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기소했던 검사, 진술 신빙성 스스로 뒤집어
"왜 김용 재판에서만 남욱 진술이 인정되나"
뒤집어진 유죄 증거…핵심증인들 진술 번복
전현희 "김용·정진상 무죄…검찰 조작기소"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오른쪽)이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왼쪽)에게 질의하고 있다. 2025.9.23. 국회방송 갈무리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고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가 대장동 개발업자이자 핵심 피고인인 남욱 변호사의 증언에 대해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 진술은 김 전 부원장 기소를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였으며, 재판부도 김 전 부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남 변호사의 증언 신빙성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강 검사의 발언대로 남 변호사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소와 유죄 판결 증거가 된 진술이 조작됐다는 점을 검사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된다. 여당 법사위원은 "정치검찰의 공작기소"라고 했다.

 

강백신 "남욱 진술 사실 아닌 부분 많다"

 

전날인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추미애)에서 열린 검찰개혁 입법 청문회에서는 남 변호사가 최근 대장동·위례신도시·성남에프시(FC) 사건 관련 공판에서 자신의 과거 진술을 번복한 데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남 변호사가 지난 금요일(19일) 법정에서 (김용·정진상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기존 두 사안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2022년 검찰 수사 받을 당시에 검사에게 처음으로 전해 들은 내용이라고 증언을 하고 기존 진술을 번복을 했다"며 "이는 검찰의 김 전 부원장 공소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조작된 것임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강 검사에게 "그런 얘기를 (남 변호사에게) 전했느냐"고 물었고, 강 검사는 "그런 취지의 증언이 있었다는 보도는 제가 듣기는 들었다"면서 "공판팀에서 그 부분은 지금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회피성 답변을 했다.

 

이에 전 의원은 "검사가 그 말을 남 변호사에게 해줬다고 한다. 이것은 검사의 진술 조작이고 모해위증죄, 위증교사죄가 성립할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면서, 강 검사에게 "진술을 시킨 것이냐" "묻는 말에 답하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자 강 검사는 전 의원의 압박에 "남욱 진술은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제가 조작을 시킬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김 전 부원장의 기소와 유죄 판결을 뒷받침했던 남 변호사의 증언에 대해 기소했던 검사가 스스로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뒤집은 것이다.

 

대장동 개발 민간업자 일당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후 보석으로 석방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20일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8.20. 연합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 전 부원장 변호인 신알찬 변호사는 "강 검사도 증인석에 서서 남 변호사의 진술을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하는데, 왜 김 전 부원장 재판에서만 남욱의 진술은 믿을 수 있는 진술이고 김 전 부원장의 변소는 전부 다 믿을 수 없다고 본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대장동 사건을 검사가 조작한 것이라고 보느냐'는 전 의원의 질문엔 "그렇게 보는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뒤집어지고 있는 김용 유죄 증거들

 

강 검사의 국회 증언은 김 전 부원장의 상고심에서도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 변호사가 "정진상·김용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것은 2022년 이후 수사 과정에서 다 처음 들은 사실"이라고 기존 진술을 번복하면서 김 전 부원장 유죄 근거의 신빙성이 떨어진 가운데, 김 전 부원장을 기소하고 공판에 참여했던 검사도 스스로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다"고 진술 신빙성을 탄핵했기 때문이다.

 

남 변호사의 발언 외에도 김 전 부원장 유죄 증거들은 최근 계속해서 신빙성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지난 11일자 <오마이뉴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에게 3억 원을 빌려준 철거업자도 최근 기존 증언을 뒤집고 검찰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진술을 했다.

 

철거업자 강아무개 씨가 대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 따르면 강 씨는 지난해 5월 16일 김 전 부원장 항소심 재판 증인으로 나와 "2010년 이후 유동규를 만나지 않았다"라고 증언했지만, 이번 진술서에선 "2013년 말까지 빌려준 3억 원을 전액 상환받았다"라고 번복했다.

 

'유 전 본부장이 당시 남 변호사로부터 3억 원을 받아 철거업자한테 상환한 것이 진실이고, 그 돈 일부를 김 전 부원장 등에게 뇌물로 줬다는 검찰 공소사실은 거짓'이라는 김 전 부원장 쪽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2021년 5월 3일 '구글 타임라인' 원시데이터 기록. 코리아경기도 빌딩에서 퇴근하여 곧장 서울 반포동을 들렸다가 서초동 자택에 머무른 것으로 확인된다. 2024.11.13. 신알찬 변호사 제공

 

항소심 막판에 부각됐던 휴대전화의 디지털 위치기록(구글 타임라인)도 쟁점이 되고 있다.

