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내전이 임박했다는 영화의 예지력?

● WORLD 2025. 10. 5. 01: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속 미국 극좌와 극우

 

                                                                                 오동진 영화평론가

 

혁명은 낡고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지치는 것이다. 그래서 변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변질은 어쩌면 더 인간적이고 실존적이며 미래지향적일 수 있다. 그런 행보야말로 인간의 얼굴을 한 혁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념적으로 과격할 뿐인 혁명 이론은 반드시 조직과 이념 자체를 배신하게 된다. 가장 경계해야 할 부류는 좌파 모험주의자들이다. 그것이 우파 기회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인민의 적이라고 레닌은 말했다. 러시아를 혁명으로 이끌면서 레닌은 당내 투쟁 과정에서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등 한때 우파 기회주의 행태를 보였던 인물들을 용서한다. 반면 과격한 스탈린만큼은 끝내 경계했다.

 

극좌 테러리스트보다 더 강고한 백인 우월주의자 조직

 

폴 토마스 앤더슨이 내놓은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사실상 미국 내에 여전히 극좌 테러리스트 조직이 존재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 점이 놀라운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이제 한 줌도 안 되는 그 같은 정치 조직에 비해 그 반대편의 백인 우월주의자들, KKK의 후예들, 우생학적 인종주의자들이 더욱더 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사실상 미국 정가와 군대를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더 놀라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프렌치75’ 같은 반체제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한국의 내란 음모 세력 같은, 비밀 백인 우월주의자 조직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같은 조직이 강고하게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이번 영화를 본 후의 반응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어마어마’한 역작을 만들었다고 입에 침을 튀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이번 영화는 내면적으로 볼 때 일종의 리메이크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미 한번 만들어진 얘기이다. 2013년에 만들어진<컴퍼니 유 킵>이 그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로버트 레드포드가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샤이아 라보프가 상대역으로 나왔고 수잔 서랜든, 그리고 무엇보다 줄리 크리스티(맞다!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 역을 맡은 줄리 크리스티이다)가 나왔다. 예전의 <컴퍼니 유 킵>이든 이번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든 같은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 다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컴퍼니 유 킵>이 묘사하는 1970년대 정치적 사건을 2010년으로 옮겨 온 것일 뿐이다. 같은 사건이란, 미국의 극좌 그룹 ‘웨더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얘기이다. 1960~70년대 미국 내에는 좌파 진영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었으며 주류는 세 그룹이었다. ‘뉴레프트’와 ‘이피’, ‘블랙 팬서’가 그들이다. 그리고 비주류가 바로 이 ‘웨더 언더그라운드’이다.

 

 

좌파 진영 주류 세 그룹 아닌 한 비주류 그룹 이야기

 

이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 운동권의 세력 관계를 대략으로나마 아는 것이 중요하다. 1960~70년대 미국의 ‘뉴레프트’, 곧 신좌파는 ‘SDS(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를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학생운동 조직이다. 훗날 유명 상류층 변호사로 변절한 톰 헤이든이 이끌었다. ‘이피’는 ‘Yippie’를 말하는 것이다. ‘국제청년당과 히피연합(Youth International Party and Hippie)’을 말하는 것으로 펑크족과 선동가들로 구성된 정치집단이었다. 히피와 신좌파의 중간노선을 취했으며 아나키스트였던 애비 호프먼이 이끌었다. 호프먼은 레이건의 등장과 미국의 우경화를 비관해 자살했다. 그리고 그 유명했던 흑인 무장투쟁 조직인 흑표범당, 곧 ‘블랙 팬서’당이 있다. 이 ‘블랙 팬서’가 현대에 이르러 미국 대부호 영화사 월트 디즈니에 의해 <블랙 팬서>라는 히어로물 시리즈로 만들어진 것은 아이러니 중 최고의 아이러니이다.

