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등 개인정보를 유출한 카드사들의 조회시스템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한 고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뿐 아니라 직장 정보와 연소득까지 사실상 모든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당 카드사들은 말뿐인 ‘고객피해 전액 보상’을 내세우고,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금융당국은 되레 카드사들만 호통치고 있다. 2차 피해 방지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우선 해당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의 책임부터 확실하게 물어야 한다.
 
금융회사들의 개인정보 유출이 반복되는 것은 개인정보에 대한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의 안이한 인식 탓이 크다. 금융회사에 집중된 개인정보는 단순한 개인 신상 정보뿐 아니라 경제활동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이런 정보들이 유출돼 악용되면 개인의 경제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당 금융회사 대표들은 국민 앞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시늉만 할 뿐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당장 이번에 개인정보를 유출한 3개 카드사 대표들부터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금융당국의 자세는 더 문제다. 평소에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이런 사태가 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를 면밀히 점검해 선제적으로 필요한 제도 개선을 해야 함에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의 보안 전문 공무원이 겨우 사무관 1명밖에 없다는 것은 금융당국이 보안 문제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금융당국 수장들도 대형 사고가 나면 책임지기는커녕 해당 금융사들만 닦달하며 면피하기 바쁘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언제 또다시 대규모 정보유출 사고가 반복될지 모른다. 금융당국부터 응분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고객들의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은 ‘유출된 개인정보가 외부로 판매·유통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추정된다’고 했지만 이를 100% 믿기는 어렵다. 이미 개인정보로 타인이 신분증을 위조해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등 예상할 수 있는 피해 유형은 수도 없이 많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카드를 전면 교체해 주는 등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금융회사들이 필요 이상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 발표한 국가안보국(NSA) 개혁안은 일부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지구촌의 우려를 가라앉히기에는 미흡하다. 앞으로 의회 논의 과정 등에서 좀더 확실한 방안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안보국의 감청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미국의 가까운 친구나 동맹국 정상’에 대한 감청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개인정보 수집이나 감청 대상을 정할 때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외국 네티즌을 대상으로 인터넷 사용 기록과 전자우편을 뒤지는 온라인 데이터 감시는 계속된다. 개인 통화 기록인 ‘메타데이터’ 수집도 마찬가지다. 수집된 정보를 국가안보국이 아닌 민간 기구에 보관하는 개선책을 내놨을 뿐이다. 군인과 정보기관 요원이 독점해온 국가안보국 요직에 민간인을 앉혀 감시를 강화하는 등의 조직 개혁안도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안보국의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지난해 봄부터 이 기관의 불법 도·감청 실태를 생생하게 폭로한 이후 이 기관의 개혁은 지구촌 전체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 기관의 활동과 관련해 진지하게 사과한 적이 없으며, 이번 연설에서도 개혁안보다는 이 기관의 활동을 옹호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뒀다. 중국과 러시아를 예로 들며 사생활 보호 문제 등에서 이 기관의 활동이 앞서간다고 하기도 했다. 그나마 개혁안 내용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표현이 모호한데다 곳곳에 예외를 두고 있어 ‘무차별 정보수집’이 어떤 식으로든 계속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의 가까운 친구나 동맹국 정상’이 누군지도 분명하지 않다.
 
국가안보국 개혁에 소극적인 미국 정부의 태도는 안보를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다는 자국 중심주의적 사고와 정보기관 역량에 대한 과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개혁을 늦출수록 미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노든이 폭로한 내용 가운데에는 국가안보국이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을 감청해왔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정부는 미국이 철저한 개혁안을 마련하도록 지속적으로 외교력을 행사하기 바란다.


[칼럼] “저를 왜 뽑아 주셨습니까?”

● 칼럼 2014. 1. 30. 14:00 Posted by SisaHan
최근 한 방송사의 요청으로 채용 심사를 보게 됐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응시했는데, 하나같이 선남선녀에 나름대로 실력을 쌓아온 청춘들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기자와 아나운서 각 1명씩 단 2명뿐이다. 심사를 본 150여명 대부분이 또다시 취업 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사 과정은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심사 도중 불현듯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해 초 내가 속한 연구소는 보조연구원(인턴)을 공채했다. 1명을 뽑는데 휴학생부터 석사 출신 등 ‘빵빵한’ 스펙을 갖춘 이들까지 40여명이 몰렸다. 서류 전형으로 5명을 선발해 하루 날 잡아 면접 심사를 끝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면접이 끝나고 떠났다가 허겁지겁 연구소로 되돌아와 내게 묻는 게 아닌가? “저를 왜 뽑아 주셨습니까?” 청년의 안면 근육은 실룩였고 눈빛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을 최종적으로 뽑아달라고 간청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는 “학력도 스펙도 별 볼 일 없어 인턴직 응모조차 지금껏 서류 전형에 한 차례도 통과하지 못한” 자신을 왜 면접 대상자로 뽑았는지를 진정 알고 싶어했다. 며칠 뒤 그는 연구소로 이메일을 보내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를 자세히 밝혔다.
 
