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 도중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 쪽 일어선 이)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한다고 처음 밝히며 성김 대행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애초 북한과 대화·협상의 전용 창구 노릇을 해온 ‘대북특별대표’ 제도를 없애고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를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한테 맡기려 했던 것으로 24일 뒤늦게 전해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내부 논의와 한-미 협의 과정에 밝은 복수의 고위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특별대표를 없앤다는 방침이었는데, 대북정책과 관련한 한-미 협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설득 등의 영향으로 대북특별대표를 새로 임명하는 쪽으로 막판에 극적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애초 방침대로 대북특별대표를 없앴다면 북·미 협상을 포함한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적잖이 낮추겠다는 신호로 북한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성김 대북특별대표 임명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 등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애틀랜타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성김 대북특별대표의 임명 발표도 기자회견 직전에 알려준 깜짝 선물이었다”는 문장은, 이런 우여곡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단순한 외교적 수사만은 아닌 셈이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대표를 먼저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대북 비핵화 협상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풀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법에 명시된 북한인권특사는 지명할 계획이지만, 북한과 대화를 할 때까지 협상을 이끌 (대북특별)대표를 지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5일 보도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애초 방침을 바꿔 대북특별대표를 없애지 않고, 그에 더해 북한인권대사보다 먼저 임명한 사실은 대북 신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반공화국 모략선동”이라며 극력 반발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앞세우지 않고 북·미 간 협상 경험이 풍부한 ‘핵 문제’부터 풀어가겠다는 정책 우선순위 조정이기 때문이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중국·일본 등 비중이 높은 국가를 맡아 북한 문제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대북특별대표는 핵 등 북한 문제에만 집중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역대 미국 정부의 북·미 협상 전용 창구는 1998년 11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초대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과 같은 위상의 대북특별대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부활했으며(2009년 스티븐 보즈워스, 2011년 글린 데이비스, 2014년 성김, 2016년 조셉 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땐 스티브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대북특별대표로 일했다. 이제훈 기자
문 대통령, 바이든 미 대통령과 크랩케이크 오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크랩케이크로 오찬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에 매우 만족(satisfied very much)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진솔한(straight forward) 모습이 매우 인상적(really really impressive)이었다고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백악관 고위실무자가 알려온 바이든 대통령의 회담 소감을 전했다.
두 정상 모두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가한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SNS에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에 문 대통령과 크랩케이크로 오찬하는 사진과 함께 "양국 동맹은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고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세계를 위한 평화와 안보, 번영의 핵심축(linchpin)"이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공통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의 벽난로 중앙에 걸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설명하면서 "문 대통령이 루스벨트 기념관을 찾아주고, 한국판 뉴딜정책을 추진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두 정상 모두 미국 대공황의 역경을 극복하고 부흥과 통합을 이끈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롤 모델로 꼽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루스벨트 기념관을 찾아 한국판 뉴딜정책 추진 의지를 다졌다.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원래 같은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문 대통령이 격의 없이 대해준 점에 대해 감사하다"며 거리감을 좁혔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지난 3월 미국 국무·국방 장관이 함께 한국을 방문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뜻으로 들었다"고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웃으며 "장관들이 한국이 좋아 돌아오지 않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고 농담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1일 오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전쟁 영웅인 랠프 퍼켓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문 대통령이 참석한 점도 처음 만난 두 정상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 수여식에 외국 정상이 참석하기는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미국 참전용사들의 힘으로 한국은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고,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진실성과 진솔함에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게 백악관 고위실무자의 전언이다.
또 문 대통령은 명예훈장 수여식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에게 사진을 건넸다고 한다. 바이든 여사가 지난 2015년 7월 방한했을 때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찍은 사진으로, 청와대 관계자는 "바이든 여사가 이를 기쁘게 생각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미동맹의 미래 방향을 두 정상의 공동성명에 담기 위한 청와대와 백악관의 숨 가빴던 조율 과정도 공개됐다.
