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치단결해 설득도 하고 경고도 했건만, 북한 지도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선택했다. 안타깝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북한은 잘못된 행동에 따른 엄중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어제 “우리 국방과학부문에서는 2월12일 북부 지하 핵시험장에서 제3차 지하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여 높은 수준에서 안전하고 완벽하게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주위 생태환경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기상청이 이번 핵실험 이후 탐지한 인공지진의 진도는 4.9이며, 국방부는 3차 핵실험의 폭발력을 6~7킬로톤(kt: TNT 폭약 1000t의 폭발력)으로 추정했다. 2006년 1차 때 진도 3.6, 폭발력 1킬로톤과, 2차 때 진도 4.5, 폭발력 2~6킬로톤에 견줘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실험 방식이 1·2차와 같은 플루토늄 방식인지, 고농축 우라늄 방식인지, 둘의 혼합 방식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북한의 이번 핵실험 성공은 1·2차 때와 질적으로 다른 동북아 위기를 불러올 게 확실하다. 지난해 말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로 전용될 수 있는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이어, 히로시마 원폭의 절반 정도 폭발력을 지닌 핵실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보도대로라면, 미국의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원자탄을 손에 넣은 것이다. 또 북한은 이번 핵실험 강행을 통해 그들의 의도가 수세적 억지 수단으로서 핵무기 개발이 아니라 ‘공세적 핵 능력’ 추구에 있다는 것을 노골화했다. 우선 핵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 협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유엔은 어젯밤 유엔 안보리를 긴급 소집해 추가 제재 논의에 착수했다. 우리 정부와 미국, 중국, 일본 등 관련국들도 서로 연락을 취하며 긴밀한 대응에 나섰다. 군 당국은 군사대비태세를 3단계에서 2단계로 한 단계 격상했고, 한미연합군사령부도 북한의 추가 군사도발에 대비해 대북 정보 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높였다.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이다. 유엔 안보리에서는 지난달 대북 제재 결의 2087호에 따라 금융·해운 제재 등이 포함된 더욱 강력한 내용의 추가 제재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유엔의 결의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도발한 북한의 행동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제재만으로는 북한이 작정하고 나서는 핵무장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100만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군사적 해결책을 강구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북한이 파멸을 각오한 채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고 나설 가능성도 희박하다. 관련국들은 북핵 문제가 안고 있는 이런 구조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강온 양면책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그중 우리나라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여야가 북핵 문제에 초당적으로 대처하기로 하면서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단계적으로 높아져만 가는 북한의 도발과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창의적인 해결책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내 국제사회를 견인하는 것이다. 박근혜 새 정부의 지혜와 용기가 절실하다.


[기쁨과 소망] 신앙인의 행복은?

● 교회소식 2013. 2. 17. 20:59 Posted by SisaHan
신념은 언제나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체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념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의지의 영역이라면 신앙은 우러러 바라보는 하나님 대상의 영역입니다. 이 두 부분을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의를 내세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신앙의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자신의 신념을 마치 거듭난 신앙으로 착각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오래 믿었던 사람일수록 말입니다. 그 한 예로서 예수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의를 내세웠기에 책망을 받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와 삶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세리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죄인 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도였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저들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의를 얻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서 긍정적 사고, 적극적 사고가 유행합니다.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인본주의 사고의 산물입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초기 사역에서 시몬을 부르는 장면을 살펴볼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그물 씻는 것을 보시고 청하여 그의 배에 오르사 무리를 가르치시고 말씀을 마치신 후에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몬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밤새도록 자신의 경험과 모든 것을 동원하여 던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물을 던지면 반드시 적든 많든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던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번 두 번 안 잡혀도 계속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는 다릅니다. 자신의 신념인 생각의 영역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먼저는, 고기를 잡는 일은 밤에 하여야 하는 것인데 낮에 그물을 던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깊은데 가서 던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그 결과 두 배에 가득 차도록 잡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말은 없고 예수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고백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인의 행복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유인즉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의 영역인 신앙이 자신의 신념의 기둥을 더욱더 공고하게 붙들어 주는 것이기에 그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모든 상황과 사건 앞에서도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고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념은 사람의 나이와 환경에 따라서 변할 수 있으나 신앙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기에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안상호 목사 - 동산장로교회 담임목사 >


사순절

● 교회소식 2013. 2. 17. 20:57 Posted by SisaHan


십자가 고난 묵상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담는기간으로

올해 사순절이 시작됐다. 사순절은 부활주일(3월31일)을 기점으로 역산해서 이 기간에 포함된 6번의 주일을 뺀 40일이다. 
‘재의 수요일’ 2월13일부터 시작해 부활주일 직전 성금요일까지 이어지는 사순절은 교회 절기 의미상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춰진다. 대다수 교회와 성도들은 이 기간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고 회개하며, 예수의 마음을 담는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