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머뭇거리다 실기하면 나중 엄청나게 후회하는 일 생길 수 있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기습 지명하면서 ‘위헌적 월권행위’라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한 권한대행을 재탄핵해 임명을 저지해야 한다는 헌법학자들의 주장이 나왔다.

 

헌법학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9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와 한 권한대행의 위헌적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임명을 막기 위한 방안과 관련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탄핵”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은 크게 지명→국회 인사청문→임명 등 3단계로 이뤄지는데, 한 권한대행을 탄핵해 직무를 정지시킨 다음 후임 권한대행이 지명을 철회토록 유도하고 그 사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자는 것이다.

 

한 권한대행은 임명직에 불과해 민주적 정당성이 없음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현상유지 차원에서만 행사돼야 한다’는 학계의 통설을 깨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지명해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앞서 “(최상목의) 헌법재판관 임명 방기는 부작위에 의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던 김정환 헌법 전문 변호사도 같은 방송에 나와 “입법이 불비한 부분이 있어 임명을 밀어붙이는 경우 이를 막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탄핵이 효과적이고 빠를 뿐만 아니라, 탄핵할 수 있는 요건들이 다 갖춰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헌법소원, 지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여러 대응 방안이 백가쟁명식으로 거론되지만 각하 우려가 존재하고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재로썬 한 권한대행 탄핵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헌법학자들은 이른바 ‘역풍’을 우려해 탄핵을 주저하는 야권에도 결단을 촉구했다. 임 교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자칫 머뭇거리다 실기하게 되면 나중에 엄청나게 후회하는 일 생길 수도 있다”며 “윤 전 대통령이 만장일치로 파면됐음에도 끝까지 헌법을 위반하는 한 권한대행을 헌법연구자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임 교수와 김 변호사를 포함한 헌법학자 100여명이 참여하는 ‘헌정 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도 성명을 내어 “국회는 한 권한대행이 중대한 헌법 위배 상태를 지속하는 경우 그 조속한 해소를 위해 탄핵소추 등 가능한 모든 헌법적·법률적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국민대표기관으로서 헌법수호의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한 권한대행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법학자의 주장도 나왔다. 형사법 전문가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윤석열 탄핵은 대통령 1인에 대한 탄핵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에 대한 탄핵이기도 하다. 다만 국정을 공백으로 둘 수 없기에 2개월 과도기 권한대행을 하도록 한 것”이라며 “따라서 한덕수의 권한은 극도로 제한돼야 하며 그에게는 단지 선거관리 및 정권인수인계 정도의 최소한의 직무만이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 권한대행에게) 정치적 책임뿐 아니라 형사적 책임도 향후 정권교체 이후 명확히 물어야 할 것”이라며 “한덕수의 행위는 한마디로 말하면 헌법모독, 헌법왜곡의 죄질을 갖는다. 그런 죄 조항은 없지만 직권남용죄는 성립할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 한겨레 심우삼 기자 >

 

비난 빗발치자 ‘대선-개헌 동시 투표’ 주장 철회

 

 
 
                        우원식 국회의장. 김경호 선임기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오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개헌 논의는 대선 이후 이어가자”고 밝혔다.

 

우 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국회의장의 제안에 선행됐던 국회 원내 각 정당 지도부와 공감대에 변수가 발생했다. 현재로서는 제기된 우려를 충분히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앞서 6일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제안했으나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야당의 반발이 쏟아진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이 이완규 법제처장 등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며 정국이 요동치자 ‘대선-개헌 동시 투표’ 주장을 철회한 것이다.

 

우 의장은 개헌 주장의 배경도 상세히 밝혔다. 그는 “대선 동시 개헌을 제안한 것은, 지난 30년 동안 반복한 개헌 시도와 무산의 공회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며 “대선 전이 대통령 임기를 정하는 4년 중임제를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또 “12·3 비상계엄이 불러온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방안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야권에서 그의 권력구조 개헌 주장을 ‘내각제 개헌’으로 몰아붙이며 공격이 쏟아진 데 대해서도 유감을 나타냈다. 우 의장은 “어떤 이유로 의장의 개헌 제안이 내각제 개헌으로 규정됐는지는 알 수 없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합리적이고 진지한 토론을 위축시키고 봉쇄하는 선동”이라고 밝혔다.   < 한겨게 엄지원 기자 >

 

우원식 거듭 “대선·개헌 동시투표 위해 국민투표법 개정하자”

이재명 대표 현실적 불가론에 다시 제안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음료를 마시고 있다. 연합

 

우원식 국회의장이 7일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조기 대선과 동시에 개헌 투표를 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은 필요하지만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전날 우 의장이 내놓은 ‘대선-개헌 동시 투표’ 제안을 거부하자 다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우 의장은 “국회 양 교섭단체 당 지도부가 대선 동시 투표 개헌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헌은 제 정당 간 합의하는 만큼 하면 된다. 이번 대선에서부터 개헌이 시작될 수 있도록, 국민투표법 개정부터 서두르자. 적극적 협의를 당부한다”는 입장을 국회의장 공보실을 통해 밝혔다.