당초 한미 양국은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공동성명 관련 협의를 진행했으나, 회담 일주일 전부터 청와대 국가안보실 인사들이 미국에 머물며 백악관 측과 관련 내용을 조율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하루에도 수 차례씩 대면 협상을 했다"며 "안보실뿐 아니라 청와대 정책실도 백악관의 관계부서와 직접 논의하는 등 다각도 협상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사'가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 공급망 및 첨단기술 협력 강화 등 전방위적 파트너십 방안이 담겼다고 한다.
“미, 중국에 대북정책 설명…한국도 중국과 방미 관련 소통”
청와대 관계자 “바이든, 대북제재 해제 신축적 검토 가능”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소인수회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도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를 중국 정부에 설명하는 등 북핵 문제 등에 대해 협력하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밝혔다. 한국 정부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중국과 필요한 소통을 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강화된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견제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으면서도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계기에도 중국과 대결이 아니라 경쟁은 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경쟁해야 할 때는 경쟁해야 하고, 적대적이어야 할 때는 적대적이어야 하지만 협력할 수 있을 때는 협력한다고 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방미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기자들과 만난 이 관계자는 “미-중 간 협력, 대립, 경쟁의 세 가지 분야 중에서 북핵 문제, 기후변화, 이란 핵 문제 등은 양측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사안으로 분류가 된다”며 “미-중 고위급 회의 계기 등에서 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폭넓은 의견 교환을 갖고 있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나 항구적 평화 정책이라는 목표 자체에 대해서는 양국이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정책 검토 결과에 대해서도 미국은 중국 측에 설명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북미 대화를 중심으로 일단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겠지만 중국 등의 협조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만큼 양국이 필요한 소통을 가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에 대만해협 문제가 들어가 대중 관계 악화가 우려된다’는 질문에 대해선 “중국과 상시적인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도 한국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만해협 관련 내용이 최초로 한미 간 공동성명에 포함되었지만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역내 정세의 안정이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에서 포함한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국의 반응이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라는 근거로는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 발표 뒤 중국이 발표한 입장이나 여타국 발표에 대해서 중국이 발표하는 입장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오는 30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피포지(P4G) 정상회의에 중국 최고위급 인사가 참석할 것이라고 전하는 등 한-중 관계는 흔들림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한-미 공동선언에 판문점 선언·싱가포르 선언이 언급된 것과 관련해 “2018년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남북, 북미 간 합의를 토대로 해서 협상을 한다는 것은 북한에 대해서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과거 협상의 연속선상에서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의미가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충실하게 이행하지만 북핵 문제의 진전에 따라서 대북제재 해제 등을 신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문 대통령, 26일 여야 5당 대표 초청 ‘방미 성과’ 공유, 협력당부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6일 청와대에서 여야 5당 대표를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연다. 청와대는 24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민의힘 김기현(권한대행), 정의당 여영국, 국민의당 안철수,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를 간담회에 초청했다. 한미정상회담 성과를 공유하고 각 당의 초당적 협력을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5개 정당 모두 참석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은 지난해 2월28일 이후 1년3개월여 만이다. 당시는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민생당, 정의당 등 4당 대표가 참석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다시 평가하고, 정부 부처별로 후속 조처를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방미 성과를 경제협력, 백신, 한미 동맹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의 분야별로 각 부처에서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밤 귀국한 뒤 방역 관련 절차를 끝내고 바로 업무에 복귀해 총리 주례회동과 내부 회의 등을 했다. 서영지 김미나 기자
지난해 대선 부정으로 인한 정치 혼란이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에서 23일(현지시간) 해외에 머물던 반정부 활동가가 전격 체포됐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 야권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그가 타고 이동 중이던 외국 항공사 소속 여객기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이를 위해 벨라루스 전투기까지 동원됐다.
타스·인테르팍스·AFP 통신 등에 따르면 벨라루스에서 인기가 높은 야권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NEXTA)의 전(前) 편집장인 라만 프라타세비치(26)가 민스크 공항에서 보안당국에 체포됐다고 넥스타 측이 밝혔다.