 

법원이 선임한 감정업체가 김 전 부원장 휴대전화의 위치 기록을 분석한 결과, 김 전 부원장이 돈을 받기 위해 유 전 본부장의 유원홀딩스 사무실에 들렀다고 특정됐던 2021년 5월 3일 저녁, 김 전 원장이 퇴근 직후 서울 자택에서 머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과거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서 증거 능력으로 인정해 실형까지 받아냈던 구글 타임라인에 대해 객관적이지 않다며 김 전 부원장의 재판에서만 증거 능력을 부인하고 있다.

 

전 의원은 "강 검사는 대장동 사건과 정치자금 수사를 진행하면서 유 전 본부장에 대한 각종 특혜를 제공을 했다는 의혹과 함께 관련 수사를 조작해서 진실규명이 지연하도록 한 의혹이 있다"며 "남 변호사의 반복된 법정 증언, 철거업자의 진술서, 구글 타임라인 등 구체적 증언과 증거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은 김용·정진상은 무죄이고 정치검찰의 공작기소 희생양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조작 기소한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여권에서는 당시 수사팀에 대한 법무부 감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대응특위는 23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대장동 2기 수사팀에 대한 감찰요청서를 제출하며 엄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특위 위원장인 한준호 의원은 "누명을 씌우기 위한 목표 아래 피의자를 회유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별건의 혐의는 은폐하고, 직접 위조한 증거를 제시하며 피의자의 기억에 혼란을 일으키는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해 조작수사한 자들이 바로 대장동 수사팀이었다"면서 "엄정하게 조사해서 처분해 주실 것을 법무부에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 김성진 기자 >

'팔 국가 승인' 잇단 동참…G20 중 한미일 5국 '유보'

● COREA 2025. 9. 24. 11:4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마크롱 "오늘 프랑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선언"

NYT "미 동맹국들, 워싱턴과 결별 공식화"
이스라엘·미국 반발 "하마스에 보상" 주장
팔 국가 승인 '유보' 한국, 미국 눈치 보나?
이스라엘, 팔 주민 6만5300명 넘게 학살해
산체스 "인간 존엄성 이름으로 학살 멈춰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에선 미국 혼자다. 
서방 선진국 그룹인 주요 7개국(G7)으로 보면, 미국에 독일, 일본, 이탈리아 3개국이 추가된다. 이를 주요 20개국(G20) 그룹으로 넓히면 한국이 추가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국가의 공식 승인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는 나라들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하루 앞둔 22일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팔레스타인 관련 '두 국가 해법' 실행을 논의하는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프랑스의 팔레스타인 국가 공식 승인을 선언하고 있다. 2025. 09. 22 [AFP=연합]

 

프랑스·영국·호주 서방국들 '팔 국가 승인'
NYT "미 동맹국들, 워싱턴과 결별 공식화"

 

이들과는 달리, 프랑스는 22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승인한다고 선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하루 앞둔 이날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팔레스타인 관련 '두 국가 해법' 실행을 논의하는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때가 왔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우리는 두 국가 해법의 가능성을 보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오늘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선언한다"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를 포함해 안도라, 벨기에, 룩셈부르크, 몰타, 모나코 6개국이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대열에 합류했으며 그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날인 21일에도 캐나다, 호주, 영국, 포르투갈이 승인을 발표했다.

 

2025년 4월 기준으로 이미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승인한 나라는 193개 유엔 회원국 중 약 147개국이다. 이번 추가 승인국들을 포함하면 유엔 회원국의 80% 이상이 팔 국가 승인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극우 정권과 이를 옹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립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를 두고 NYT는 '세계 지도자들, 미국과 이스라엘에 도전장 내밀며 팔 국가 승인'이란 기사에서 "프랑스와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어 온 워싱턴과의 결별을 공식화했다"고 논평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시티 서쪽 알-라시드 도로를 따라 가자 남부를 향해 피란길에 올랐다. 2025. 09. 22 [EPA=연합]

 

마크롱 "프랑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선언"
산체스 "인간 존엄성 이름으로 학살 멈춰야"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에 의해 여성과 어린이를 비롯해 주민 등 6만5300명 넘게 학살됐다. 앞서 17일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유엔 이스라엘 조사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인류 최악의 범죄인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저질렀다는 결론을 담은 72쪽짜리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이스라엘과 모든 국가가 국제법상의 의무를 다해 "제노사이드를 끝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마크롱은 이날 정상회의 연설에서 가자 전쟁 이후 '새로워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창설을 위한 틀을 제시했으며, 여기엔 가자 통치를 넘겨받을 PA 준비 작업을 도울 '국제안정화군'(ISF)의 주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팔 국가를 승인하고 이스라엘 제재에 들어간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두 국가 중 한 국가의 국민이 제노사이드의 희생양이 될 때" 두 국가 해법은 불가능하다면서 "팔레스타인 국민이 몰살당하고 있다. 이성과 국제법,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이 학살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 09. 22 [EPA=연합]

