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두환 신군부를 비판했다가 징역형을 받았던 20살 청년이 41년 만에 재심을 거쳐 무죄 선고를 받았다.
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지법 형사11단독 김성률 판사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의 계엄 포고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ㄱ(61)씨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80년 대학생이었던 ㄱ씨는 전두환 신군부의 압력으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사임한 다음 날인 그해 8월17일 경북 고령의 한 구멍가게에서 친구과 술을 마시던 중 “현 정권은 군에서 쥐고 있으며 독재를 한다. 최규하가 사임한 것은 전두환 때문”이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가 계엄 포고령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80년 10월2일 계엄보통군법회의는 “민심을 어지럽히는 허위 사실을 말해 유언비어 날조와 유포를 금지하는 계엄사령관 명의의 포고문 10호를 어겼다”며 ㄱ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ㄱ씨는 41년 만인 지난 3월 “당시 발언은 정당했다”는 취지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심 재판부는 “전두환 신군부가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군형법상 반란죄, 형법상 내란죄 등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이어 재판부는 “당시 발생한 ‘헌정 질서 파괴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정당행위”라며 “(당시 피고인의 발언은)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예린 기자
말레이시아 군당국이 공개한 중국군 항공기 비행 궤적. 가운데 빨간색 별 모양이 두 나라가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는 루코니아 암초 부근이다. 말레이시아 공군 트위터 갈무리
중국 군용기가 말레이시아와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는 지역 인근 상공에 무더기로 들어와 말레이시아 공군이 대응 출격에 나서는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중국 쪽은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주장했지만,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주권과 영공을 침범한 행위”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2일 <뉴스트레이츠 타임스>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말레이시아 공군은 지난달 31일 오전 11시52분께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 부근 상공으로 진입한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항공기 16대를 감지했다.
신문은 말레이시아 군 관계자의 말을 따 “중국군 항공기는 60해리 간격으로 대형을 형성해 전술 비행을 하고 있었으며, 싱가포르 비행정보구역(FIR) 쪽 상공 7~8.2km 고도에서 약 290노트 속도로 보르네오섬 코타키나발루 비행정보구역으로 진입했다”고 전했다. 비행정보구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항공 교통 관제를 위해 각 나라가 담당하는 공역을 나눈 것이다.
이 관계자는 “중국군 항공기는 이어 사라왁 주 해안에서 약 60해리 떨어진 거리까지 근접했으며, 이는 말레이시아의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 공군 당국은 즉각 중국군 항공기 쪽과 교신을 시도했지만 반응이 없자, 오후 1시33분께 전투기를 대응 출격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레이시아 공군은 대응 출격을 통해 중국군 항공기가 일류신 I1-79과 윈-20 등 대형 수송기인 것을 육안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군당국이 공개한 중국군 항공기의 비행 궤적을 보면, 양국이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는 남중국해 루코니아 암초(말레이명 베팅 파탕기 알리) 인근 상공을 지나 보르네오섬 해안에서 45해리(83km) 떨어진 제임스 암초 쪽으로 선회했다. 두 암초 모두 말레이시아의 배타적 경제구역(EEZ) 안에 있지만, 중국과 대만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해안경비대 함정은 이 일대에 자주 출몰하는데, 지난 3월에도 중국 선박 100여척이 루코니아 암초 부근으로 몰려온 바 있다. 미국 <디펜스 뉴스>는 소식통의 말을 따 “문제의 중국군 항공기는 중국이 남중국해 암초에 건설한 해상기지가 아닌 중국 본토에서 발진한 것”이라고 전했다.