프라타세비치는 이날 그리스 아테네-리투아니아 빌뉴스 노선을 운항하던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Ryanair) 소속 여객기를 타고 여행하던 중 기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로 여객기가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에 비상착륙한 뒤 현지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넥스타 측은 "여객기 점검 결과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든 승객은 보안 검색을 받았다"면서 "프라타셰비치는 체포됐다"고 전했다.
친정부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풀 페르보보'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직접 여객기 비상착륙을 지시했으며, 여객기 호송을 위해 미그(MiG)-29 전투기를 출격시키도록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해당 여객기가 즉각 벨라루스를 떠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에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모든 승객은 (리투아니아) 빌뉴스로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도 이날 트위터에 "우리는 벨라루스 정부에 모든 승객과 해당 여객기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라고 경고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EPA=연합뉴스]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트위터에 "이는 심각하고 위험한 사건"이라면서 "국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라타세비치가 거주하는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번 사건을 "국가 테러리즘 행위"라고 비판하며 24일 열리는 EU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벨라루스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에 대해 논의할 것을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모두 EU와 나토 회원국이다.
이날 오후 2시께 민스크 공항에 비상착륙했던 여객기는 저녁 8시50분께 공항을 이륙해 리투아니아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기에는 리투아니아를 포함해 12개국 승객 약 170명이 탑승하고 있다고 리투아니아 측은 밝혔다.
벨라루스 문화장관을 지낸 야권 인사 파벨 라투슈코는 그러나 승객 가운데 러시아인 4명과 벨라루스인 2명 등 6명은 민스크 공항에서 출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프라타세비치도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사건과 관련해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 측은 기내 폭발물 설치 정보를 받은 여객기 기장의 결정으로 여객기가 가장 가까운 민스크 공항에 비상착륙했다고 주장했다.
라이언에어 항공사 측은 그러나 벨라루스 관제센터로부터 여객기를 착륙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라투슈코 전 장관도 "민스크 관제센터가 (비상착륙을 요구하며) 여객기를 격추하겠다고 위협했으며, 이를 위해 MiG-29기를 출격시켰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과 경쟁했다가 대선 후 신변 안전 위협으로 리투아니아로 망명해 있는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도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하기 위해 (벨라루스) 보안기관이 여객기를 납치하는 작전을 편 것이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라만 프라타세비치 [리아노보스티=연합뉴스]
2019년 말 벨라루스 정부의 탄압을 피해 폴란드로 도피한 프라타세비치는 지난해 벨라루스에서 격렬하게 벌어졌던 대선 부정 항의 시위를 부추기고 반정부 선동을 주도한 혐의로 벨라루스 당국의 '테러활동 가담자' 목록에 올라있다.
대선 부정 항의 시위 당시 야권의 소통 플랫폼으로 이용된 넥스타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됐다.
벨라루스 검찰은 지난해 11월 폴란드 법무부에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해 인도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벨라루스에선 지난해 8월 대선에서 30년 가까이 장기집권 중인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한 것으로 나타나자 정권의 투표 부정과 개표 조작 등에 항의하는 야권의 저항 시위가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올해 들어 야권 저항 시위는 상당히 수그러들었으나 완전히 멈추진 않고 있다.
야권은 루카셴코 대통령 사퇴와 새로운 총선 및 대선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지난해 대선 이후 공식 취임한 루카셴코 대통령은 자국 군부와 권력기관의 충성,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6기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반대파 잡으려 여객기 착륙시킨 '유럽 최후 독재자' 루카셴코
1994년부터 27년째 집권…비밀경찰 KGB 운영 야권 철저 감시
부정선거로 임기 연장하며 철권통치 이어가…각종 기행도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오른쪽). [AP=연합뉴스]
벨라루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76) 대통령이 야권인사를 체포하려고 비행 중 여객기를 강제로 착륙시키면서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면모를 또 드러냈다.
