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에 맞서는 할머니들’(Omas gegen Rechts) 그룹은 201711월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결성됐으며 현재 3천여명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독일 100여개 그룹 차별에 맞불할머니 그룹 오마스(Omas)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 맞선 시위 나서는 50~80대 오마스

 

우리의 영혼과 정신은 젊습니다. 불의·차별로 나라 망가지는 것 원치 않아, 다음 세대, 모두 위해 투쟁할 것

이주·난민 여성과 함께 일하는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인 국제여성공간’(IWS)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 모든 차별에 맞서 투쟁하고, 그 가운데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 그룹에서 나의 주된 업무가 기록이다 보니, 베를린의 다양한 진보 단체가 조직하는 여러 집회에 자주 참석한다.

극우에 맞서는 할머니들’(Omas gegen Rechts. 이하 오마스)이라고 적힌 피켓을 처음 발견한 건 20185, 나치 반대 집회에서였다. 당시 극우주의자들이 조직한 집회에 5천명이 모였고, 그들의 5배 규모인 25천여명의 시민이 극우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맞불 시위를 열었다. 당시 베를린의 큰 클럽과 극장, 예술단체 등이 시위를 주도한 덕에 거리는 음악과 춤으로 가득 찼고 나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2017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

그 이후로 할레에서 벌어진 극우주의자의 유대교회당 테러(201910) 규탄 시위, 하나우(Hanau)에서 극우주의자에 의해 벌어진 총기 난사 테러(20202) 규탄 집회, 지난 58일 종전기념일에 맞춰 도시 곳곳에서 열린 파시즘 해방의 날집회에도 오마스 그룹은 함께했다. 세계 여성의 날이나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형법 ‘218조 폐지촉구 시위 등 페미니즘 이슈에 관한 집회에도 오마스 회원들은 피켓을 들고 등장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신자유주의, 파시즘 등에 맞서 투쟁하는 베를린 시위 현장에 그들은 늘 함께 있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믿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늙었으나 영혼과 정신은 젊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여러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 세대로부터 전쟁과 독재 체제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결의를 다졌습니다. 우리는 불의와 차별로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다음 세대 그리고 모두를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Omas gegen Rechts’ 선언문 중에서)

오마스 활동은 201711,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됐다. 모니카 잘처(72)가 페이스북에 그룹 계정을 만들면서 빠른 속도로 회원들이 생겨났고, 이후 민주주의를 외치는 현장이나 집회에 극우에 맞서는 할머니들피켓이 등장했다. 이후 20181월부터는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과 보훔, 뮌헨 등 독일 전역에서 100개가 넘는 오마스그룹이 생겨났다. 현재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총 3천여명의 회원이 함께 활동 중이다.

지난 519, 베를린 템펠호프 공원에서 오마스 베를린 지부에서 활동 중인 베티나(왼쪽)와 아네테를 만났다. 베를린 지부에는 60여명 회원이 활동 중이다.

5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활동가로 구성된 오마스 그룹은 대부분 나치의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나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세대다. 그리고 파시즘은 여전히 독일 사회의 주요 과제다. 몇년 사이 독일에서는 극우세력에 의한 테러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들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독일 연방 내무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우익세력에 의해 발생한 범죄 건수는 총 22342건으로 전해에 비해 9.4% 증가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2013년 창당 이후, 20179월 연방의회 선거에서 12.6%를 득표하며 제3정당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오마스 그룹은 지역별로 저마다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은 같다. 모든 차별이 금지되고 이주자와 난민에게 열린 사회, 성적 정체성에 상관없이 모두 존중되고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그룹이 연대해 공평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사회다. 그들이 꿈꾸는 사회를 위해 오마스 그룹은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및 이동제한 조치 속에서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마스 그룹의 베를린 지부는 요즘도 매주 한두 번 비디오 회의를 연다. 혼자 사는 회원이 고립되지 않도록 안부를 묻기 위한 이유도 있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베를린 지부에는 60여명이 활동 중이며, 평균 연령대는 60대 후반이다. 최근 회의에서는 그간 연계 활동을 펼쳐온 여성, 환경 단체들과 새로운 온라인 행사 기획, 6월에 열리는 큰 예술축제 참여 방법 등을 논의했다. 의료진, 법조인, 활동가 등 각기 다른 직업군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회원들은 극우세력 확장을 두고 볼 수만 없다는 마음으로 오마스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해부터 베를린 지부에서 활동 중인 베티나(73)2008년과 2012년 남미 니카라과에 머물면서 정치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 독일로 돌아와 우익세력이 가하는 위협이 커지고 있음을 깨달았고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오마스 회원들이 매주 토요일, 크로이츠베르크 동네에 위치한 카페 마다메에서 모인다는 정보를 접했고, 바로 그 카페로 찾아가 활동에 합류했다. 은퇴 전 변호사로 일했던 그는 법적 문제를 겪고 있는 이주민과 난민 아동을 위해 난민 지위 신청 등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도와주고 독일어 수업 등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921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한 행동의 날을 맞아 열린 집회에 참석한 오마스 베를린 지부 활동가들 모습.

아네테(58)는 베를린 지부가 꾸려진 2018년 초기부터 오마스 그룹에서 활동해왔다. 헤센주에 살다가 1998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아네테는 노인 간호 전문가로 일해오면서 환경, 빈부격차 등 여러 사회문제를 접하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특히 2015년 독일이 난민을 대거 수용한 이후로는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것을 발견했고, 나치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가 오마스 그룹을 만나 활동을 시작했다.