 

앞서 이 대표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개헌 동시 투표는 어렵다는 뜻을 밝히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국민투표법상 사전투표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현실적 이유로 거론했다. 사전투표와 본투표로 진행되는 대선과 달리, 본투표일 당일에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게 되면 개헌 정족수인 ‘유권자 과반 투표-투표자 과반 찬성’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대표는 “5·18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방안이나 계엄 요건을 강화해 함부로 군사 쿠데타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법이 개정돼 현실적으로 개헌이 가능하다면 곧바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날 우 의장의 “권력구조 개헌” 제안과는 결이 다르다.

 

이날 우 의장의 추가 입장은 대선-개헌 동시 투표 불씨를 이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당에서 우 의장의 개헌 제안에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국민투표법을 개정한 뒤 일단 ‘여야가 합의하는 만큼’으로 개헌 범위를 좁혀 개문발차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내란 옹호 프레임에 갇힌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자 ‘개헌 찬반 프레임’으로 빠르게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탄핵 사태를 겪으며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개헌안을 마련해 대통령 선거일에 함께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한겨레 김남일 기자 >

 

 

한덕수 ‘이완규 임명’에 효력정지 가처분 “권한 없는 행위로 위헌”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활동가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들머리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이완규 법제처장 헌법재판관 임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한덕수 권한대행을 직권남용으로, 이완규 법제처장을 내란죄로 경찰청에 고발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과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방기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던 김정환 변호사는 9일 한 대행의 행위에 대해 “청구인의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에 의해 임명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며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의 심판 대상은 한 대행의 ‘지명 및 인사청문요청안’이다. 김 변호사는 기본권 침해 자체는 임명 행위로 발생하지만, 지명과 인사청문요청안 제출이 임명을 위해 필수적인 절차이며 기본권 침해가 장래에 발생하더라도 확실하게 예측된다면 침해의 현재성이 인정된다는 헌재의 결정례를 들어 헌법소원을 냈다. 김 변호사는 이날 제출한 신청서에서 “한 대행의 임명행위가 위헌·무효로 판단되는 경우 그 심리가 모두 무효가 되어 신청인은 다시 심리절차를 진행해야 하거나 재심 절차가 진행될 위험이 있다”며 “이같은 현저한 손해를 입지 않도록 이완규·함상훈에 대한 한 대행의 임명절차 효력과 진행을 중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이후 헌재에는 김 변호사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헌법소원도 다수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상유지를 넘어서는 권한행사를 부정하는 학설이 헌법학계의 통설”이라고 밝혔다. 또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직접 부여받은 대통령이 갖는 헌법상 고유권한이기에, 이 사건의 지명과 인사청문요청 등 일련의 과정은 모두 한 대행의 권한 없는 행위이며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로서 위헌·무효”라고 덧붙였다.   < 한겨레  김지은  오연서 기자 >

 

정규재 “간신배 한덕수, 윤석열 은밀한 지령 수행”…이완규 지명 맹비난

 

 
 
                              보수 논객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유튜브 갈무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기습적으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위헌적 월권 행위’라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보수 논객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을 “무능하지만 기회주의적인, 노회한 직업관료 인생에 대미를 장식하는 화룡점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 권한대행은 임명직에 불과해 민주적 정당성이 없음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현상유지 차원에서만 행사돼야 한다’는 학계의 통설을 깨고 전날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지명해 거센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정 전 주필은 특히 이 처장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윤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대학 친구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로 46년 지기다. 정 전 주필은 “이완규를 임명(지명)한 것은 전적으로 파면당한 윤석열의 지시요 부탁이다. 한덕수가 이완규를 임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한덕수의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이며 마지막인 충성”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주필은 앞서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며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거부한 뒤 최상목 당시 권한대행 역시 마은혁 후보자를 제외한 2명만 임명한 배경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윤석열 탄핵 판결에서 5 대 3으로 팽팽한 가운데 추가로 1명이 더해져 6 대 3 파면이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소위 (탄핵) 반대표를 줄이기 위한 꼼수였음이 입증되는 것”이라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덕수를 비롯한 이들 무리는 탄핵을 방해하는 헌정 유린의 죄를 범한 것이 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정 전 주필은 한 권한대행 등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 권한대행 등은 명확하게 헌법재판소 구성을 방해한 중범죄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의법처리가 필요하다”며 “한덕수 같은 간신배들이 윤석열의 은밀한 지령을 수행하면서 나라를 어지럽히게 둘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12·3 내란사태 하루 뒤 윤 전 대통령과 안가 회동을 한 4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내란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 처장에 대해서도 “내란죄 공범으로 수사가 즉각 신속하게 재개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심우삼 기자 >