벨라루스에서 인기가 많은 야권 성향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의 전(前) 편집장 라만 프라타세비치(26)가 24일(현지시간) 민스크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그가 탄 아일랜드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가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 때문에 공항에 비상착륙한 뒤 그가 체포됐는데 비상착륙은 루카셴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으로 1994년부터 27년째 집권 중이다.
서방 언론에서는 그를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부른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옛 소련 국영농장(솝호스) 책임자로 일하다가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인 1990년 정치에 첫발을 들였다.
그는 이듬해 소련을 해체하고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는 벨로베슈협정에 유일하게 반대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반(反)부패'를 내세워 인기를 얻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안데르스 오슬룬드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루카셴코는 처음 벨라루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만 해도 '별다른 정치적 계획이 없는 포퓰리스트'로 평가됐다.
그가 결선에서 득표율 80%를 기록한 당시 대통령선거도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진 것으로 평가된다.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루카셴코 퇴진요구 반정부시위
권좌에 오른 루카셴코 대통령은 철권통치를 펼친다.
그의 통치방식은 옛 소련의 권위주의 통치방식을 연상시키며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이자 여전히 KGB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비밀경찰을 동원해 야권 인사를 철저히 감시하며 권력을 유지한다고 BBC방송은 설명했다.
경제와 언론에 대한 강력한 통제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집권을 연장한 2006년과 2010년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낙인찍었다.
2015년 대선 뒤에도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나왔으며 작년 대선 역시 부정선거로 규정됐고, 벨라루스 내 대규모 불복시위가 일었다.
부정선거를 이유로 루카셴코 대통령은 미국과 EU의 제재대상에 올라있다.
그가 '권력세습'을 노린다는 의혹도 나온다.
지난달 루카셴코 대통령은 대통령 궐위 시 법상 대통령직을 이어받는 총리 대신 국가안보회의가 국정과 관련한 결정을 내리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아들 빅토르가 NSC 위원이어서 '권력세습'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2013년 거리에서 일제히 손뼉을 치는 항의시위를 금지했는데 당시 벨라루스 경찰이 이를 근거로 손이 하나인 남성을 체포해 논란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사우나와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비과학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작년 7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완치됐다.
오슬룬드 연구원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정치의제가 '시장경제 요소를 극소수만 도입한 소련식 경제체제 복원', '정치적 억압의 점진적 증가', '러시아와 깊은 정치적 관계 형성' 등 크게 3가지 요소로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매우 가깝게 지낸다.
서방의 제재를 받는 그로선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가 마지막 남은 '동맹'이자 '구원자'인 셈이다.
양국은 1999년 연합국가 창설조약을 맺은 뒤 국가통합을 추진해왔다.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왼쪽)과 블라디 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라이언에어 CEO "항공기에 벨라루스 비밀경찰 탑승한 듯"
아일랜드 "항공 해적행위"…영국 "동맹들과 추가 제재 등 조율"
벨라루스 당국이 야권 인사 체포를 위해 강제 착륙시킨 항공기에 애초에 비밀경찰이 타고 있었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아일랜드의 유럽 최대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의 마이클 오리어리 최고경영자(CEO)는 24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뉴스토크 라디오 인터뷰에서 항공기 강제착륙은 "국가가 지원한 항공기 납치"라고 규정했다.
오리어리 CEO는 또 "당국의 의도는 기자와 그의 일행을 내리게 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벨라루스 KGB 요원들이 항공기에 타고 있다가 공항에서 같이 내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공항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23일 해외에 머물던 야권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그가 타고 이동 중이던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를 전투기까지 동원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벨라루스에서 인기가 높은 야권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NEXTA)의 전(前) 편집장인 라만 프라타세비치(26)는 이날 그리스 아테네-리투아니아 빌뉴스 노선을 운항하던 이 여객기를 타고 가던 중 기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로 여객기가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에 비상 착륙한 뒤 현지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오리어리의 발언은 민스크 공항에서 다른 승객 4명도 내렸다는 보도를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 보도로 프라타세비치가 보안요원들에게 미행당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오리어리는 유럽 항공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처음으로 안다고 말했다.