군 당국의 통보를 받은 말레이시아 외교부 쪽은 전날 밤 긴급 성명을 내어 중국 쪽에 항의 전문을 보내는 한편, 자국 주재 중국 대사를 불러 “주권과 영공을 침범한 행위”에 대해 소명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히샤무딘 후세인 외교장관은 “말레이시아의 입장은 분명하다. 특정 국가와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국가 주권을 타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주재 중국 대사관 쪽은 반박 성명을 내어 “통상적인 비행훈련이었을 뿐”이라며 “훈련은 관련 국제법규에 따라 진행됐으며,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특정 국가의 영공을 침범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한국화이자제약은 대구시가 추진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에 대해 불법 거래로 파악된다며 필요할 경우 법적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한국화이자는 3일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 '코미나티주'를 국내 수입·판매·유통할 수 있는 권리는 화이자에만 있다"며 "바이오엔텍을 포함한 다른 제3의 기관은 한국 내 판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회사는 그러면서 "화이자가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공급되는 백신은 확인되지 않은 제품"이라고 일축했다.
회사는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동안 각국의 중앙정부와 초국가 규제기관에만 공급되고 있다"며 "화이자 본사와 한국화이자는 그 누구에게도 이 백신을 한국에 수입·판매·유통하도록 승인한 바 없으므로 중개업체를 통해 (국내에) 제공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화이자와 화이자 본사는 대구시가 한 무역업체를 통해 추진해왔다고 알려진 코로나19 백신 구매를 비공식적 거래로 규정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기로 했다.
한국화이자는 "해당 업체의 제안은 합법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공식적인 거래가 아닌 것으로 파악돼 진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이어 "조사 결과에 따라 관련 업체나 개인에 대해 가능한 법적 조치를 고려할 예정"이라며 "조사 과정에서 관련 국제 수사기관과도 적절히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시의사회와 의료기관 모임인 메디시티협의회 등은 화이자 백신 공동 개발사인 독일 바이오엔텍을 통해 국내 백신 공급을 추진해 왔으며, 대구시는 최근 화이자 백신 3천만 회분을 3주 안에 공급할 수 있다는 지역 의료계와 외국 무역회사의 제안을 정부에 전달했다.
정부는 대구시가 주선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의 진위가 의심된다며 구매를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권영진 헛발질… 허무하게 끝난 ‘화이자 백신 도입설’
중간 전달자 대구시 ‘난처’…“권 시장 사과해야” 지적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달 31일 코로나19 백신 관련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대구 의료단체와 대구시가 정부에 제안한 ‘화이자 백신 3천만명분 도입’이 사흘 만에 ‘허무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협상이) 가시적인 단계에 왔다’며 설레발친 권영진 시장 처지가 무색해지게 됐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3일 “(제약회사가 아니라 제3자가 백신을 공급해주겠다는) 이런 제안이 종종 있어서 원래 해프닝으로 끝났을 문제인데 이번엔 공개돼서 필요 이상으로 다뤄지는 것 같다“며 “해프닝성 사건이라 결론적으로는 저희가 추가 도입 협의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화이자 본사는 해당 백신의 진위가 의심된다며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대구 의료기관협의체인 메디시티대구협의회는 지난 연말부터 화이자 백신을 유통하는 독일 한 유통회사와 화이자 백신 6000만회 분량(3000만명 분량) 수입 협상을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이 내용을 전달받은 대구시는 ‘백신 계약 권한이 중앙정부에 있다’며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일 코로나19 범시민대책회의에서 “백신 수급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알고 메디시티대구협의회에서 다양한 경로로 도입을 추진해왔고, 최근에 가시적인 단계까지 왔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정부는 곧바로 “대구에서 제안한 무역업체가 공식적인 유통업체가 아니라 사실 여부가 의심되고, 국내로 정상 공급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3일에는 공식적으로 해프닝임을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3일 오후 브리핑에서 ”(백신 도입은) 그동안 메디시티대구협의회에서 논의해왔고, 대구시는 일부 지원해주는 정도였다”며 ”자세한 내용은 메디시티대구협의회에서 의견을 밝히지 않을까 판단한다”고 말했다. 전달자에 불과하다며 뒤로 빠진 모양새다.