 

이들 세 그룹에 비해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그다지 많이 알려진 그룹이 아니다. ‘SDS’와 ‘이피’가 대체로 백인 중심이었고 ‘블랙 팬서’가 흑인 중심 좌파 그룹이었다면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흑백 조합의 그룹이었다. 아이리스라는 이름의 흑인 지도자가 이끌었다. 이 아이리스는 버락 오바마가 자신의 정신적 멘토로 삼았음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소환됐으며, 오바마가 극좌 흑인 테러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공격의 소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베트남전 반대 등을 기치로 내걸고 펜타곤 폭탄 테러 등을 ‘감행’했고 조직의 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미시간주의 한 은행을 털다가 경비원을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러 대중의 공분을 샀다. 그 과정은 이번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

 

 

더 나은 사회 떠들면서 은행강도 벌이는 극좌 조직 리더

 

영화 속 정치 조직 ‘프렌치75’의 리더인 퍼피디아 베벌리 힐스(테야나 테일러)는 점점 더 이념적으로 극단화된다. 그녀는 이데올로기 못지않게 육체적 욕망, 현시욕 또한 점점 더 심해진다. 퍼피디아가 백인 우월주의자이면서 유색인종에 대한 패티시즘이 강한 스티븐 록조(숀 펜)와 외도 행각을 벌이다 결국 조직까지 배신하는 이유이다. 퍼피디아의 행동 동기는 더 나은 사회 체제를 만드는 것인 양 떠들어 대지만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채워 나가는 것에 불과했던 셈이다. 퍼피디아가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어린 딸을 버리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며 집을 나서지만 결국 저지른 것은 은행강도 짓이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웨더 언더그라운드’ 그룹의 미시간 은행털이 사건을 2010년대로 가져오고, 조직의 리더를 흑인 여자로 바꾸는 등(지도자가 여성이었던 그룹은 ‘블랙 팬서’였다. ‘블랙 팬서’의 지도자는 영화 속 퍼피디아처럼 쿠바로 도주했다) 역사적 사실 몇 가지를 극화시키는 과정에서 합치거나 해체시켰다. 퍼피디아의 캐릭터 자체가 ‘웨더 언더그라운드’의 아이리스와 ‘블랙 팬서’의 조앤 데버라 바이런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일종의 팩션인 이유이다. 이 영화는 토마스 핀천이 쓴 『바이랜드』를 원작으로 했다. 『바이랜드』가 팩션 소설이었던 셈이다.

 

 

출세 위해 좌파 추적하고 자신의 흔적마저 지우려는 극우주의자

 

주인공 밥 퍼거슨이 퍼피디아의 은행 살인강도 이후, 원래 이름을 펫에서 밥으로 바꾼 후 박탄 크로스(엘파소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상 공간. 이민자들의 천국으로 묘사된다)로 피신해 딸인 샬린을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로 개명시키면서까지 16년간 은둔하며 키워 낸 것은 <컴퍼니 유 킵>의 주인공 닉 슬론(로버트 레드포드)이 짐 그랜트라는 이름으로 30년간 은둔하면서 어린 딸(영화 속에서 그는 뒤늦게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을 키우는 설정과 비슷하다. 두 영화 모두 애지중지하는 딸이 위기에 처한다. 부성이 작동한다. 부성은 이념을 앞지르고 역사를 가로지른다. 사람들의 가슴을 훔친다.

 

같은 맥락이어도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얘기를 블랙 코미디로 풀었다. 바로 그 점이 이 역사의 얘기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서 대중들 정서에 한층 깊이 침투할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6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가 ‘프렌치75’를 중심으로 하는 펫(나중에 밥이 되는 디카프리오. 조직에서 그는 폭파 전문가이다)과 퍼피디아 베벌리 힐스의 삶, 여기에 록조(그는 이민자 수용소 소장에 불과했다)와의 만남에 치중한다면 2부는 16년 후 대령이 된 록조가 밥과 그의 딸 윌라를 쫓고, 특히 윌라를 제거하기 위해 박탄 크로스에 군대를 이끌고 치러 들어온다는 이야기로 돼 있다. 밥과 윌라를 제거하려는 록조의 행동 동기는, 자신이 순혈 백인 극우 집단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미국의 극우들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조직명을 동호회처럼 짓는다)의 일원이 되려 할 때, 자신과 퍼피디아와의 사이에서 혼혈인 윌라가 태어났을 수 있다는 의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의혹을 사전에 깨끗이 차단하려 한다.

