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시국미사 때 나온 발언을 두고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 저와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지난 22일 시국미사에서 나온 박창신 원로신부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시국미사 관련자들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 발언은 무척 호전적이다. 내각더러 이들을 어떻게든 법에 따라 처벌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실제 박 대통령은 수석들에게 “국민을 위해 잘못된 그 어떤 것에도 결코 굴복하거나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일해달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까지 나왔으니 사정당국은 지금쯤 시국미사 관련자를 처벌할 궁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걸핏하면 ‘구속 수사’를 지시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다. 박 신부의 발언이 박 대통령 입장에서 듣기에 무척 거북했다 하더라도 직접 나설 일은 아니다.
박 대통령 발언은 전형적인 남 탓이다. 박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으면 자신은 분열이나 갈등과는 전연 관계없다는 투다. 지금처럼 나라가 혼란스럽고 국정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박 대통령 탓이 크다. 박 대통령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를 초기에 엄정히 대처하지 못해서 지금처럼 분열과 대립이 커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박 대통령 발언을 기화로 마구 나서는 것도 꼴사납다. 정홍원 총리는 박 신부 발언을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적에 동조하는 행위”라며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 신부를 종북으로 몰아 처벌이라도 할 태세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북한이 최근 반정부 대남투쟁 지령을 내린 후 대선 불복이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이는 오랜 세월 수도자의 삶을 살아온 박 신부나,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 않았던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민주주의는 공론의 장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성숙한다. 듣기에 불편한 발언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누르거나 이념의 굴레로 옭아매는 것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박 신부 발언의 옳고 그름은 공론장을 통해 치열하게 토론하면 가려질 일이다. 발언의 본질을 외면한 채 마음에 들지 않으니 때려잡고 보자는 식이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사설] 이란 핵 협상 타결과 북핵 문제

● 칼럼 2013. 12. 2. 17:55 Posted by SisaHan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첫 성과가 도출되었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5개 유엔 상임이사국 및 독일(P5+1)과 이란은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제조를 중지하는 등의 조처를 취하는 대신에 국제사회가 경제제재의 일부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국제사회와 이란이 군사·물리적 방법이 아닌 외교와 협상을 통해 2002년부터 10여년간 진행된 이란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합의 내용을 보면, 이란은 순도 5% 이상의 고농도 우라늄 농축 작업을 중지하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6개월 안에 제로로 하며, 플루토늄 추출이 우려되는 이라크 중수로 건설을 동결하고 주요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전면 허용하기로 했다. 미국 등 유엔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은 이란의 해외 금융자산 중 42억달러의 동결을 풀고, 15억달러에 상당하는 귀금속 및 자동차 관련 상품 등의 수출입 금지를 완화하며, 앞으로 6개월간 추가 제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평가처럼 ‘10년간 협상을 통해 처음으로 핵개발을 중지’시킨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지만, 6개월간의 상호 약속이행 평가에 따라 다음 단계로 진전 여부가 결정되는 잠정 합의라는 한계를 지닌다. 특히 이란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길 꺼리는 ‘핵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우라늄 농축 권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앞으로 협상을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무기화 단계까지 이르지 못한 이란 핵 문제와 무기화 단계로 진입한 북핵 문제는 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지만, 이란 핵 협상의 진전이 북핵 해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 2기 들어 이란 핵을 비롯한 중동 문제에 외교력을 집중했던 미국이 이란 핵 문제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북핵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또 이란 핵 문제가 이란 새 정부의 협상 의지에 따라 급진전이 이뤄졌고, 무력이 아닌 다자협상을 통해 해법을 찾았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도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관련국 간 중재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흐름에 밀려가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북핵 문제는 바로 우리 문제’라는 적극적 자세로 해결 방안을 내놓고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칼럼] 힘이 있을 땐 모른다

