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2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서 경찰차에 화염병을 투척해 체포된 뉴욕주 변호사 콜린포드 매티스(왼쪽)와 우르즈 라만의 머그샷.

              

뉴욕의 기업·공익 변호사 커플, 최소 징역 5년형 가능성

코로나19 이후 실직과 과로 스트레스인종갈등에 폭발

엘리트 사회 진입했지만미국 사회 총체적 위기 못 비껴가

          

촉망받던 뉴욕의 젊은 변호사 커플이 왜 경찰차에 화염병을 투척해, 중형에 처하게 됐을까?

뉴욕의 변호사 콜린포드 매티스(32)와 우르즈 라만(31)은 지난 529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인종차별 차별 반대 시위 도중에 경찰차에 화염병을 던졌다가 체포됐다. 이들은 경찰차에 대한 방화와 폭발물 투척 혐의를 받고 있는데 최소 징역 5년을 선고받을 처지에 놓였다. 25만달러 보석금을 내고 전자발찌를 차는 조건의 가택구금 처분을 받고 석방됐다가, 검찰의 항소로 재수감된 상태이다.

미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재직 중이던 두 변호사의 과격행위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의 주변을 취재해, 코로나19 이후 젊은 엘리트마저도 비켜갈 수 없었던 미국 사회 위기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매티스는 뉴욕에서 가장 가난하고 범죄가 들끓는 이스트뉴욕에서 성장했다.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가정에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글도 깨우치지 못하는 지진아였다. 중학생이 되자 우등생으로 변모했다. 그는 소수민족 출신을 위한 제도적 혜택을 받아 사립고교에 진학했고, 아이비리그 명문 사립 프린스턴대에 입학에 성공했다. 그는 나의 지역 고교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며 소수민족 혜택 프로그램을 수혜받았다. 프린스턴에서는 부자 백인학생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유색인종 학생들을 데려가는 등 주류 사회로 편입하려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스턴 졸업 후 뉴욕대 로스쿨에 진학한 그는 졸업 뒤 프라이어 캐시맨 엘엘피(LLP)’라는 로펌에 취직해 기업 변호사 보조로 일했다. 지난해엔 패션회사 앤 클라인의 합병 등 수백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놓고 일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331일 무급휴직을 당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지난해 여름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한 뒤 매티스는 본가로 돌아가 3명의 의붓동생을 돌보던 참이었다. 어머니의 유언이었고, 동생들은 모두 11살 이하의 유년이었다.

라만은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뉴욕 브루클린 무슬림 거주지인 베이릿지에서 성장했다. 유년 시절인 20019·11테러가 나자, 동네는 경찰의 집중 감시 지역이 됐다. 라만에게는 차별과 배척의 기억이었다. 라만의 친구들은 그가 뉴욕에서 가난한 이들이 가는 명문고교인 브루클린기술고교에 진학했을 때 활동가로서의 뿌리가 명백했다고 말한다. 뉴욕의 포댐대 학부와 로스쿨에 진학한 라만은 무슬림에 대한 경찰의 처우에 비판적이었다. 재학 중이던 2014, 그는 <뉴욕경찰 변화: 전면적 개혁을 위한 진보적 청사진>이라는 논문도 썼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학교를 다니면서, 공익법을 전공했다.

브롱스 법률 사무소의 변호사가 된 라만은 퇴거 위기에 몰린 가난한 세입자를 돕는 일을 했다. 상사인 잭클린 솔리번은 그가 자신의 일에 깊은 애착을 보였으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세입자들에 대한 압력이 커지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매티스와 라만은 지난 201410월 맨해튼에서 열린 한 생일파티에서 만났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남녀관계로 사귄지는 몰랐으나, 그 후부터 친밀한 사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528일 매티스는 친구와 한시간이나 온라인 채팅을 하면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죽어가는 비무장 흑인들의 또 다른 예라고 비통해했다. 그 다음날 오후 라만도 줌 화상톡 앱을 통해 유색인종들의 연대운동구축을 토론했다.

두 사람은 529일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뉴욕의 이틀째 시위에 동참했다. 밤이 되자, 시위는 격렬해졌다. 경찰은 곤봉으로 시위대를 몰아부쳤고, 시위대는 병과 쓰레기를 경찰에 던졌다. 그날 밤 이들 커플은 미니밴을 타고 브루클린 인근 포트 그린을 가로질러, 88구역 경찰서 근처에 주차했다. 라만이 차에서 나와서 빈 경찰순찰차로 다가갔다. 라만은 곧 차창 너머로 화염병을 던졌다. 이들의 행위는 감시카메라에 모두 포착됐다. 차 안에서는 가솔린으로 흥건하게 젖은 화장실 휴지로 가득찬 맥주캔이 발견됐다.