 

늙고 병든 좌파와 기세등등 극우가 만드는 위태로운 코미디

 

2부의 추적 장면은 시종일관 슬랩스틱의 소동극으로 이어진다. 밥 퍼거슨은 이제 늙었다. 혁명은 결코 낡거나 쇠퇴하지는 않을지언정 늙고 병들었거나 이제는 ‘추억팔이’ 정도에 불과한 것일 수 있게 된다. 밥은 컨테이너 같은 집에서 살아가며 윌라가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KKK단 지도자의 초상이 걸려 있는 학교에 다니는 걸 못내 못마땅해 하고 집에서 대마초를 피워 대며 그 유명한 혁명 영화 <알제리 전투>를 보는 것으로 소일하는 정도이다. <알제리 전투>는 알제리민족해방전선(FNL)의 투쟁기를 그린 영화로 이탈리아 질로 폰테코르보가 1966년에 만든 영화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보기에 늙고 쓸모없어진(밥은 이제 옛 조직으로부터 온 통화에서도 암구호를 외우지 못해 온갖 말싸움을 벌인다), 그리하여 이제는 미국 사회의 변방 중 변방으로 밀려난 극단의 정치 조직을 여전히 대단한 세력인 양 과장, 왜곡하는 미국 내 극우 집단들의 행태야말로 나라를 매우 위태롭게 만드는, 진정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 코미디가 바로 지금 트럼프 제2기 시대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며 아마도 자신이 묘사한 스티븐 록조의 일그러진 표정(록조는 나중에 진짜 얼굴이 구겨질 만큼의 큰 총상을 입는다)처럼 트럼프 시대가 망가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록조처럼 ‘한물 간’ 좌파들 들춰내 죽이고 탄압하려는 트럼프

 

영화는 일정한 예지력을 갖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이번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알렉스 가랜드의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와 함께 미국에 내전 상황이 임박했음을 보여 준다. 마침 트럼프가 전 세계 모든 미군 장성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정신 훈육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트럼프도 록조처럼 이미 ‘한물 간’ 좌파들을 들춰낼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구한다는(MAGA 프로젝트 같은) 잘못된 사명감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탄압할 것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이 영화는 바로 그 얘기이다. 우리가 먼저 겪은 이야기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영화는 늘 진짜 벌어진 일, 벌어지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는 말은, 그래서 하는 것이다.

침팬지 연구로 세상 통념 바꾼 제인 구달 타계

● WORLD 2025. 10. 5. 01:1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강연여행 중이던 1일 91세로 수면중 영면
“지칠 줄 모르는 자연 보호와 복원 옹호자”

침팬지 육식, 도구 사용 사실 처음으로 발견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일 뿐"

현장연구 은퇴한 뒤에도 환경보호운동 계속

 

제인 구달, 침팬지와의 교감.   가디언 10월 1일
 

침팬지 등 영장류 현장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생명과 자연환경 보호운동 선구자였던 제인 구달이 10월 1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4년 영국 런던 태생인 제인 구달은 그의 나이 23세 때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 숲 속의 야생 침팬지 서식지로 찾아 들어가 현장에서 그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하고 육식도 하며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고력과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해 동물과 영장류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만년에 생명과 환경보호 운동가로 활동하면서도 운동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 주에 미국 뉴욕에서 강연하고 월스트리트 저널 팟캐스트에 출연한 그녀는 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신의 60여년의 연구와 삶의 이력을 되돌아보는 행사에 참석한 뒤 다음 주에는 워싱턴 D.C. 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1977년에 설립된 제인구달연구소는 1일 구달이 미국 강연투어의 일환으로 캘리포니아에서 행사를 진행한 뒤 수면 중에 노환으로 자연사했다고 발표하고, “동물행동학자로서 구달 박사의 발견은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다”면서 그녀가 “자연세계의 보호와 복원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옹호자”이기도 했다고 기렸다.

 

제인 구달. 2017년 런던에서 촬영. 가디언 10월 1일

 

타잔처럼 살고 싶었던 구달

 

가업인 카드 제조로 벌어들인 돈을 상속받은 카 레이서 모티머 구달과 영국 남부 본머스의 교회 목사의 딸이었던 마가렛 조지프 부부의 두 딸 중 맏이었던 제인 구달은 가난하지만 쾌활하고 자상한 여성들로만 구성됐던 가정에서 자랐다. 할머니, 어머니(2차 대전에 참전했던 모티머 구달과는 1950년에 이혼), 그리고 2명의 미혼 이모가 그 가정을 이끌었다. 어머니는 규칙보다는 합리적 이성을 우선하는 양육방식을 믿었고, 소녀들에게 기회가 제한돼 있던 그 시절에 딸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어린 시절 달걀이 어디서 나오는지 관찰하기 위해 닭장 안에 몇 시간이나 숨어 지켜보던 딸을 찾지 못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던 어머니는 딸이 나타나자 벌을 주는 대신 발견한 것들에 대한 구달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어 주었다.

