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정치권 충격파 ‘민간인 사찰’ … “MB정부 장막 벗겨져”
이명박 정부 ‘비밀의 장막’이 벗겨졌다. KBS 새 노조의 <Reset KBS 뉴스9>과 <한겨레>가 입수해 공개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광범위한 사찰 내용은 충격을 넘어 경악 그 자체이다.
YTN 배석규 사장의 충성심이 돋보인다는 사찰팀 보고서가 나온지 한 달 만에 정식 사장으로 임명됐다는 내용, 민간인 사찰을 처음으로 보도한 MBC PD수첩 작가들에 대한 사찰 내용 등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겨레21 편집장 실명을 거론하는 등 진보언론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도 자행됐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불법사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민간인들은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사찰을 당한 것으로 짐작된다”며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검찰의 성역 없는 재수사를 촉구했다.
문제는 이번에 공개된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대통령 형님에게 반기를 들었던 여당 의원, 이명박 대통령 패러디 벽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사찰 대상이 된 서울대 병원노조 등의 사례는 법 위에 군림하던 ‘영포라인’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들이 주축이 돼서 구성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는 물론 언론인 등 민간인과 기업인, 정치인 등 광범위한 사찰을 진행했다. 국가기관의 공식 체계를 뛰어넘는 무소불위의 권력, 대통령의 고향으로 불리는 영일 포항 출신 인사들에게 그러한 권력을 누가 부여한 것일까.
영포라인이 주축이 된 이번 민간인 사찰 사건은 내용을 공개한 <Reset KBS 뉴스9>는 물론이고, <한겨레 신문>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 김종배입니다>를 비롯해 주류와 거리가 있는 언론들의 집념과 땀의 노력에 따라 세상에 공개한 사건이다.
특히 ‘이털남’의 장진수 씨 양심고백 폭로노력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을 뒤흔들 이번 사건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주목할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을 뒤흔들 사건도 검찰의 ‘대충 수사’, 언론의 ‘의도적 침묵’으로 묻힐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증거인멸로 감춰진 비밀 속에는 얼마나 더 광범위한 ‘민간인 불법 사찰’이 숨겨져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대통령 고향사람이 주축이 된 ‘비밀 경찰’이 활개를 치고 불법 탈법을 자행하는 현실, 비밀의 장막 뒤에 숨겨진 모습은 일반인들의 숨을 턱 막히게 할 내용이다.
당연히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야권에서는 대통령 ‘하야’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번 사안은 정권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 충격적 사건이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심각한 것은 이 내용이 VIP에게 보고 됐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선 ‘MB·새누리 심판국민위원회’ 위원장은 “민주통합당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한국판 워터게이트로 규정한 바 있다. 이제 범국민적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총리실의 대규모 민간인 불법사찰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고 유린한 이명박 정권 최악의 사태로, 정권을 내놔야 할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하야’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는 것은 사안의 휘발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이미 시작됐고 이제 12일 후에는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여권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경우 이명박-박근혜 ‘밀월’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곤혹스러운 일이 터졌다. 이번 사건은 야권연대 성사로 불씨가 되살아난 ‘MB심판론’ 열기를 확산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있다. 야당은 이미 민간인사찰 대책위원회 구성 움직임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전 정권 책임론’으로 물타기를 시도하면서 오히려 여론의 냉소가 커지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도 진퇴양난의 곤혹스런 국면이다.
한편 일본신문들도 “감시대상이 언론사 간부와 경영자, 정치인, 노조 관계자 등이며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적 언동이 두드러진 이들의 은행계좌 이용 상황과 통화 내역 등 사생활을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판 워터게이트 서울지검이 조사 나서’라는 기사에서 “권한을 일탈해 민간인 민간단체 방송사 등 반정부 동향을 감시했던 의혹이 관계자 증언으로 드러나 야당이 ‘한국판 워터게이트’라며 이명박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방향 도로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 규탄 및 이명박 대통령 퇴진 촉구 기습시위 대학생이 구호를 외치자 경찰이 손으로 틀어막고 있다.
여당·보수인사는 왜 사찰?
지원관실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인사라면 진보든 보수든 성향과 상관없이 사찰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 인사로 분류되는 서경석 목사도 사찰 대상이었다.
특히 총리실 ‘사찰 대상’엔 뜻밖의 ‘민간인’이 포함되어 있다. 새누리당 박찬숙 전 의원이다. 한국방송 이사 추천을 받기 위한 청탁 정황,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 등이 구체적으로 내사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1일 “당시 현역 의원도 아니었는데 사찰을 당한 것”이라며 “18대 총선을 앞둔 2008년 3월 정권 실세인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한 ‘55인 기자회견’ 때 마이크를 잡은 전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출신의 박 전 의원은 2008년 총선 당시 수원 영통 후보자 신분으로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요구했고, 각종 언론 인터뷰에도 앞장섰다. 결국 이상득 의원 등 정부 실세에 저항하는 여권 인사도 ‘본보기’로 사찰되었다는 얘기다.
이는 남경필·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 정태근 의원(무소속)이 정부 사찰 피해를 주장한 근거와도 맞닿아 있다.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국정개입 중단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소장파로, 부인들이 저마다 사업 과정에서 남편의 영향력이 행사되었는지 뒷조사를 당했거나,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두언 의원은 부인이 운영하는 화랑의 고객들 뒷조사까지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결국 화랑은 문을 닫았다. 정태근 의원 경우 부인이 부사장으로 있는 컨벤션 사업체가 사찰 대상이었다고 한다. 정두언 의원은 “철부지 불한당 같은 자들에게 공권력을 이용한 사찰이 맡겨진 게 문제”라며 “정치인·민간인 사찰뿐만 아니라 뒷조사를 해 기업의 인사에 까지 개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경필, 구상찬, 임해규 새누리당 의원은 1일 회견을 열고 불법 사찰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정두언 의원도 “불법사찰 같은 시대착오적 일을 끝끝내 막지 못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용산사태 대비책을 공개해 사찰받은 김유정 민주통합당 의원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며 “현 정권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사찰 꼼꼼한 보고양식 ‘VIP용’ 정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