프라타세비치와 함께 러시아 국적으로 리투아니아에서 대학을 다니는 소피아 사페가(23)도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벨라루스 정부는 그가 지난해 대규모 루카셴코 대통령 반대 시위를 선동했다고 비난해왔다.
빌뉴스의 대학은 학생인 사페가도 구속됐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프라타세비치의 친구는 BBC 라디오에 "우연일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프라타세비치가 아테네를 떠나기 전에 공항에서 미행당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고 전하면서 "그의 여자친구도 함께 체포됐는데 그녀는 러시아 국적이다"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벨라루스를 비난하면서 유럽연합(EU)에 강경대응을 촉구했다.
사이먼 코베니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RTE 방송에 "이는 항공 해적행위라고밖에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일랜드 항공사에 폴란드에 등록된 항공기이며 EU 국가를 오가던 중이었다"며 "EU가 매우 명확한 반응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성명에서 프라타세비치 즉각 석방을 촉구하며 벨라루스 추가 제재 등을 포함해 동맹들과 대응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라브 장관은 또 루카셴코 정권이 민간 항공사 안전을 보장하는 국제 규범을 무시한 것과 관련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긴급 회동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EU, 벨라루스 대사 초치…여객기 강제착륙 규탄
영 · 독 · 이탈리아도 대사 초치…국제법 위반 규탄
유럽연합(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은 24일(현지시간) 벨라루스 당국이 전날 야권 인사 체포를 위해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Ryanair) 소속 여객기를 강제로 착륙시킨 것을 규탄하기 위해 EU 주재 벨라루스 대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스테파노 사니노 EEAS 사무총장은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의 요청에 따라 알렉산드르 미흐네비치 EU 주재 벨라루스 대사를 초치했다.
EEAS는 이는 "민간 항공기를 강제로 민스크에 비상 착륙하게 하고 벨라루스의 독립적 언론인이자 활동가인 라만 프라타세비치를 구금한 벨라루스 당국의 용납할 수 없는 조치를 규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EAS는 미흐네비치 대사에게 "EU 주요 기구와 회원국들이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벨라루스 당국의 강제적인 행위를 단호하게 규탄한다"는 점을 전하고 프라타세비치를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라만 프라타세비치 체포장면
이날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도 각각 벨라루스 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규탄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규탄하면서 이 사건이 부끄러우면서도 명백하게 국제법을 위반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를 강제착륙시킨 데 대한 벨라루스 정부의 설명은 터무니없고 신뢰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여객기내와 착륙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외무부도 프라타세비치를 납치한 것은 국제 항공운항규정을 심각히 위배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라면서 벨라루스는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대선 부정으로 인한 정치 혼란이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23일 야권 인사 프라타세비치가 타고 있던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를 전투기까지 동원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프라타세비치는 해당 여객기가 착륙한 직후 현지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해당 여객기가 소속된 라이언에어는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의 기업으로, 역시 EU 회원국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건 직후 EU와 회원국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규탄했다. 이날 열리는 EU 회원국 정상회의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벨라루스 제재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EU 회원국 정상들 임시회의…벨라루스 제재 등 논의
지난해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회의장 모습. [AP=연합뉴스]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이 24∼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임시 회의를 열고 벨라루스 제재와 러시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로이터, AFP 통신에 따르면 EU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저녁 열리는 회의에서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23일 야권 인사 라만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하기 위해 그가 타고 있던 그리스 아테네발 리투아니아 빌뉴스행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를 전투기까지 동원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라이언에어는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의 기업이며, 해당 여객기의 출발지, 도착지는 EU 회원국 수도로, 사건 직후 EU와 회원국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규탄했다.
리투아니아와 프랑스는 국제 항공편의 벨라루스 영공 운항을 막고 벨라루스발 항공기가 EU 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개인에 대한 제재를 넘어서는 조치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벨라루스와 EU 회원국 간 육상 교통까지 중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 프랑스 외교 소식통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제소 가능성을 언급했다.