 

어린 구달이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나무 가지 위에 앉아 읽던 책 속의 영웅 타잔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밀림 속을 줄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타잔처럼 아프리카의 유인원들과 함께 사는 삶을 꿈꿨다. 그것을 위해 어릴 적부터 동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침실 창문으로 다가오는 새들을 길들이고 말을 타는 법도 배웠다. 혼자 절벽을 오르내리며 여러 작은 포유류들도 만났다.

 

23세 때 옛 학교친구 초청으로 케냐 나이로비로

 

20대 초에 그 꿈을 이루게 해 줄 기회가 찾아 왔다. 예전 학교 친구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그 친구는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 외곽 언덕에 있던 자신의 아버지 농장에 와서 지내라고 구달에게 권했다. 1951년 남부 풀에 있는 남녀공학 업랜즈 고교를 졸업하고 비서 출신의 어머니 권유에 따라 옥스퍼드와 런던에서 비서 일을 하고 있던 구달은 옛 학교친구의 초청을 받고 어머니 고향 본머스로 가서 아프리카행 배 표값을 벌기 위해 웨이트리스로 일한 뒤 23번째 생일을 맞기 직전인 1957년 4월에 나이로비로 갔다. 친구 아버지의 농장에서 한 달을 지낸 뒤 구달은 마을에서 방을 잡고 비서일을 시작했다. 목표는 타잔처럼 아프리카 야생동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구달이 찾아낸 방법은 나이로비에 있던 코린던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였던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의 비서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리키는 인류의 진화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것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유인원 조상들의 행동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아프리카 유인원, 특히 침팬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야생의 침팬지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침팬지는 사납고 변덕스러웠으며, 사람보다 몇 배나 힘이 세서 총 없이 침팬지를 찾아다니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로 여겨졌다. 

 

가디언 10월 2일

 

1960년 탕가니카서 침팬지 ‘과학탐험’ 시작

 

바로 그때 구달이 리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리키는 첫인상이 좋았던 구달을 박물관 비서로 채용했다. 구달이 동물들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낼 수 있는 열정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리키는 서부 탕가니카 지역(지금의 탄자니아)으로 야생 탐험을 떠나기로 했다. 구달은 영국이 곰베 스트림 침팬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탕가니카 호숫가 숲 외딴 곳에 캠프를 설치했다. 거기에는 야생 침패지들이 있었고, 리키는 비서가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해줄 유용한 뭔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때도 구달을 밀어준 것은 어머니였다. 원래 영국 식민당국은 여성이 혼자 숲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구달과 함께 들어가겠다며 그 금역을 허물어준 것이 어머니였다.

그리하여 1960년 7월 “세계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과학탐험이 시작됐다.”(<가디언> 10월 2일)

 

침팬지 육식, 도구 사용 사실 발견

 

그해 말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 당시 26세였던 제인 구달은 야생 유인원 연구 현장 과학자로서의 그녀의 명성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는 침팬지가 그때까지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붉은 고기(red meat)를 먹는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그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관찰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침팬지는 채식주의자’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더 놀라운 사실이었는데, 그것은 침팬지가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침팬지는 흰개미가 세운 높다란 흙탑 옆에 웅크리고 앉아 긴 풀줄기를 손질해 흙탑 속 구멍 깊숙이 찔러넣는 ‘탐침’(probe)이자 낚싯대로 활용했다. 침팬지가 그 탐침을 좁다란 흰개미 흙집 속 터널 안 깊숙이 찔러넣으면 굴 안에 있던 병정계급 개미들이 본능적으로 강력한 턱을 침입물체에 박어넣었다. 그러면 침팬지는 조심스레 그 풀줄기를 빼내서 달라붙어 있는 병정개미들을 훑어 먹었다.

 

흰개미는 동아프리카 지역의 여러 종의 원숭이들에게 먹이가 될 만큼 그들에겐 맛있는 먹이였으나 그들을 이처럼 낚아서 먹는 전통(tradition of fishing)으로 발전시킨 것은 침팬지뿐이었다.

 

야생 침팬지가 물체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구달이 아니었으나, 그 행동을 그토록 면밀하고 반복적으로 관찰하면서 철저하게 기록한 최초의 인물은 구달이었다.

침팬지가 고기도 먹고(육식)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고, 구달은 그것으로 영쟝류학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원래 6개월 정도로 끝낼 예정이었던 그 연구 프로젝트는 구달의 그런 발견으로 새로운 지원 속에 더 많은 연구로 이어졌다.