 

윤석열의 ‘법률 집사’ 이완규, 해소되지 않은 ‘그날’의 의혹

 

                  이완규 법제처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곧 공석이 될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 가운데 1명으로 ‘기습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은 ‘내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공직 부적격자’다. 특히 그가 12·3 비상계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참석한 ‘삼청동 안가 회동’은 임박한 내란 수사를 앞두고 범죄 사실 은폐와 추후 법률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공모의 장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받는다.

 

이 처장은 지난 4일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서울법대·연수원 동기로 친분을 맺은 46년 지기로, 법조계의 대표적인 ‘윤석열 인맥’으로 꼽힌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내린 징계 처분의 취소 소송과 윤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관련 사건을 변호했다. 2022년 대선 당시엔 윤석열 선거캠프에서 활동했고,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꾸려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정무사법행정분과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제처장으로 임명된 것도 그만큼 윤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점을 방증한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일찌감치 낙점해두고 있었다는 관측이 파다했다. 그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두고 ‘한덕수의 인사가 아닌 윤석열의 인사’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큰 논란은 그가 12·3 비상계엄 다음날,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과 회동한 사실이다. 박성재 장관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보자는” 친목 목적의 자리였다고 해명했지만, 내란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대통령 안가’에서 이뤄진 윤석열 정권 ‘법조 실세’들의 만남을 친목 모임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정황상 내란 수사를 앞두고 사건 은폐와 대응 법리를 마련하기 위한 ‘대책 회의’ 성격의 자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처장의 수상한 행적은 ‘비밀 회동’ 뒤에도 이어졌다. 회동 직후 돌연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이다. 이 처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증거 인멸한 것 아니냐”(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질문에 “증거 인멸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저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답했고, “왜 휴대전화를 교체했냐”(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는 질문에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었다. 사용하기 불편한 점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교체했다”며 석연찮은 해명을 내놨다.

 

이 처장은 현재 경찰에 내란 혐의로 고발돼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그는 이미 한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휴대전화를 교체한 이유 등에 대해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날도 이 처장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두고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 지명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이 처장은 고비 때마다 국회에 출석해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법률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2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은 형사재판 결과 이후 결과를 내는 게 타당한 것 아니냐’는 국민의힘 쪽 질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논거는 충분히 있다”고 감쌌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대통령 수사에 대해서는 “공소권이 없으면 수사할 수 없다고 (해석) 하는 쪽이 훨씬 더 다수”라고 했다.

 

일각에선 그가 2022년 5월 법제처장 취임 전까지 국민의힘 당원 신분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의혹이 사실이면 ‘정당의 당원 신분을 상실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그의 지명은 원천 무효가 된다. 이에 대해 이 처장은 이날 한겨레에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국민의힘 쪽은 “당적 보유 여부는 개인정보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 손현수 배지현 기자 >

 

 

“내란 종식을 막으려는 알박기”라는 비판 거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열흘 뒤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왼쪽)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한겨레 자료사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열흘 뒤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8일 지명했다. 국회 선출 103일 만인 이날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끼워넣기 인사’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자리는 ‘대통령 몫’인데다 이완규 처장은 내란 가담 의혹도 사고 있어 “위헌”이자 “내란 종식을 막으려는 알박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야당은 한 권한대행 재탄핵 검토에 들어갔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 앞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고,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심판 역시 진행 중인 상황에서 헌재 결원 사태가 반복돼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오는 18일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후임자 없이 퇴임하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0~12월처럼 다시 ‘6인 체제’가 돼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헌재가 위헌이라고 거듭 판단해 더는 미룰 명분이 없는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는 동시에 이들을 지명한 것이다. 한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제청과 국회 동의 과정을 마친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도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덕수 총리에게는 그런(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할) 권한이 없는데, 자기가 대통령이 된 걸로 착각한 것 같다. 토끼가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가 되는 건 아니다”라며 “오버하신 것 같다”고 비판했다. 헌재는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대통령 임명 3명으로 구성되는데, 임명직 총리가 선출직 대통령과 똑같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얘기다. 민주당은 이 처장 등이 지명되자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률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선 한 권한대행 재탄핵 목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조국혁신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이완규 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데 한층 격앙됐다. 이 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46년 지기인데다, 12·3 비상계엄 이튿날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과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회동을 해 내란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된 상태다. 민주당은 공수처의 즉각 수사를 촉구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내란 공범 혐의자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건, 윤석열의 의지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한 권한대행이 공석이 될 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처장은 미스터 법질서, 미스터 클린”(권성동 원내대표)이라고 반겼다. 하지만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 한겨레 장나래  전광준  김채운 기자 >

