹은 이북! 골칫거리가 등장하면 국정원을 통해 ‘종북몰이’를 하거나, 이북 정보를 악용해 국면 전환과 함께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 후보도 종북으로 몰았고, 선거 부정을 덮기 위해서도 종북 공세를 펼쳤고, 검찰총장까지도 종북으로 매도했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종북 사제단으로 내몰았습니다. 게다가 청와대의 검찰총장 사찰 의혹이 구체화되자 부처간 협의도 되지 않은 북 정보를 터뜨려 궁지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등 북풍 활용에 골몰했으니, 그런 말이 나왔을 겁니다. 북도 실은 이런 정권을 열심히 도왔죠.
이달 초 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에게 “조용할 때 시간 내어 내일이 임기 마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이임사를 미리 써 보시라”고 충고했습니다. 사제들이 매일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듯이, 대통령직도 내일이 마지막날인 것처럼 생각하고 초심대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것입니다. 죽음 혹은 퇴임 앞에서 알량한 자존심과 너저분한 탐욕과 위선,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추모 성명이 기억납니다. “(고인의) 1998년 런던 방문과 그 이듬해 이뤄진 저의 공식 방한 때의 행복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분입니다. 슬픔에 잠긴 유가족분들과 한국 국민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박 대통령도 올해 영국을 국빈 방문했던 터이니, 퇴임할 때건 혹은 훗날 영원한 작별에 이르러 이런 추모가 따르길 기원합니다. 그러자면 빨갱이 혹은 종북 조작의 길에서 떠나, 자유와 평화와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할 겁니다. 장하나 의원의 사퇴 요구를 두고, 마치 유일영도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수하들이 길길이 날뛰는 그런 옹졸한 보스가 되어선 안 됩니다. 선거부정이 있었다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주장입니다. 마디바의 타계가 분열과 공작과 독선과 억압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