 

당시까지 동물들은 대체로 반사작용과 본능의 무의식적 연쇄로 엮인 존재로 여겨졌으나, 구달은 야생 침팬지 관찰과 연구를 통해 그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계획을 세우고, 감정적인 삶을 영위하며 개별적인 성격(personality)과 특성(character)에 따라 행동하는 신중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디언 10월 2일

 

케임브리지대 동물행동학 박사학위

 

구달은 자신만의 방식, 그리고 결단력과 용기, 회복력과 열정으로 동물관찰과 과학에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데 기여했다. 현장연구를 통해 그것을 보여 줌으로써 구달은 그때 이미 세계 최고의 야생 침팬지 전문가가 됐다. 그것으로 그녀는 대학 학부 졸업자에게 주는 학사학위도 없이 1962년에 캐임브리지대 동물행동학 박사 과정생으로 입학해 196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시절 그녀는 이미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자신의 연구 주제들에 관한 글을 써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런 글들을 바탕으로 쓴 <인간의 그늘에서>(1971)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과학적 명성과 세속적 인기의 충돌

 

한동안 그녀의 인기는 그녀가 쌓은 과학적 명성을 능가해 때로 그것이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좋은 과학이란 원래 지루해야 하는 것(boring) 아니냐는 당시의 통념과, 어떻게 그렇게 예쁘고 젊은 여성이 일류 과학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경이의 충돌. 그런 논란의 중심에 동물학자 솔리 주커먼이 있었다. 1962년 구달이 과학 학회에서 첫 논문을 발표했을 때, 주커만은 침팬지 육식에 대한 그녀의 그 보고를 일상적이지 않은 일회성 기담(anecdote)에 토대를 둔 아마추어의 것이라 질책했다. 주커만은 그때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에게 보낸 짧은 서신에서 구달의 학회 발표에 의해 자극받은 자신의 ‘불안감’에 대해, “보통 비과학적인 취급을 받아 온 주제가 화려함(glamour. 젊고 아름다운 구달의 매력) 때문에 계속 비과학적인 그늘 속에서 다뤄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썼다.

 

그런 비난에도 구달의 전문가적 명성은 높아갔다. 1970년대 초에 구달은 스탠퍼드대의 정신의학 및 인간생물학 방문교수, 탄자니아 다르에살람대 동물학 방문교수가 됐다. 나중에 그녀는 미국 터프처대, 남가주대, 코넬대 교수도 역임했다.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낸 <곰베의 침팬지>(1986)는 곰베에서의 연구에서 얻은 야생 침팬지 연구 초기 25년의 지식을 요약한 것이었다. 이는 시카고 과학 아카데미에서 영장류학자들이 국제총회를 열게 만들었다. 그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야생 침팬지가 아프리카 전역에서 감소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외부로 유출돼 우리에 갇힌 침팬지들은 종종 학대와 혹사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냉엄한 공통인식에 도달했다.

 

현장연구에서 은퇴한 뒤 환경보호운동가로

 

25년 넘게 곰베 숲에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관여했던 구달은, 현역 과학 연구직에서 은퇴하고 환경보호론자이자 활동가로 주 활동영역를 바꾼 뒤에도 곰베 스트림 연구센터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곰베 센터는 오늘날 가장 오랫동안 운영된 과학 현장 연구 시설로 남아 있다.

 

1991년, 연구소는 젊은이들을 환경 보호에 참여시키기 위해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구달과 함께 활동하는 학생들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약 100개국에 걸쳐 활동적인 젊은이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올해 초, 연구소의 '행동을 통한 희망(Hope Through Action)' 프로젝트는 5년간 2950만 달러(약 415억 원)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 계획은 탄자니아 서부의 멸종 위기에 처한 침팬지와 그 서식지를 재조림과 "지역사회 주도 방법론"을 통해 보호하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며 지역 사회의 생계를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하지만 1월 20일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그 지원금을 삭감해버렸다. 