뉴욕의 촉망받는 젊은 법조인들이 왜 갑자기 돌변을 했을까? 화염병을 던지기 1시간 전 라만이 <뉴스 엔와이시>와 인터뷰한 장면이 발견됐다. 라만은 이런 일이 멈출 때가 됐다.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듣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을 통해서, 즉 폭력을 통해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곧 주변 편의점으로 가서 화염병 제조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했다. 소수민족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백인 주류 사회에 편입하려가, 혹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운동권변호사를 하려다 한계에 봉착해 폭발한 절망적인 몸짓이었다. < 정의길 기자 >


[6개국 방역대책 분석한 과학저널 <네이처> 논문 발표]

  미국은 14, 프랑스 12, 이탈리아 17배 예상

정책 도입 지연이 엄청나게 다른 결과 낳아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한국인은 1155만명이 더 감염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실제 감염 인구의 1165배에 이르는 엄청난 수치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은 8일 한국·미국 등 6개국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각종 방역 대책을 세워 53천만명이 감염을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을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들 인구를 대상으로 각국별로 진단검사를 했을 경우 6200만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여행 제한, 학교와 기업체 문닫기, 집안에 머물기 등 한국, 미국, 중국,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 등 6개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올해 1월부터 46일까지 시행한 1717건의 방역대책의 효과를 분석했다. 솔로몬 샹 버클리대 세계정책연구소장은 인간의 노력으로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한 적은 없었다집에 머물고 약속을 취소하는 등 개인적인 희생이 있었지만 데이터는 (이런 희생으로) 하루하루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각국의 방역 대책이 없었다면 한국 등 6개국에서만 6200만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이 <네이처>에 밝혔다.

현재 세계적으로 확진환자는 약 700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4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방역 대책이 없었다면 이 수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분석 기간인 35일까지 74473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우한 폐쇄 등 방역 대책이 없었다면 85.9배인 639557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 46일 기준 양성 판정 환자가 9924명이었는데, 만약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대책이 없었다면 1165배인 1155709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 분석이다.

방역 대책의 예방 효과는 각국마다 달라, 아무런 방역을 하지 않았을 때 양성 판정을 받았을 추정 인구 배수는 이란은 227, 이탈리아는 17, 미국은 14, 프랑스는 12배였다.

연구팀은 집안에 머물기, 기업체 문닫기, 비상사태 등 봉쇄 조처 등은 명확한 효과를 보인 반면 여행 제한이나 금지는 이란과 이탈리아에서는 효력을 봤지만 미국 등지에서는 유효성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정책 도입의 작은 지연이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 이근영 기자 >

 

지금 진행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문제는 지위협정을 위배한 특별조치협정을 또다시 위반하면서 주한미군 유지 경비 이외의 비용마저도 한국에 부담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미 미군은 지난해 한국이 낸 방위비 분담금 중 134억원을 주일미군 전투기와 탐색구조 헬기 정비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방위비 분담금이 왜 문제인가? 언뜻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한국의 방위를 분담하고 있으니, 한국은 그 비용을 분담한다는 것 아닌가.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성장했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진 만큼 그에 걸맞게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떻게 봐도 논박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맞지 않는가.

맞지 않는다. 한국은 2015년 한 해에만도 5.4조원에 이르는 방위비 분담을 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도 총 사업비 11조원 중 90% 이상을 한국이 부담했다. 원래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협정에 따라 미국이 부담하기로 했던 미 2사단 이전 비용까지 한국이 대부분 부담했다. 매해 이미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분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합의에 따라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비용까지도 한국이 지급한 것이다. 한국은 이미 책임져야 할 비용 이상을 분담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한·미 당국자들이 협상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방위분담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제5조에 대한 특별조치에 대한 대한민국과 합중국 간의 협정’(특별조치협정)에 따라 주한미군에 지급되는 지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특별조치협정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으로는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중 일부를 지원하기로 되어 있다. 현재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항목 이외의 지원도 한국이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바로 문제다.