 

이스라엘·미국 반발 "하마스에 보상" 주장
유엔 총장 "팔 국가 지위는 팔 인민 권리"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로 뉴욕 유엔본부에 올 수 없었던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화상 연설을 통해 팔 국가를 승인해 준 프랑스 등에 감사를 표했으며, "아직 승인 안 한 국가들도 뒤를 이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에 지지를 요청했다. 알자지라는 "국제적으로 점점 더 고립되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정상회의를 보이콧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스라엘과 그의 가장 가까운 동맹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이날 정상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는 외교가 아니며 서커스"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서방국의 팔 국가 승인에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에 대한 보상이라고 믿는다"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앞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하마스를) 대담하게 만들고" 전쟁 종식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두 국가 해법'이 폭력 이후 평화를 향한 유일한 실현이 가능한 길로 규정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는 "하마스에 대한 보상이 아닌, (팔 인민의) 권리"라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주장을 비판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은 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위반 행위와 가장 최근의 카타르 공격을 포함해 아랍, 이슬람 국가들을 향해 반복적 공격"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동들은 이스라엘이 역내 및 국제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역내 평화 노력을 훼손하는 공격적인 관행을 계속하겠다는 집요함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참석,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9.23 [외교부 제공] 연합

 

팔 국가 승인 '유보' 한국, 트럼프 눈치 보나?
"다른 지역 일 살필" 여유 없다는 조현 외교

 

국제사회의 최대 주권과 인권 관련 이슈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스탠스는 조금씩 팔레스타인 지지 쪽으로 이동하는 모양새였다. 작년 4월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관련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 종전의 입장을 바꿔 찬성표를 던졌으며, 다음 달인 5월 유엔총회의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결의안에 찬성한 데 이어, 지난 12일 142개국의 찬성으로 통과된 유엔총회의 '두 국가 해법' 지지 결의안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가 공식 인정 문제에는 지금까지 '유보적'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를 정부 차원에서 설명한 적은 없지만, 팔 국가 승인에 완강히 반대하며 '관세 폭탄'까지 위협하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게 아니냐는 해석이 우세하다.

 

조현 외교부 장관의 8월 3일 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발언이 한국 정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 장관은 '정책을 바꿔 팔 국가 승인을 할 것인가'란 질문에 "말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에 몰두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변화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취약함을 느끼고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는 사치를 누릴 수 없다"고 말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독일은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원죄'로 인해, 일본 역시 미국 눈치를 보느라 팔 국가 승인에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이유 기자 >

 

트럼프 '마라라고 구상'은 '제2 플라자 합의'
천문학적 무역·재정적자를 동맹국에 덤터기

안보지원조차 돈으로 환산, 사실상의 협박
G5 경제사정 약해지며 한국때리기로 선회

 

1985년 서방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들이 모여 '플라자 합의'를 결정한 뉴욕의 플라자 호텔. 아사히신문 9월 22일

 

22일은 1985년의 ‘플라자 합의’ 4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는 그날을 일본 언론들은 잊지 않았다. 40년 전 그날 뉴욕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는 플라자 호텔에 모인 G5(미국, 일본, 독일[서독],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주요 5개국) 재무장관들은 당시 강세였던 미국 달러 시세를 끌어내리기 위해 일본 등 나머지 나라들이 보유 달러를 팔고 자국 통화를 사들이는 환율 조작 국제협조에 합의했다. 주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고 있던 일본과 독일을 겨냥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천문학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플라자 합의 뒤 일본은 5%였던 정책금리를 2%(1987년 2월)까지 내렸다. 이처럼 G5가 동시에 달러 풀기 환율 개입에 나선 뒤 3개월만인 1985년 말 1달러=240엔대였던 엔 시세가 200엔대로 뛰었고, 그 다음해 중반에는 150엔대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엔 시세는 플라자 합의 뒤 단기간에 2배 이상으로 뛰어 올랐다. 그럼에도 일본의 수출이 당장 급감한 건 아니었지만 급속도의 엔 강세로 인한 자금 경색과 내수 부진을 풀기 위해 일본 정부는 금리를 대폭 내렸다. 아베 신조 정권 때의 마이너스 금리까지 이어지는 그 금융(양적)완화는 투기 과열, 거품 경제로 귀결됐다. 1990년대 초에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의 기나긴 불황터널로 빨려들어 갔다.

