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사상 최대 순간풍속(시속 379㎞)의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중부 지역을 강타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적·물적 피해를 불러일으켰다. 외신들이 현지에서 전해오는 사진과 기사를 보면 지옥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먼저 느닷없는 대자연의 횡포 앞에 공포와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레이테섬의 주도이자 최대 피해지인 인구 20만명의 해안도시 타클로반은 시내에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쑥대밭이 됐다고 한다. 거리는 쓰레기와 건물 잔해로 뒤덮인 강으로 변했고, 고인 물에 주검이 숱하게 떠다니고 있는 아비규환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망·실종된 피해자만 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서배스천 로즈 스탬파 유엔 재해조사단장은 피해 현장을 둘러본 직후 22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인도양 쓰나미 직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가 지금 추정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피해 규모가 이렇게 커진 데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예측불허의 기상 교란과 필리핀의 후진적인 재해예방시스템도 한몫을 했다. 앞으로 인류 공영 차원에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비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긴급한 것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하루빨리 구호하고, 피해지역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복구하는 것이다.
 
필리핀 정부가 이미 국고의 재난기금을 투입하기 위한 ‘국가 재앙 사태’를 선포했고, 미국, 유럽연합, 영국, 일본 등이 즉각 구호기금과 수색장비 및 인력 제공을 약속하는 등 앞다퉈 지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도 11일 긴급구호대 파견과 구호금 지원 규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웃의 엄청난 불행에 인류애를 발휘하는 것은 정상국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필리핀은 6.25전쟁 참전국이자, 동남아시아의 핵심 우방국이다. 결코 지원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 또한 정부는 레이테섬 등에서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알려진 40여명의 국민에 대한 소재 파악과 구출에 최선의 노력을 펼쳐야 한다. 가장 위급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했던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페이스북 폭언’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프랑스 파리 반정부 시위대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한 그의 발언에 대해 집회 참가자들이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가 하면 미국의 대형 웹커뮤니티 사이트에 관련 기사가 링크되어 국제적 망신까지 샀다고 한다.
문제의 발언은 박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한 지난 2, 3일 현지에서 교민과 유학생들이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 개입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인 데 대한 것이었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는 한국의 합법적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는 등의 펼침막을 내걸고 집회를 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이를 두고 ‘통진당 파리지부 수십명이 모여서 했다네요’라는 등의 주장을 편 데 이어 ‘이번에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채증 사진 등 관련 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재에 제출하겠습니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 외국에서 교민들이 조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벌인 반정부 집회를 두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은 경솔하기 짝이 없으며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의 양식을 의문스럽게 하는 행동이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더우기 그들은 집회 시위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이다. 현지 한국대사관이 프랑스 당국에 시위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망신을 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실로 낯뜨거운 망동이 아닐 수 없다. 국회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이 사진 채증 운운하며 헌재에 제출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한 것은 마치 조폭도 같은 수준이다. 헌재가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되는 겁박에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통합진보당 파리지부의 집회였다는 김 의원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정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명확하지도 않은 사실에 입각해 집회 참가자들을 낙인찍고 유형, 무형의 피해를 주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뒷골목 조폭같은 행태일 뿐이다.
 
박 대통령이 방미 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으로 망신을 샀던 게 불과 몇달 전이다. 이번엔 김 의원이 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하며 과잉충성으로 오히려 화를 자초한 꼴이 됐다. ‘종북 저격수’를 자칭한다는 김 의원이 수준 이하의 발언을 쏟아낸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맡았던 후배 검사를 운동권 출신으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여성 국회의원이 부적절한 관계가 있다는 등의 막말을 내뱉기도 했다.
김 의원 같은 이가 수준 이하 발언으로 주목받는 것 자체가 우리 정치의 한심한 수준을 보여준다. 정치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김 의원은 당장은 종북몰이로 ‘장사를 좀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준이 안 되는 정치인은 결국 퇴출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 의원은 강원 춘천 지역구 주민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한마당] ‘정치검찰’, ‘멋진검찰’

● 칼럼 2013. 11. 17. 20:59 Posted by SisaHan
1998년 4월9일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뒤 처음으로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물었다.
“과거 한보사건 수사 당시 수사 책임자가 교체되고, ‘깃털’만 당하고 ‘몸통’은 빠져나갔다는 국민 비난이 쏟아졌는데 총장은 당시 수사가 공정했다고 생각합니까.”
김태정 총장은 한동안 답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시 검찰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였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불신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데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이 법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은행이 저런 꼴이 안 됐을 테고 기업체의 경쟁력 상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고 결론을 맺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부는 붓글씨로 액자에 담겨 대검찰청 회의실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휘호를 써주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랬던 김대중 정권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호남 출신 검사들이 요직을 차지했고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살폈다. 
정권과 검찰의 상하관계가 대등한 수준으로 조정된 것은 노무현 정권 때였다. 현직 대통령과 검사들이 온 국민 앞에서 맞짱토론을 벌였다. 검찰은 대통령 측근 실세들의 비리를 주저 없이 사법처리했다. 정권에 맞선 송광수 검찰총장, 안대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다.
거기까지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검찰은 ‘정권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의 최근 행태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마치 집권세력의 정적을 물어 죽이는 사냥개로 전락한 모습이다.
법무부가 내놓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 경위’에는 “1945년 김일성이 주장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북한의 지령에 따라 2011년부터 강령에 편입했다”, “2000년 민노당이 창당할 무렵부터 최근까지 북한은 간첩을 통해 다수의 지령을 하달하여 통진당의 운영에 개입, 결국 상당 정도 현실화했다”는 등의 표현이 나온다. 1980년대 공안정국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만들고 공안검사들이 베껴 쓰던 공소장보다도 수준이 떨어진다. 헌법재판소 심리에서 도대체 이를 어떻게 증명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새누리당이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조직적으로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고 물타기 차원의 정치공세를 폈다. 며칠 뒤 검찰이 전공노 홈페이지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김무성 의원 서면조사에 대해 야당이 문제를 제기하자, 김무성 의원이 소환조사를 자청했다. 검찰이 다음날 소환 방침을 밝혔다.
검찰은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에 대해 3개월 정직 중징계를 청구하고 수사를 가로막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징계하지 않기로 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합당한 결정”이라고 장단을 맞췄다. 검찰과 새누리당은 ‘검여(검찰과 여당) 동일체’로 움직이고 있다. 뻔뻔한 정도가 양심을 아예 갖다 버린 것 같다.
해방 이듬해 이승만 정권에서 감찰위원장이 임영신 상공부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27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소하지 말라고 검찰에 압력을 가했지만 최대교 서울지검장은 임영신 장관을 배임 및 배임교사, 수뢰 등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에 대통령의 입김이 미치던 시절이다. 최대교 지검장은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던졌다. 리크루트 스캔들과 록히드 사건을 파헤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의 모토는 ‘거악(巨惡)이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하라’였다. 검찰은 역시 살아 있는 권력과 당당하게 맞설 때가 멋지다. 멋진 검찰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만드는 위키백과는 ‘정치검찰’을 “검찰 본연의 임무보다 정치적 활동에 치중하는 검찰을 이르는 말이다. 검찰의 정권 눈치 보기, 권력에 줄서기 문화를 빗대어 검찰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고 정의하고 있다. 
검찰의 지금 모습은 ‘멋진 검찰’일까, ‘정치검찰’일까.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