당장 주목을 받는 문제는 미국이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애초 트럼프 정부는 한국의 직간접 지원비 총액을 넘는 6조원을 방위비 분담금으로 요구했다. 최근 협상에서 미국 쪽은 이 요구액을 13억달러(16천억원)축소했다고 하지만 2019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과 비교하면 거의 50%를 증액하라는 요구이다. 사실 특별조치협정이 체결된 1991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은 눈덩이 불어나듯이 커지고 있다. 첫해 1073억원이었던 것이 매년 불어나 지난해 1389억원으로 10배 가까이 커졌다. 그런데 199143천명에 육박했던 주한미군 병력은 계속 줄어들어 현재는 28천명 수준이다. 왜 병력은 줄고 있는데 방위비 분담금은 상승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특별조치협정이 체결된 배경에 하나의 답이 있다. 이 협정은 1991년 주한미군지위협정의 1차 개정과 동시에 발표되는 바람에 그 중요성이 파묻혔다. 당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던 것은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의 형사재판권 자동포기 조항과 같은 불평등 조항의 개정이었지만 노태우 정부가 협정을 체결한 이유는 1989년부터 시작된 냉전 해체 과정에 있었다. 미국에서 미군 병력 감축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면서 만들어진 3단계 주한미군 재조정 계획안에 따르면 1991년까지 1단계로 7천명을 철수하고 3단계(1996~2000) 이후에는 최소한의 미군만 남긴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보수 정부에는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주한미군 철수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는 이 특별조치협정이 그 모법인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지위협정)을 위반한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지위협정 제5조는 미국이 대한민국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합중국 군대의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특별조치협정이 모법을 위반하며 주한미군 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한국이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국회의 비준을 받은 지위협정을 중대하게 위반한 특별조치협정이 국회의 비준을 받지 않은 것도 심각한 절차적 문제다.

지금 진행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문제는 지위협정을 위배한 특별조치협정을 또다시 위반하면서 주한미군 유지 경비 이외의 비용마저도 한국에 부담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미 미군은 지난해 한국이 낸 방위비 분담금 중 134억원을 주일미군 전투기와 탐색구조 헬기 정비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현실적으로 특별조치협정을 무시하면서 주한미군 경비 이외의 목적에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한 데 이어 이제 아예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이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분담금 액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적폐는 바로잡아야 한다.

<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


이용만 당했다”?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가성찰 필요

 위안부 운동사는 다층적·복합적, 여성·인권·평화 국제연대

        

어떤 사태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고려해 사태를 명명하기 마련이다. 원인은 외부/내부 요인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외인의 작용으로 인해 오래 봉합됐던 내인이 함께 터져 나올 수도 있고, ‘내인으로 터진 갈등이 외인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이를 고려해, 지금 이 사태를 뭐라 명명할 수 있을까?

사건사의 시각으로 이 사태를 보자면, 원인은 지난 57일 일본군 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다. 피해생존자의 고통이 배인 절박한 말과 인권운동가의 지난 운동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비판적인 말이 뒤섞여 토해졌던 기자회견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30년 동안 답보 상태인 현실을 고통스럽게 마주하고 목소리를 냈다. 이용수님의 말은 윤미향과 정의연을 향하기도 했지만, 또한 말잔치 외에 실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 역사부정론에 입각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아베 정부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파편화된 목소리 막바지에 돈은 왜 마음대로 할머니들한테 안 쓰고 저거 마음대로 써. 그렇게 당하고 있었다가 섞여 나오면서, 대다수 언론은 약 한 달 동안 연일 윤미향 사태또는 정의연 사태로 명명된 엄청난 양의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 명명은 일본군 위안부운동의 대표 활동가(윤미향)와 단체(정의기억연대)에서 사태의 원인을 찾고, ‘현미경 보도로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기정사실로 바라보게 한다. 525일 이용수님의 두 번째 기자회견은 그런 보도들이 자기 확증하는 근거가 되었다. 대다수 언론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습니다란 말을 듣고 이용만 당했다고 헤드라인으로 뽑아내면서 그야말로 적극 이용했다. 증언 연구자라면, 이용수 할머니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어떤 맥락에서 말하고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어렵게 결들을 헤쳐 나가고 있었을 거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정해진 프레임으로 그 말을 절취해 우겨넣었다. 요샛말로 흑화폭로 저널리즘의 민낯이 아닐까?