● 칼럼 2013. 12. 2. 17:55 Posted by SisaHan
어떤 정권이든 권력형 비리나 인사 전횡으로 인한 패가망신은 단골 메뉴다. 최고권력자를 향한 권력 실세들의 과보호 행태 또한 그렇다. 그런 순간 균형감각이란 눈 씻고 찾으려 해도 없다. 권력형 청맹과니가 되어서다. 눈을 뜨고 있되 앞을 보지 못한다.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은 권력이 사라진 다음에야 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한 청와대와 총리, 특히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질타는 청맹과니 같은 발언처럼 느껴진다. 감히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사제단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겠지만 이번에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그는 ‘사제복 뒤에 숨어서 대한민국 정부를 끌어내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를 벌이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제대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사제복을 벗고 말씀하셔야 한다’고 일갈했다. 남다른 정보력과 인맥, 최고권력자의 신임으로 막강실세라 불린다는 윤상현 의원다운 과감한 발언이다. 하지만 도를 넘었다. 그건 그의 표현대로 ‘국가원수를 폄훼하는 용납될 수 없는 언행’ 따위를 뛰어넘는 막장의 언어다. 윤 의원의 세계에선 그럴지 몰라도 세상에서 국가원수를 폄훼하는 언행이 최고로 중차대한 사안은 아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치집단이나 관변단체가 아니다. 최고권력자의 종교나 정치성향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정권에서든 종교적 양심과 정의에 반하는 일들에 대해서 죽비를 들어 깨우침을 준 한국 사회의 허파 같은 조직이다. 지난 40년간 그래 왔다. 국회의원 배지 떼고 사제복 벗고 만나서 이종격투기라도 하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사과하고 철회해야 마땅한 발언이다. 물론 윤 의원은 그렇게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 땐 자기 객관화가 쉽지 않다. 자기 행위는 동기부터 이해하고 남의 행위는 현상부터 받아들이려는 인간의 속성이 극대화된다. 권력은 유한한 것이라는 속성을 관념에서만 받아들일 뿐 현실로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들이 훗날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자신의 인기가 사그라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루에 1000통 넘게 오던 팬레터가 어느 날부터 누가 채간 것처럼 한 통도 안 오는 현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권력은 대체로 임기가 정해져 있다. 어느 시점부터 힘이 소멸될 것인지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평범한 직장인들조차 은퇴한 뒤에야 현직 프리미엄에서 비롯한 현실적 오해와 착각이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한다고 고백할 정도다.
 
전두환 같은 최고권력자 출신은 단임제 실천을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운다. 그 기저에는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종신 대통령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포기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희생정신이 있다. 물론 대단한 착각이다.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때는 그나 측근이나 그런 인식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으리라.
인간은 자기 존재감이 극대화될 때 ‘살아 있네!’란 느낌을 생생하게 실감한다. 내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현직 권력은 그런 점에서 뿌리칠 수 없는 중독물질에 가깝다. ‘자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반응 앞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제를 못한다. 권력엔 그런 속성이 많다. 권력에 중독되는 이유다.
힘이 있을 땐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달라진다. 한가하거나 관념적인 명제가 아니다. 물레방아처럼 반복되는 역사적 삽질을 방지하는 실천적 솔루션이다. 윤상현 의원 같은 현직 실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 이명수 - 심리기획자 >