 

플라자 합의 뒤 미국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엔 시세의 변화 추이. 1970년 1달러=350엔이었던 엔 시세는 1985년 플라자 합의(검은 점선) 직후 급등하기 시작해 1달러=100엔 가까운 강세를 유지했다.. 아사히신문 9월 22일

 

미국이 기획한 그 플라자 합의의 성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미국이 다급했던 ‘쌍둥이 적자’를 줄이는데는 일정한 효과가 있었다. 미국은 일단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미국이 저질러 놓은 금융, 경제정책 미스로 미국경제가 떠안게 된 짐을 다른 주요국들에게 전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스티븐 미런 FRB 신임 이사.  KSAT.com

 

트럼프의 제2 플라자 합의 ‘마라라고 구상’

 

그 40년 뒤인 지금, 미국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2024년도 미국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치인 9184억 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도 7월 한 달의 무역적자가 783억 달러로 6월보다 32.5%(192억 달러) 늘었다. 2024년 재정적자는 약 1조 8300억 달러였고, 2025 회계연도에는 더 늘어 누적 적자가 22조 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재정적자에 대한 이자로 나가는 돈만 연간 1조 달러가 넘는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로 들어간 그의 책사 스티븐 미런 당시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율과 채권, 안보, 무역(관세)정책을 패키지로 한 대책을 입안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이애미 마라라고 저택에서 조정된 그 대책은 ‘마라라고 구상’으로 알려졌다. ‘제2의 플라자 합의’로도 알려진 마라라고 구상은 제1 플라자 합의 때와 비슷한 문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짜낸 방안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19일 워싱턴 D.C. 백악관 타원형 사무실에서 골드 카드 비자에 대한 서명된 행정 명령을 보여주고 있다. 2025.9.19. 로이터 연합

 

관세협상 아닌 사실상의 협박, 한국도 주요대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40년 전과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긴 해도 지금은 미국과 세계의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마라라고 구상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선지 지금 트럼프 정권은 특히 4가지 요소 중에서 관세와 안보를 무기 삼아 동맹국들을 협상이 아니라 사실상 협박하면서 자신들 요구를 수용하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 주요 협박 대상에 한국이 포함돼 있다는 것도 40년 전과는 다른 점이다. 없었거나 거의 없었던 관세를 15% 이상은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 상품을 대량 구입하고 5500억 달러, 350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돈을 미국정부 처분에 맡기라는 트럼프 정권은 그것을 협상이라고 부른다. 특이하게도 제1 플라자 합의가 주로 일본을 겨냥한 것이었다면 제2 플라자 합의는 한일 두 나라를 한묶음으로 엮어 겨냥하고 있다. 어쨌든 제1 플라자 합의 40년 뒤 한국이 협조든 협박이든 미국이 자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끌어들여야 하는 G5, G7급 주요 대상국이 돼 있는 현실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인 서방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들. 중앙이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 맨 오른쪽이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대장상.  나무위키

 

40여년 전 미국서 유행한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

 

40년 전은 동서 냉전시기였고, 서방의 G5나 G7의 경제력도 압도적이어서 협상을 통한 상호양보와 결속이 가능한 시기였다. 그때도 미국은 환율과 관세를 만지작거리면서 여차하면 보호무역주의 관세전쟁을 벌이겠다는 강경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서방 동맹국들이 당시 플라자 합의에 동의한 것은 언제 터져나올지 모를 미국의 그런 폭주를 사전에 막기 위한 바람 구멍 내지 가스 빼내기 차원의 협조였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이 고안해낸 방식은 달러 시세(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춰 미국 수출과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것이었다. 플라자 합의 전인 1980년대 상반기에 미국에선 인플레(물가 상승)가 진행 중이었다. 이를 억누르기 위해 당시 폴 볼커 FRB 의장은 금리 인상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가 달러 강세였다.

 

지난 해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민주당 집권 연장에 실패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도 물가고(인플레)였다. 고용이나 성장 등의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았으나 뛰는 물가 때문에 바이든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유권자들 평가는 좋지 않았고, 트럼프 쪽은 그것을 파고들었다. 재집권 뒤 트럼프가 인플레를 걱정하는 제롬 파월 FRB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줄기차게 압박하는 것은 인플레 위험에도 불구하고 40년 전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플라자 합의를 기획했던 것과 같은 이유, 즉 미국 제조업 부활과 수출 증대를 위해서다.