한편, 음모론의 문법으로 기계적으로 대입한 저널리스트와 유튜버들은 이 사태를 이용수 사태로 바라봤다. 이용수 할머니 대 윤미향·정의연 대립 프레임은 그렇게 진영화된 구도로 빨려 들어갔다. 대립적인 사태 명명은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정의연 모두에 대한 혐오·증오 발화의 폭발로 이어졌다. 윤미향·정의연에겐 피해생존자를 앵벌이시킨 파렴치범, (보상)을 못 받게 해서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권력만 쫓은 전체주의자, 반일=종북 낙인, 피해자의 을 따르지 않고 기억을 의심해 일본 극우의 행태를 보인 친일파, 그리고 매춘부라는 혐오가 쏟아졌다. 급기야 이용수 할머니에게도 배후에 의해 조종당하면서 권력만 탐하는 물색없는 대구 사는 노인, 일본군 병사와 영혼결혼식한 친일 매춘부라는 혐오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진실이 없다. 양쪽 다 가짜 사실이 넘쳐나고 진실보다는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면서 같은 의견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안적 사실을 진실이라고 우겨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가짜와 거짓을 계속 듣다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고, 심지어 지어낸 이야기에 만족하게 되는 상황의 도래가 정말 두렵다.

난 이 사태를 탈진실의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 2019년 한국 사회에서도 본격화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부정·부인(denial)과 여성혐오로 무장한 <반일 종족주의> 자장 아래에 있는 여러 의도와 기획이 이용수 기자회견을 이용해 윤미향과 정의연을 일점 돌파하는 방식으로 힘들을 쏟아내면서 윤미향 사태또는 정의연 사태가 되었다. 그에 대한 진영화된 반발은 이용수 사태로 이어졌다.

참담한 건 이 사태들을 보도하는 극우 가짜뉴스 매체들은 물론, 보수 일간지들의 프레임과 숱하게 양산된 기사에서도 <반일 종족주의>의 언어들, 그 논리와 방법이 재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대협은 그들의 공명심을 충족하기 위해, 그들의 직업적 일거리를 잇기 위해” “개인의 인생사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팽개치고위안부를 민족의 성녀로앞세워 시위를 벌이면서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전체주의적 권력으로 군림하였다”(<반일 종족주의>, 337-338)는 수준의 이해와 내용이 기사마다 넘실거렸다. 이런 기사들은 일본어 온라인판으로 거의 동시에 일본에 출고되었다. 이를 받아쓰는 일본 극우보수 언론은 이 사태를 윤미향, 정의연,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운동 30년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실 근거들로 삼아 보도했고, 한국 보수 언론은 이를 다시 현지(일본) 특파원 칼럼 등의 형식으로 한국어로 보도하면서 결과적으로 부정과 혐오를 진실로 포장해 보도했다.

참담한 상황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511일 이영훈 등이 개최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 기자회견에 대해선 일부 언론이 비판적인 전문가 코멘트나 기획 기사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얼마 전 526일 이영훈과 류석춘 교수,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가 주최한 <정대협의 위안부 운동, 그 실체를 밝힌다> 심포지엄을 보도한 기사들에선 기계적인 비판 코멘트조차 아예 없었고, 일방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쓰고 대변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언론이 <반일 종족주의>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다뤄주고 그 과정에서 (의도했든, 안했든 간에) 그 책의 주장이 부각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상황이고, 기자들조차 그 주장에 동조하는 상호 참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12일 수요시위 전 날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와 위안부인권회복실천연대가 평화의 비(‘소녀상’) 앞에서 연 기자회견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들이 내건 펼침막에는 위안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이란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양 손에 들고 친일이 곧 애국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입에서 치욕스런 위안부 이력 속속들이 까발려 모욕 준 정대협과 여가부는 용서 못할 인권침해 집단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동안 피해생존자들을 조롱하고 모욕한 한국 뉴라이트 부정론자들의 입에서 피해생존자들의 인권이 거론되었던 것이다. 이런 행태야말로 위안부피해자들을 간악하게 이용해먹는 복화술이다. 이렇게 보면, 이 사태는 부정과 혐오의 백래시사태로도 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사태의 외인론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역사와 30년 운동의 진실은 결코 매끈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 울퉁불퉁하고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렇기에 여성·인권·평화 국제연대 운동을 만들었다는 서사에 결코 만족하지 말고, 이 사태를 계기로 삼아 30년이라는 시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성찰해야만 한다. 그래야 피해자 없는 위안부운동이 가능한 건지, 아니 정말 필요한 건지, 그렇다면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모색되어야 하는 건지 논의를 모아가면서 부정과 혐오의 백래시에 반격할 수 있는 힘이 더 두터워지지 않을까? < 강성현 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