베티나와 아네테는 전쟁과 나치를 경험한 우리는 미래를 위해 두 번 다시 끔찍한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극우세력으로 하여금 당신들은 우리 사회의 주요 세력이 아니며 언제나 우리가 더 큰 사회 세력으로 맞설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미래를 만드는 것, 청년만의 몫 아니야

현재 오마스 베를린 지부는 매주 토요일마다 극우세력 위주로 열리고 있는 코로나 봉쇄령 반대시위에 맞서는 집회를 조직하고 있다. 또한 5월부터 50명 이하의 소규모 집회가 허용된 상태라,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광장인 알렉산더광장에서 월 1회 진행해온 홍보 활동도 이어간다. 홍보는 피켓을 들고 서서 홍보물을 배포하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시리아에서 온 청년이 독일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며 정착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랩 음악을 하는 청년이 자신의 작업에 함께 참여해줄 수 있는지 의사를 물어온 적도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시민과 논쟁도 벌인다. 오마스 활동가들은 우리의 목소리와 의견을 전달함과 동시에 다양한 시민과 소통하는 것도 우리의 주요 활동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4년 동안 여러 현장에서 오마스 활동가들을 만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청년 세대만의 몫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역사의 산증인으로 통찰과 혜안의 힘을 지닌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결의로 길 위에 서 있다. 여성의 정치적 저항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상징인 핑크 모자(Pussyhat)를 쓰고서. ‘두 번 다시 파시즘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외치는 오마스 활동가들을 오래도록 만나고 싶다. < 채혜원 통신원 >


강미숙(미국 이름 카라 보스)씨와 그녀의 딸.

 

1984년 미국으로 입양된 강미숙씨 가장 큰 목표는 어머니 찾는 것

36년만에 고국서 부모 찾기입양인 정체성 찾을 권리 보장해야

 

엄마, 만나고 싶어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냥 오세요.”

1984년 미국에 입양된 강미숙(39살 추정·미국 이름 카라 보스)씨가 마흔을 앞두고 어렵게 찾은 아버지를 상대로 낸 친자 확인소송에서 승소한 뒤 더듬더듬 꺼낸 우리말이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향한 애틋함이 세월에 잠들어 있던 그의 모국어를 서툴지만 또박또박 끌어냈다. 강씨는 부친 씨를 상대로 법적으로 친자임을 인정받으려고 낸 소송에서 해외 입양인으로는 처음 승소했다. 강씨는 아버지를 만나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자신의 어머니를 찾는 것이라고 전했다.

198311월 충북 괴산의 한 시장 주차장에서 발견된 강씨는 이듬해 9월 미국으로 입양됐다. 당시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수는 79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성인이 된 강씨는 네덜란드인 남편과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고, 자신의 딸을 기르며 친엄마를 찾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그 뒤로 강씨는 충북 괴산을 찾아 전단을 뿌리고, 언론에도 자신의 사연을 소개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강씨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친부모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한국계 입양인 유전자정보(DNA)로 친부모를 찾는 비영리단체 ‘325캄라(KAMRA)’에 자신의 디엔에이 정보를 공유해 두었는데, 지난해 1월 한 한국인 유학생이 자신과 유전자정보가 일치해 사촌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강씨는 이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씨를 찾을 수 있었지만, 자신이 아버지의 혼외 자식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동시에 알게 됐다. 아버지 씨와 그 가족은 강씨와의 만남을 원치 않았다.

1984년 미국으로 입양될 당시 강미숙(미국 이름 카라 보스). 강씨 법률대리인 제공.

강씨는 법적으로 씨와의 부녀관계를 확인하려고 지난해 11씨를 상대로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가사소송법에서 인지는 혼인외 출생자에 대해 생부나 생모가 자신의 자녀라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성립하면 친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될 수 있다. 소송 과정에서 진행된 유전자 검사 결과 강씨와 씨가 부녀일 확률은 99%를 넘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염우영 부장판사는 12원고 카라 보스는 피고(부친)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며 강씨의 법적 지위를 인정했다. 판결 내용을 들은 강씨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고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강씨는 마침내 법적으로 아버지의 딸임을 인정받았다. 가족들에게 연락할 권리조차 없었는데 누구도 내가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길 바란다한국 정부는 입양인들이 정체성을 발견하고, 또 가족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권리가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주에 아버지 씨를 만나기로 한 강씨는 어머니 이야기를 꼭 듣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찾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나의 어머니가 보고 계신다면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씨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이평의 양정은 변호사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강씨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어머니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입양인 문제는) 아동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아동이 출생 즉시 등록될 수 있는 자동출생신고제 도입 등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 장예지 기자 >

 

기독교계 20여개 단체, 5개 주제로 내년 3월까지

 

개신교계 단체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갈 교회 공동체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11일 교계에 따르면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와 한국기독교언론포럼, 미래목회포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사랑의교회, 성락성결교회, CBS 20여개 단체와 교회 등은 공동으로 '포스트 코로나 19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가기로 했다.

프로젝트는 코로나 19 이후 한국 교회, 코로나 19 재난 상황에서의 총선과 한국교회, 다음 세대와 청년 그리고 문화 등 5개 큰 주제를 토대로 추진된다.

사회학자와 신학자, 목회자, 기독시민사회 활동가 등이 주제별 연구자로 참여해 12개월 주기로 연구 결과물을 발표할 계획이다.

프로젝트에는 보수, 진보, 중도 등 정치 성향 구분 없이 최대한 많은 단체가 참여해 교계 내 공동 지성을 모아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지형은 한목협 대표회장은 이날 서울 성동구 성락성결교회에서 연 교계 언론 대상 간담회에서 "인류는 코로나 19로 미증유의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거시적으로는 코로나 이후의 존재 방식과 철학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3월까지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주제별 연구보고서 외에 '한국교회 위기관리 매뉴얼'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코로나 19 같은 재난 상황 발생 시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한 세부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