EU는 이미 지난해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 후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루카셴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탄압을 이유로 루카셴코 대통령을 포함해 벨라루스 인사 88명을 제재 대상에 올린 바 있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이밖에 이번 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는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고 새 변이들이 확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여름을 앞두고 회원국들이 조율된 대응을 계속할 것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들은 러시아, 영국 등 대외 관계, 6월 중순 예정된 EU-미국 정상회의 준비, 기후변화, 중동 문제 등도 논의한다.
벨라루스 "하마스가 폭파 위협해 여객기 비상착륙시켜" 해명
"하마스, 이스라엘 지지 중단 요구하며 아일랜드 여객기 폭파 협박"
벨라루스 당국이 24일(현지시간) 전날 발생한 아일랜드 항공사 여객기 강제착륙 사건과 관련,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 위협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은 벨라루스 당국이 이 여객기에 탑승했던 자국 야권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해 항공기를 민스크 공항에 비상착륙시켰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왔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벨라루스 교통부 항공국 국장 아르티옴은 이날 브리핑에서 강제 착륙 사건에 앞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로부터 아일랜드 라이언에어(Ryanair) 여객기를 폭파하겠다는 협박 서한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스크 공항 메일로 영어로 된 (경고) 서한이 들어왔다"면서 서한 내용을 소개했다.
아르티옴이 공개한 서한에는 '우리 하마스 전사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유럽연합(EU)이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일을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어 "(5월 중순 그리스에서 열린) 델피 경제 포럼(Delphi Economic Forum) 참석자들이 (라이언에어) FR4978 편으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 여객기에 폭탄이 설치돼 있으며 만일 우리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폭탄이 23일 (리투아니아) 빌뉴스 상공에서 터질 것"이라는 협박이 담겼다.
아르티옴은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 관제센터가 여객기 승객들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 국제의무에 따라 여객기를 비상 착륙시키는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전날 벨라루스 당국은 그리스 아테네-리투아니아 빌뉴스 노선을 운항하던 아일랜드 라이언에어 여객기를 자국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착륙시켰다. 이를 위해 자국 공군 전투기까지 이륙시켜 여객기를 호송했다.
그리스, 리투아니아, 아일랜드 등은 모두 EU 회원국이다.
벨라루스 측은 줄곧 이 여객기에 대한 테러 위협이 접수돼 비상착륙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해당 여객기에 탑승했던 폴란드 망명 벨라루스 야권 인사가 민스크 공항에서 체포되면서 벨라루스 당국이 그를 구금하기 위해 여객기를 납치했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독일 루프트한자 여객기, 테러 위협으로 벨라루스 출발 지연"
벨라루스 당국 외국 여객기 강제착륙 사건 여파인 듯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운항할 예정이던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 소속 여객기가 24일(현지시간) 테러 위협으로 출발이 지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테르팍스·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민스크 국제공항 공보실은 앞서 이날 "공항 이메일로 민스크-프랑크푸르트 노선 루프트한자 LH1487편 여객기에 테러를 가하겠다는 신원미상자의 통보가 접수됐다"면서 "(이 여객기의) 이륙이 오후 2시 20분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승객 탑승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공항 측은 "벨라루스의 항공안전 규정에 따르면 이런 경우 승객과 승무원, 항공기 안전 확보를 위해 공항 보안당국이 철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이와 관련 현재 항공기와 모든 운송물에 대한 재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승객들도 재차 보안검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루프트한자 항공사 측도 이날 벨라루스 당국의 경고를 받은 뒤 민스크-프랑크푸르트 노선 항공기의 출발을 중단했다면서 "현지 보안당국의 지시에 따라 항공기 재수색과 승객에 대한 보안검색을 다시 실시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검색 결과 테러 위협은 허위로 드러났다.