 

80대가 넘은 나이에도 구달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쓰고 강연을 이어가며 활동의 속도를 늦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가장 조용했지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오랜 기간 그녀와 긴밀히 협력해 온 이스트 앵글리아대 생물학자 벤 개로드 교수는 타계 소식을 듣고 말했다. "제인 구달은 세상을 바꾼 인물이었다. 그녀는 시끄러운 방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젊든 나이들었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녀는 1년에 300일을 여행하며 쉬지 않고 일했다. 내가 그녀를 아는 동안 매일 일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환경 변호사 파르하나 야민은 구달이 "유인원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며, “그녀의 탁월한 관찰 덕분에 우리는 언어, 사랑, 배려가 인간을 넘어선 세상의 핵심 요소이며,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구달이 "자신의 영웅"이라고 했다. "탄자니아 침팬지에 대한 그녀의 획기적인 연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 어떻게 살고, 사회화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녀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 한승동 기자 >

 

 

"결코 주권은 양도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셰인바움 취임 1년
트럼프, 수출품에 최고 30% 관세 부과해

"멕시코, 절차와 기술적 양보 거래했을 뿐
"트럼프식 세계에선 이중 게임 여지 작다"
룰라 정부 '전략적 모호성'에 우려 표명

이재명, 룰라와 셰인바움 특징 모두 갖춰

 

"단호한 실용주의"(Assertive pragmatism). 국제 컨설턴트인 기욤 슈나이더 박사는 '단호한 실용주의 대 전략적 모호성: 트럼프의 미국에서 멕시코와 브라질'이란 2일 자 <모던 디플로머시> 기고를 통해 동맹국, 경쟁국을 가리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폭력'에 대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3) 멕시코 대통령의 접근법을 이렇게 표현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접근법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으로 규정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3) 멕시코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맞이한 1일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 10. 01 [AFP=연합]

 

트럼프, 수출품에 최고 30% 관세 부과했지만
"멕시코, 분노 아닌 절제된 단호함으로 대응"

 

이 글에서 슈나이더 박사는 "트럼프의 미국은 적응하든, 저항하든, 재조정하든 선택을 강요받는 익숙한 위치로 라틴 아메리카를 되돌려 놓았다지만, 이 지역의 두 거인, 멕시코와 브라질은 너무도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세 부과와 이민·마약 단속 등 중남미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 2기 미국'에 대처하는 것에 그는 "멕시코는 일찍부터 게임을 읽었다"면서 "멕시코는 과잉 반응을 하는 대신에 '단호한 실용주의'를 택했다"고 해석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가 멕시코 수출품에 최고 30%의 관세 부과를 발표했을 때, 멕시코는 "분노가 아닌 절제된 단호함으로 대응했다"라는 게 슈나이더의 평가다.

 

셰인바움 정부는 일시적이지만 공급망 보존과 시스템 충격 완화를 위해 대미 협상을 통해 90일간의 관세 유예를 얻어냈지만, 그만한 대가도 치렀다. 신속한 범죄인 인도, 마약 단속 협력 강화, 일부 비관세 장벽 철폐 약속 등이 그것들이다. 이에 슈나이더는 "핵심은 멕시코가 절차와 기술적 양보를 거래했을 뿐, 결코 주권은 양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방적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협력을 (일종의) 화폐로 전환했다"고 풀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새로운 관세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4.2. AP 연합

 

"멕시코, 절차·기술적 양보 거래했을 뿐
결코 주권은 양도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

 

안보 의제에서도 멕시코는 무기 추적, 국경 검문, 정보 공유에서 더 긴밀한 협력을 허용했지만, "종속이 아닌 협력"의 원칙을 따랐다는 것이다. 슈나이더는 "워싱턴은 가시적 성과를 얻고, 멕시코는 대내외에 '자율성'을 과시하는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관세 90일 유예엔 "단순히 숨 쉴 공간 이상"이라는 그는 내년으로 예정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재검토를 앞두고 "축적되는 정치적 자본"이며, 조약이 재개될 때, 멕시코는 협력 기록을 제시하며 협정의 지속을 정당화하고 더욱 징벌적인 재협상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봤다.

 

슈나이더는 '상호 의존'이 멕시코의 최대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미 제조업 회랑은 멕시코의 노동력, 물류, 지리적 근접성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멕시코는 전술적 기동을 통해 긴장을 식힘으로써 트럼프의 무역 국가주의가 자동차 생산, 전자 산업, 농업 비즈니스를 흔들지 않도록 보장한다"며 "이것이 단호한 실용주의의 숨겨진 힘이다. 즉, 멕시코의 진정한 지렛대인 구조적 통합을 보호하면서 시간을 버는 능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3월에 미국의 관세 압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조직하고 그것을 트위터에 게시한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셰인바움 취임 1년
"미국 압력에 어조는 정중, 메시지는 단호"