이번엔 정의구현사제단을 이적단체로 몰아가고 있군요. 국무총리는 북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규정했고, 대통령은 모든 분열 책동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지학순 주교를 구속시키던 유신정권이 그러했죠.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의 ‘밀가루 봉변 사건’을 두고 마치 나라가 결딴난 것처럼 호들갑 떨던 일도 생각납니다.
사제단에 대한 국적 시비가 나왔으니 한번 따져봐야겠습니다. 사실 이런 시비는 언제나 있었죠. 이명박 정권 때 정운찬 총리는 ‘천안함 폭침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참여연대를 두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죠. 이번엔 연평도의 우리 국민과 국군에 대한 북의 폭격 사건을 두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판단해보자는 것이었으니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제단은 1974년 유신정권의 폭력성이 극악을 떨 때 결성됩니다. 직접적으론 지학순 주교의 구속이 계기가 되었죠. 지 주교는 정권이 대대적으로 과장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 연루자에게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됩니다. 이에 대해 지 주교는 7월23일 양심선언을 합니다. “…첫째 유신헌법은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무효이며 진리에 반한다, 둘째 유신헌법은 인간의 양심을 파괴할 것이다, 셋째 긴급조치 1, 4호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법 유린의 하나다, 넷째 죄목인 내란 선동은 조작된 것이다, 다섯째 비상군법회의는 꼭두각시다.” 그는 비상군법회의에서 15년형에 처해집니다.
양심선언 다음날 신부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주에서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자리의 결의는 이랬습니다. “정치 현실에 대한 의사 표시를 ‘사회 구원의 원리’에 입각한 사목행위의 하나로 펼친다.” 사흘 뒤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이름의 첫 시국성명이 발표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이 성명은 비판만으로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유신헌법의 폐지와 민주헌정의 회복을 다짐합니다. 그것이 사제단이 탄생한 배경이고 사제단의 성격입니다. 사제단은 그해 말까지 63차례의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시국미사를 집전하는 등 유신정권과 정면대결을 했습니다. 사제단은 민주공화국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탄생했고, 이를 위해 지금까지 풍찬노숙을 주저하지 않았고, 투옥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국적을 따지자면 사제단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이요, 이들을 억압한 집단은 절대왕정의 유신체제 신민이었습니다.
 
한반도 남쪽엔 대한민국이, 북쪽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습니다. 남북 모두 국명이나 헌법에 ‘민주공화국’임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따져보면 그 성격이 달라집니다. 북쪽은 3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봉건왕조의 성격이 강합니다. 남쪽은 최소한 국민이 자신의 대표를 직접 민주적으로 선출하는 절차를 헌법과 법률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민주공화국으로서 요건은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이 헌정질서는 부단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무력화시키고 파괴하려는 권력집단과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세력 간의 갈등과 충돌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컨대 남쪽엔 진정한 민주공화정을 희구하는 시민과 절대왕조 성격의 전체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집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씨 왕조를 꿈꾸던 이승만 정권, 유신왕국을 꿈꾸던 박정희 정권이 그랬습니다.
따라서 ‘조국이 어디냐’는 질문의 선택지는, 남북 양자택일이 아니라 민주공화정과 봉건왕조형 전체주의여야 합니다. 사실 유신정권은 세습만 안 이루어졌지 북쪽과 전체주의적 성격은 오십보백보였습니다. 선택지를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이 정부의 성격 때문입니다. 분명히 민주적으로 선출됐다고 하지만, 선출 과정에 치명적인 하자가 있었습니다. 국가기관이 선거 과정과 국민의 선택을 교란했습니다. 출발이 그러했으니 민주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또 이 문제를 논의하고 풀어가려는 과정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단의 조국을 따지는 이들에게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당신?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국민인가, 봉건적 유신왕조 백성인가.
 
지난해 12월13일 대통령선거가 막바지로 치닫던 중 박근혜 후보는 갑자기 지학순 주교의 묘소를 참배합니다. 검은색 예복에 흰색 장갑을 끼고 헌화 분향한 뒤 3분 남짓 묵념을 했습니다. 꽤나 당혹스런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이 박 후보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아버지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유신왕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마음가짐을 새로이 한 것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바로 그 순간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과거 독재정권 때처럼 선거공작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국가 비밀문건을 왜곡해 상대 후보를 종북으로 낙인찍고,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온갖 흑색선전 찌라시를 살포했습니다. 대표적인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1번(박근혜 후보) 대한민국, 2번(문재인 후보) 북조선인민공화국’. ‘문재인의 주군은 김정일’.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라는 폭력적인 질문도 사실 그 연장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부정선거를 따지는 국회의원에게 ‘종북하지 말고 월북하라’고 고함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주권을 농락하고 권력을 도둑질해 가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절대왕정을 꿈꾸는 전체주의자들의 나라도 아닙니다. 국민이 주인 되고, 여러 색깔 여러 생각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입니다. 북한이 김씨의 왕조라고, 남쪽 또한 특정 가문과 족벌의 나라가 될 순 없습니다. 그걸 꿈꾸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땅을 떠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원조 사제단’ 앞에서 긴 시간 참배했던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