공항 공보실은 뒤이어 "승객과 화물, 항공기에 대한 검색이 완료됐으며 테러 위협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추가 보안검색을 마친 여객기는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이날 루프트한자 여객기 운항 차질은 전날 벨라루스 당국이 자국 야권 인사 체포를 위해 리투아니아로 비행 중이던 아일랜드 라이언에어(Ryanair) 소속 여객기를 전투기까지 동원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사건으로 국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졌다.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대한 테러 위협과 운항 차질도 전날 여객기 강제 착륙 사건의 여파로 보인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지난달 27일 각의 결정을 거쳐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에게 제출한 답변서에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동원된 이들과 관련해 "'모집', '관(官) 알선' 및 '징용'에 의한 노무에 관해서는 어느 것도 동(同) 조약(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을 의미함)상의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강제노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붉은 옆줄)고 기재돼 있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모집, 관(官) 알선, 징용 등으로 한반도 출신 노무자를 노역시킨 것이 모두 강제 동원이라고 24년 전에 인정한 것으로 24일 파악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최근 야당 의원의 질의에 이와 어긋나는 내용의 답변서를 각의 결정했으며 이는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가 일본 국회 회의록을 확인해보니 1997년 3월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쓰지무라 데쓰오(辻村哲夫) 당시 문부과학성 중등교육국장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무 동원에 관해 "모집, 관 알선, 징용 등 저마다 형식은 달랐더라도 모두 국가의 동원 계획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했다는 점에서는 틀림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그는 고야마 다카오(小山孝雄) 당시 자민당 의원이 일본 정부가 징용이라는 형식으로 노무 동원을 시작하기 전인 1939년에 찍은 사진을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싣고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질의하자 일본 역사 사전 등에 실린 설명을 소개하며 이같이 답했다.
당시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후생노동성 당국자는 모집은 1939년 9월, 관 알선은 1942년 3월, 징용은 1944년 3월에 각각 개시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일제가 한반도 출신 노무자를 동원한 방식에 관해 소개했다.
고야마는 이런 설명에 의지해 사진이 촬영된 시점이 1939년이므로 노무자를 '모집'한 것이며 이를 '강제연행'이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쓰지무라는 국가적인 동원 계획을 토대로 노무 동원이 이뤄졌다며 "모집이라는 단계에 있어서도 결코 정말 임의의 응모라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동원 계획을 토대로 해서 동원한다는 것으로 자유·임의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학설 등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제 연행 중에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모집 단계도 포함해 이를 평가한다는 것이 학계에 널리 퍼져 있다"며 동원 방식을 구분해 강제성을 부정하려는 시도와 사실상 선을 긋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소재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교과서 검정 등을 담당하는 일본 정부 당국자가 징용뿐만 아니라 모집이나 관 알선도 형식만 다를 뿐 사실상 강제 동원이며 당사자들이 자유 의지에 따라 응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명확하게 답변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최근 이런 답변을 뒤집은 정부 견해를 각의 결정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은 "한반도에서 내지(內地·일본을 의미)로의 이입(移入·옮겨 들어옴) 경위에 여러 가지이며 이런 사람들에 관해 '강제연행됐다' 혹은 '강제적으로 연행됐다' 또는 '연행됐다'고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난달 27일 결정한 답변서에서 밝혔다.
이는 바바 노부유키(馬場伸幸) 일본유신회 중의원 의원이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온 노무자 가운데는 자신의 의지로 일본에 오기로 한 이들도 있고 모집, 관 알선, 징용 등 여러 방식이 있음에도 이를 일괄해 강제 연행됐다고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의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일본 정부는 24년 전에는 형식이 달랐더라도 실제로는 강제 동원으로 봐야 한다고 답해놓고 바바 의원의 질의를 계기로 이를 사실상 뒤집은 셈이다.
일본 시민단체 '강제 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이번 답변이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그간 학회의 성과에 의거해 온 정부의 인식을 변경했다. 그것은 정부의 동원 계획에 의해서 조선인의 강제적인 연행·노동이 행해진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24일 성명을 발표했다.
또 국제노동기구(ILO)가 1999년 3월 보고서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무 동원이 강제 노동이라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며 스가 내각이 답변서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