 

앞서 슈나이더는 반년 전 '멕시코의 전략적 상승'이란 <모던 디플로머시> 기고(4월 3일)에서도 멕시코 연방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셰인바움이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에서 보인 태도에 대해 "어조는 정중했고, 메시지는 단호했으며, 결과는 멕시코가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협상하는 법을 배웠음을 보여줬다. 관세가 다시 부과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멕시코는 변덕스러운 파트너와도 긴장을 완화하고, 소통하며, 양자 간 신뢰를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3월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전 셰인바움 대통령은 각료, 기업인 등 관계자와 상의하고 미국 대통령 발언을 철저히 연구한다"며 "트럼프의 모욕적 언사에 불쾌감을 표하는 대신 침착하게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10월 1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이했다. 유대계 출신 좌파 정치인인 셰인바움은 대학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전공했으며 2018년부터 5년간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냈다. 멕시코 경제신문 엘피난시에로의 9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셰인바움 긍정 평가는 73%에 달하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7일 진행된 브릭스 정상회의 관련 기사회견 도중,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마우루 비에이라 외교장관의 말을 듣고 있다. 2025. 07. 07 [AFP=연합]

 

"트럼프식 세계에선 이중 게임 여지 작다"
브라질 정부 '전략적 모호성'에 우려 표명

 

슈나이더는 2일 기고에서 브라질 룰라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에는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룰라 정부는 브릭스 내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고 중국 관계를 심화하는 동시에 워싱턴과의 공개 충돌은 피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과는 혼란스러운 신호였다. 베이징엔 유대를 재확인하고, 트럼프엔 대화를 약속하는 이런 이중 전략은 현실에선 의심을 낳았다"면서 "워싱턴은 가혹하게 대응했다. 핵심 산업 부문에 대한 징벌 관세, 주요 감시 목록에 브라질 포함, 그리고 브라질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규정하는 담론이 그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에 대한 멕시코와 브라질의 대응 차이에 그는 "멕시코가 먼저 워싱턴을 진정시키고 조약 재검토를 준비하는 순차적 기동을 했다면, 브라질은 명확한 순서나 우선순위 없이 수사적 저항과 전술적 양보를 결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자자와 수출업자들은 (브라질의) 이러한 일관성 결여를 감지하고 있다. 그들은 더 높은 비용, 불확실한 무역 조건, 워싱턴과 베이징 양쪽과의 협상에서 약화된 지렛대를 경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3) 멕시코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인 16일 멕시코시티에서 군사 퍼레이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9. 16 [AFP=연합]

 

"멕시코, 단호함과 대립 같지 않음 보여줘,
이재명, 룰라와 셰인바움 특징 둘 다 갖춰

 

슈나이더는 "트럼프식 세계에는 이중 게임일 벌일 여지는 작다. 한 국가가 워싱턴에서 특혜를 기대하는 동시에 베이징에 충성한다는 신호할 수는 없으며, 그러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이미 드러나 있다: 약화된 수출 조건, 투자자들의 의심, 그리고 글로벌 협상에서 취약한 위치가 그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슈나이더는 "멕시코는 단호함과 대립이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단호함은 경계를 설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실질적인 결과물을 가지고 협상하는 것을 뜻한다. 원칙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과정에서 양보할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브라질은 정반대를 보여준다. 신호가 엇갈리면 비용은 증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멕시코의 단호한 실용주의는 화려하진 않지만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슈나이더는 "이것은 단순한 외교 차원을 넘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멕시코 기업들엔 △ 90일 단위의 단기 계획을 세우고 △ 계약서에 관세 조정 조항을 포함하며 △ 내년 USMCA 재검토 협상에 대비해 증거 자료를 준비하라는,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을 향해선 범죄인 인도, 합동작전 등 안보 협력도 대미 무역 협상의 포트폴리오 일부로 삼으라는 실질적 메시지를 준다고 풀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홍보영상에 항공기 유도원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2025.10.2 [홍보영상 캡처] 연합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는 브라질의 룰라와 멕시코의 셰인바움, 누구에 더 가까울까? 소년 노동자 출신에 시민과 함께 내란 극복을 통해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측면에선 룰라와 가까운 반면, 대미 협상에서 '예의는 지키면서 협력하되, 국익을 위해 굴복하지 않는’ 실용적 자세에선 셰인바움에 가까워 보인다.                          < 이유 기자 >

 