하지만 권 시장의 가벼운 처신은 뒷말을 낳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 김대진)은 논평을 내어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권영진 대구시장의 과욕이 부른 참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권 시장 등 이번 논란의 장본인들은 책임지고 공식 사과하라”고 말했다. 김규현 기자
“대구시 도입 추진 화이자 백신, 정상 경로 아니다”
"한국 내 백신 판권은 화이자사에만 있어
화이자사, 진위 파악 뒤 법적 조처 뜻 밝혀”
대구시가 최근 정부에 한 민간 무역회사를 통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추가 구매 주선을 요청했지만, 정부가 파악한 결과 이 백신 공급은 정상적인 경로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공급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화이자는 상황에 따라 ‘법적 조처’를 할 뜻도 밝혀왔다.
2일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보부(중대본) 정례 브리핑에서 독일의 한 민간 무역회사가 대구 의료기관협의체인 메디시티대구협의회를 통해 대구시에 화이자 백신 6천만회(3천만명 분량) 추가 구매 제안을 한 것에 대해 “조금 더 확인해야겠지만 정상 경로는 아닌 것으로 지금 판단하고 있다”며 “공급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대구시와 메디시티대구협의회는 3주 안에 화이자 백신 6천만회분을 공급할 수 있다는 지역 의료계와 한 무역회사 제안이 담긴 서류를 정부에 전달했다. 현재 화이자 백신은 국가 단위 또는 코백스 퍼실리티(세계 백신공동구매 연합체)를 통한 공급만 하고 있다.
손 반장은 이날 “화이자 본사로부터 ‘현재까지는 한국에 대한 판권은 화이자사만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공급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통보받았다”며 “제안받은 제품군에 대해 화이자에서 현재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있고, 결과에 따라 법적 조치까지 하겠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1980년 5월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위를 하고 있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실권이 없었고,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실세였다는 점이 미국 정부의 문서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
2일 미 국무부가 외교부에 전달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서(14건·약 53쪽)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후 본국에 긴급 타전한 '서울에서의 탄압'이란 제목의 전문도 포함됐다.
이 전문은 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로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전두환에 대해 "군부 내에서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당시 전두환의 계급은 소장에 불과했지만, 군부의 실세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최규하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결정 과정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며 '무기력한 대통령'(HELPLESS PRESIDENT)이라고 표현했다.
해당 전문은 1990년대 중반 기밀 문서에서 해제됐지만 전두환과 최규하에 대한 이런 기술은 가려져 있다가 이번에 빠진 부분없이 모두 공개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서 고립된 상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가 1978년 7월 26일 신임인사차 중앙청을 예방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美 대사와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규하 대통령뿐 아니라 주영복 당시 국방부 장관도 실권이 없음을 솔직하게 밝힌 내용이 1980년 1월10일 주한 미 대사관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12·12 사태 후 국방부 장관이 된 주 장관이 방한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의원으로부터 '우리는 한국군의 안정을 바라며 지휘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당신을 돕겠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군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12·12사태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군부 세력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며 "실질적 지휘체계가 12·12 이후 형성됐다"고 말했다.
미 정부가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에게 경계심을 보이면서도 실세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한 정황도 외교문서에서 확인된다.
미 국무부가 1980년 3월13월 작성한 문서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전두환 간 면담 내용이 담겼는데, 국무부는 "전두환이 이번 만남을 올리브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그의 높아진 위상을 수용하고 당신(미 대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전두환이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국무부가 지적한 것"이라며 "전두환과 접촉하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미국 정부의 메시지도 계속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 공개는 5·18 관련 진상규명을 위해선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시민단체 및 학계의 의견에 따른 우리 정부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미국에 모두 문서 80건의 공개를 요구했는데, 작년 43건에 이어 이번에 14건이 공개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나 지휘체계에 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런 내용은 국무부가 아닌 미국 국방부나 한미연합사령부 등 군 기관이 보관하는 문서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아직 23건의 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정치적 파급력이 큰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일 수 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나머지 23건은 미국 정부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면 공개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