“내세울 것은 아르바이트 경험뿐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좋은 학교에 좋은 학점도 아니었고, 여권도 없는 제게 해외 경험 또한 없습니다. … 많은 인턴직을 알아봤습니다. … 이번 인턴 지원도 포기하던 상태에서 갑작스런 연락이 와 놀랐습니다.”
그는 대학엔 들어갔지만 스무살 이래 수년간 카페, 마트, 편의점, 택배회사 등 숱한 곳에서 ‘알바 생활’을 전전했다. 캠퍼스 낭만은 사치였고 학과 공부에 힘쓰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는 대학생이라기보다도 ‘알바생’이었다. 청년은 이메일에서 세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세상은 제 노력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은 자격증과 많은 해외 경험 등 많은 결과물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청년에게 말해주었다. 비록 스펙은 보잘것없더라도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치열하게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당신은 충분히 인정받고 한껏 내세워도 좋을 자부심과 자존을 갖춘 당당한 ‘대한민국 청년’이란 사실을….
 
‘알바생 청년’처럼 청년들의 삶은 푸르름을 구가하기엔 등록금, 실업, 생활고 등으로 너무나 고단하고 애잔하다. 지난 15일 통계청 발표를 보니 청년층(15~29살) 실업률은 8%다. 구직 포기자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10%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 밖에서 대기·포기하거나 불안정한 일자리와 미취업 사이를 오가는 청년이 400만명을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역대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냈고, 박근혜 정부도 고용률 70%를 주창하며 일자리를 강조하지만 청년층 일자리는 갈수록 더 얼어붙는 추세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통계청 발표 직후 여야 정당들의 대책 마련 목소리가 높아졌고, 기획재정부는 청년 취업 활성화 방안을 전격 발표한다고 부산을 떠는데, 낡은 고용 구조를 깰 획기적 대책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짧게 살아온 인생에서 제 삶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저만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런 제 자부심과 자존감을 짓누르더군요. 그깟 알바나 하고 넌 뭐 할래, 그런 경험 누가 알아줄 것 같으냐. 그래도 버티고 버텼습니다.” 
오늘도 학업 또는 취업과 생활고 해결을 위해 버티고 있을 ‘알바생 청년’에게 응답한 말을 어디선가에서 버티고 있을 또다른 수많은 청년들에게도 함께 전하고 싶다. “그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 이창곤 - 한겨레 사회정책 연구소장 >


[1500자 칼럼] 박대통령과 나

● 칼럼 2014. 1. 19. 17:44 Posted by SisaHan
- 희망과 기대 -

제목이 거창하다. 혹시나 하는 독자들을 위해 먼저 밝힌다. 박근혜 대통령과 나는 일면식도 없다. 이런 인연, 저런 끈을 조사해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유일한 접점이라곤 대학 동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입학하던 해 그가 졸업했으니까 역시 얼굴 부딪친 적도 없다.

박대통령과 모종의 연관을 지으려고 하는 나를 보며 혹 토론토 교민들은 <정수코리아> 사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사건. 파독 광부 간호사 출신 2백여명을 모국 방문 환영회에 초청한다며 사기극을 벌인 정체불명의 단체 얘기이다. 권력층과의 거짓된 관계를 내세우며 정당치 않은 일을 도모하는 잘못된 단체일 수도 있다.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박대통령과 나는(물론 그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일별의 관계이다. 지난 1974년 봄 쯤 나는 교정 본관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막 배운 담배를 피워 물고 그곳에 혼자 앉아 왜 고독을 씹길 좋아했는 지 모르겠다. 그때 말로만 듣던 그 피아트 자동차가 정문에서 본관 쪽으로 올라왔다.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므로 직감적으로 그라는 것을 알았더, 한바퀴 돌더니 차는 봄 아지랭이 속으로 멀리 사라졌다.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졸업 후 모교를 추억하고 싶어 운전기사만 대동하고 학교에 왔으리라. 나중에 얼음공주라고 불리게 된 그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별이었다. 폐쇄된 차창 안에서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교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게 그와의 기억의 전부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과 대통령의 불통의 이미지로 모국이 소란스럽다. 박대통령은 통제된 청와대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대통령 퇴진이라는 돌팔매질을 인내하며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피아트 자동차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차창만한 풍경과 그곳에 실린 추억에 눈길만 주던 그가 생각난다. 

최근 받은 모국의 소책자에서 가슴에 와닿는 내용을 발견했다. <이반 일리히(역사학자)와 나눈 대화>중에서 인용한 것이다. “희망은 자연스러운 선의를 신뢰하는 믿음을 뜻하는 반면 기대는 합리적인 계획과 통제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따라서 희망은 우리에게 선물을 줄 하느님의 자유로운 바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 비해 오히려 기대는 예측 가능한 욕구의 충족과 거기에 대한 귄리 주장에 초점을 두고 있는 차이이다.”.

사실 박대통령은 과거 매력있는 대통령 후보였다. 원칙주의자에다가 양보도 할 줄 알고 그리고 사심없는 국정을 펼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도 갖추었다. 유권자들은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민들은 기대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이반 일리히의 말대로 경제나 정치 분야 등에서 각자 욕구의 충족을 바라면서 권리 주장까지 나서게 됐다. 나는 잘 살고 싶다고 나는 안녕하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비록 이민자이지만- 개인적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가 주던 잔잔하고 결연한 일별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모두들 기대의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 때 나는 아직까지 희망의 한 조각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40년 전 봄날의 그 푸른 일별 때문에. 

< 김형주 - 시인, 해외문학 신인상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부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