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반 시각 장애를 가진 한 가수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히트곡 가운데 ‘어머니는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람이 휘몰던 어느 날 밤 그 어느 날 밤에 떨어진 꽃잎처럼 나는 태어났다네.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 그는 정상인으로 태어났지만 성장과정에서 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그의 외침은 부모에 대한 푸념 혹은 원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설사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었다 할지라도, 혹은 내 부모가 엉터리로 살다가 나를 사생아처럼 낳았다고 할지라도 내 부모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내 아버지가 아무리 폭군이라 할지라도 자식은 아버지를 버릴 수 없습니다. 또한 마약, 알코올 중독 등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그 자식과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끊고 싶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 버리고 싶다고 해도 버려지지 않는 관계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로 이런 관계라는 것을, 즉 하나님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태 속에서 만드신 분,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분』이십니다(욥 31:15; 엡 2:10).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정확히 알려면 나를 만드신 그 분을 제대로 알아야 되겠지요? 그 분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창1:1; 엡3:9). 창조하실 때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생각도 없이 그냥 창조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미리 다 계획하고 준비하신 다음에 창조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분이십니다(창2:7). 그래서 그 분은 나의 토기장이 이시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따라서 하나님과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즉 내가 그 분으로부터 태어낳고, 그 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분 없이는 ‘나’라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그 분과 ‘어쩔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끊는다고 끊어지는 관계가 아니며, 버린다고 버려지는 관계도 아니며, 우리가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나는 …이다”(I am …)라고 하면서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7가지가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I am the bread of life. 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I am the light of the world. 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I am the door of the sheep. 요10:7-9), “나는 선한 목자다”(I am the good shepherd. 요11:11-1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요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요14:6), “나는 참 포도나무요”(I am the true vine. 요15:1). 이 모든 것이 ‘함께’ 또는 ‘어쩔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로 나타내 주는 표현들입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나왔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만든 것이 아니고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게서 가지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가지는 스스로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태어났기 때문에 나 혼자서는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자신 속에 있기를 원하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 주님 안에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내 안에 딱 달라붙어 있으라. 절대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끊는다고 끊어지는, 버린다고 버려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내가 싫어도 끝까지 붙어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 안에 우리의 참된 평강과 미래가 있습니다.
<유제시 목사 - 토론토 서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