국힘 "국정자원 화재 때 대통령 뭐 했나" 선동
윤석열 최측근 주진우 "잃어버린 48시간" 앞장

박근혜 '잃어버린 7시간' 연상시켜 추석 여론전
대통령실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강한 유감"

가짜뉴스 확대 재생산 우려에 적극 대응 나서
화재 전후 이 대통령 동선 및 조치 상세히 설명

민주 "일선 공무원들까지 모욕, 파렴치한 행태"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9.2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어디서 뭐 했냐"며 대통령 행적에 무슨 흑막이라도 있는 듯 국민의힘이 근거 없는 의혹을 확산시키려 애쓰는 가운데 '찐윤' 주진우 의원이 급기야 '잃어버린 48시간'이라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의 '잃어버린 7시간'을 연상시켜 추석 연휴 기간 이 문제를 어떻게든 집중적으로 쟁점화하겠다는 당 차원의 여론 선동 일환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최측근이자 전직 검사인 주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정자원 화재로 국민 피해가 속출할 때 대통령은 무려 2일간 회의 주재도, 현장 방문도 없이 침묵했다. 잃어버린 48시간"이라며 "9월 26일 저녁에 발생한 국정자원 화재는 22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진화됐다. 이틀 동안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나?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냉부해(냉장고를 부탁해) 촬영 일자를 공개하라"고까지 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라며 "강한 유감을 전한다"고 밝혔다. '억지 의혹'이라고 규정하며 주 의원에 대한 '법적 조치'도 거론했다. 이번 국가적 재난을 두고 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야당발 의혹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가짜뉴스가 명절 연휴 내내 확대 재생산되며 민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미 그런 조짐도 보여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5일(현지시간) 뉴욕 JFK공항 공군 1호기 탑승 전 차지훈 주유엔대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9.26. 연합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9월 26일(금) 오후 8시 20분경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 총회 참석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또한 귀국 직후이자 화재 발생 다음날인 27일(토) 오전 9시 39분경 이규연 홍보수석은 "이재명 대통령이 화재와 관련하여 전 부처별 행정정보시스템 재난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른 대응 체계, 대국민 서비스의 이상 유무, 데이터 손상, 백업 여부 등을 국가위기관리센터장과 국무위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밤새 상황을 점검했다"는 공지문을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 단체창에 올렸다.

 

이 대통령이 귀국 직후 밤을 새워 화재 대응 상황을 점검했고 이를 오전 일찍 언론에도 알렸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다음날인 28일(일) 오전 10시 50분에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으며 비서실장, 안보실장, 정책실장 등이 대통령에게 직접 화재 관련 상황을 대면 보고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30분에는 이 대통령이 직접 정부서울청사에 가서 관계부처 장관, 17개 시도지사 등과 대면회의 및 화상회의를 주재했다.

 

강 대변인은 "따라서 '국정자원 화재로 국민 피해가 속출할 때 대통령은 무려 2일간 회의 주재도, 현장 방문도 없이 침묵했다'는 주진우 의원의 글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라며 "대통령실은 억지 의혹을 제기해 국가적 위기 상황을 정쟁화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행위에 법적 조치도 강구 중임을 알린다"고 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22대 총선 공보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해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췄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주진우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억측과 거짓 선동으로 추석 연휴 시작부터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주 의원은 대통령 깎아내리기에 급급해서 이성마저 잃었나?"라며 "주 의원의 거짓·허위 선동은 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정자원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일선 공무원들까지 모욕하는 일이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주 의원은 즉각 거짓 선동을 중단하고 이 대통령과 국정자원 피해 복구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면서 "민주당은 국가적 위기 상황마저 대통령 깎아내리기 등 정쟁으로 몰아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주진우 의원의 파렴치한 행태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당은 주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조치를 포함한 강력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문금주 원내대변인도 "추석 연휴의 시작이자 개천절인 오늘 주진우 의원이 본인의 SNS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허위 망언을 내뱉었다"면서 "국민의 안전에 빨간불이 들어와도 퇴근해 버리는 내란 수괴 윤석열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더니 세상이 내란 수괴의 눈으로 보이는 건가? 아니면 이재명 대통령이 내란 수괴 윤석열처럼 국가적 비상사태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익,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금 철창에 갇혀 있는 내란 수괴 윤석열과 동급으로 치부하여 망상하는 것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주진우 의원은 본인의 망상에 의한 허언과 망언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정치 선동의 도구로 활용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나 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