 

한덕수, 이완규 인사 검증은 했나…직무 복귀 뒤 15일 만에 지명

통상 인사 검증에 한 달 걸려

 

 
 
이완규 법제처장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위헌·월권 논란이 커지고 있는 ‘이완규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인사검증을 했는지를 두고도 의혹이 제기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직무 복귀 기간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인사검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검증 없이 지명부터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참석 뒤 기자들을 만났다. 이 처장은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소식을 언제 들었냐는 질문에 “어제 들었다”고 했다. 언제 인사검증에 동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통상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기간은 한 달 정도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고위공직을 지낸 인사는 “국세청 납세내역부터 준비해야 할 자료가 많다. 탄핵 기각으로 한덕수 권한대행이 직무에 복귀한 시점을 고려하면 검증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적 지명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직무정지 상태에서는 어떤 지시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 지명도 없이 민정수석 등 참모가 자기 마음대로 인사검증을 시작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달 2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했다. 직무 복귀 당일 이완규 처장에 대한 인사검증을 지시했다고 가정해도, 당사자에게 지명 사실을 알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5일에 그친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한덕수 총리가 복귀한 지 고작 2주인데 그동안 한 총리 스스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찾고 검증까지 마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폐지됐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위한 신원조사 기능을 부활시켰다. 고위공직 경험이 있는 인사는 “국정원에서 지인 등을 대상으로 평판 조회에 들어가면 곧바로 소문이 난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 권한대행이 이완규 처장을 지명하는 배경에 파면된 윤석열이나 국민의힘 친윤석열계 의원, 용산 대통령실 참모 등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12·3 비상계엄 이전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이완규 처장을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려 한다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돌았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내란 수괴 윤석열의 의지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인사”라고 했다.

 

법제처장은 국회 인사청문 대상이 아니다. 앞서 법제처장 임명을 앞두고 인사검증을 했더라도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을 상대로 엄격한 인사검증을 했다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 김남일 기자 >

 

정규재 “간신배 한덕수, 윤석열 은밀한 지령 수행”…이완규 지명 맹비난

 

 
 
                            보수 논객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유튜브 갈무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기습적으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위헌적 월권 행위’라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보수 논객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을 “무능하지만 기회주의적인, 노회한 직업관료 인생에 대미를 장식하는 화룡점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 권한대행은 임명직에 불과해 민주적 정당성이 없음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현상유지 차원에서만 행사돼야 한다’는 학계의 통설을 깨고 전날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지명해 거센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정 전 주필은 특히 이 처장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윤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대학 친구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로 46년 지기다. 정 전 주필은 “이완규를 임명(지명)한 것은 전적으로 파면당한 윤석열의 지시요 부탁이다. 한덕수가 이완규를 임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한덕수의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이며 마지막인 충성”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주필은 앞서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며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거부한 뒤 최상목 당시 권한대행 역시 마은혁 후보자를 제외한 2명만 임명한 배경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윤석열 탄핵 판결에서 5 대 3으로 팽팽한 가운데 추가로 1명이 더해져 6 대 3 파면이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소위 (탄핵) 반대표를 줄이기 위한 꼼수였음이 입증되는 것”이라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덕수를 비롯한 이들 무리는 탄핵을 방해하는 헌정 유린의 죄를 범한 것이 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정 전 주필은 한 권한대행 등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 권한대행 등은 명확하게 헌법재판소 구성을 방해한 중범죄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의법처리가 필요하다”며 “한덕수 같은 간신배들이 윤석열의 은밀한 지령을 수행하면서 나라를 어지럽히게 둘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12·3 내란사태 하루 뒤 윤 전 대통령과 안가 회동을 한 4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내란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 처장에 대해서도 “내란죄 공범으로 수사가 즉각 신속하게 재개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심우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