 

달러 강세 기조를 바꾸려면 미국은 금리를 내리고 일본은 금리를 올려야 한다. 당시 일본은 GDP(국내총생산)이 세계 전체GDP의 10%가 넘을 정도로 잘 나가던 나라였다. 일본 자동차와 가전제품, 반도체가 세계를 휩쓸었다. 미국 대외 무역적자의 30%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다. 에즈라 보걸의 책 이름인 ‘재팬 애즈 넘버원’(세계 최고 일본)이란 말이 유행했다.

 

그런 시기에 G5가 미국의 플라자 합의 구상에 협조했다고 하지만 일본이 순순히 따랐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일본에 비관세장벽을 없애라며 미국산 수입할당제 같은 것을 노골적으로 압박했고, 미국 시민들이 도요타나 닛산 자동차를 길거리에 세워 놓고 두들겨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인종차별적 성격까지 밴 ‘재팬 배싱’(Japan bashing. 일본 때리기)이 미국사회를 풍미했다.

 

더 거칠어진 지금의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

 

그 40년 뒤 대미 무역 흑자국에 대한 미국의 그런 강압적인 행태는 한층 더 강도가 세졌다. 조지아 주 서배너 인근의 현대-LG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한국인 기술자 3백여 명을 군사작전 벌이듯 기습해 폭력적으로 체포 구금한 사태가 그것을 상징한다.

 

40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일본의 가전과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제조업과 첨단산업을 겨냥했던 미국의 압박은 그 상당부분을 대체한 한국과 중국 쪽을 향하고 있고, ‘주적’으로 설정한 중국보다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압박과 ‘무례’가 훨씬 더 모욕적이고 노골적이다. 40년 전의 ‘일본 때리기’와 같은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라고 할까.

 

달랐던 일본과 독일의 대응

 

제1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기업들은 가격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거점을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이전했다. 그 결과 일본 국내산업이 공동화하는 바람에, ‘아베노믹스’로 금리를 낮춰 무제한 돈을 풀었지만 수출은 별로 늘지 않았다. GDP의 250%가 넘는 재정적자와 엔 약세 속에 임금과 소비는 수십년 간 제자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치솟아 실질임금은 내려갔다.

 

독일의 경우 플라자 합의 뒤 마르크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출에 불리해지자 공동통화 유로를 창설해 역내 환율을 안정시키고, 자동차와 의약품을 비롯한 부가가치 높은 제품들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쪽으로 대응했다. 앙겔라 메르켈 정권 때 그렇게 해서 일본식 ‘잃어버린 세월’을 피해갔던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폭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마이애미 마라라고 리조트 내의 트럼프 별장.  나무위키

 

실현 가능성 없는 제2 플라자 합의

 

일본 미즈호은행의 가라카마 다이스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1 플라자 합의와 달리 제2 플라자 합의, 즉 마라라고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면서 3가지 요소를 그 이유로 들었다.

첫째, 외환시장 하루 거래량이 4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10배 이상) 정부나 중앙은행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는 당시의 서방 G5와 같은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의 협조체제에 지극히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고 있다. 40년 전에 미국은 자신이 저지른 정책 미스 때문에 생긴 짐을 서방의 다른 동맹국들에 떠넘겼지만, 한편으로는 냉전의 한 축을 이끌었던 중심국으로서 휘하 서방 주요국들의 이익도 일정부분 보장해 주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지 오래인 지금 미국 제일주의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 정권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동맹국의 안보 지원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분명한 대가를 요구하면서,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찾기에 여념이 없는 트럼프에겐 전통적인 동맹전략의 개념조차 없어 보인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주요국들의 경제사정도 좋지 않다.

 

세 번째는 일본경제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아사히> 4월 23일)한때 세계 GDP의 15%까지 차지했던 일본의 GDP는 지금은 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트럼프 정권의 마라라고 구상이 한국과 일본을 한묶음으로 엮어 관세 및 투자 공세를 펼치고 있는 듯 보이는 것도 이런 일본의 약체화를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 달리 말하면 한국의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미국과 유럽, 일본의 상대적 쇠퇴는 그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분점해 왔던 글로벌 차원의 부(생산)가 한때 그들의 지배를 받고 수탈을 당했던 그 나머지 국가들의 성장과 함께 분산되면서 G5 등으로 불렸던 그들의 몫이 상대적,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 등 서방 부국들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자국 기업들을 개도국, 신흥국에 재배치함으로써 손실분을 만회했으나, 더는 자본주의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는 뉴프런티어(새 개척지)를 찾을 수 없는 행성적 한계에 봉착하지 않았을까. 트럼피즘의 MAGA는 그 한계를 일국 차원에서 돌파하려는 가망없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