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심의위 신청 이틀만에, 옛 미전실 최지성·김종중도 영장

                

검찰이 4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72월 구속됐다가 2018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24개월 만에 다시 구속 갈림길에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이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 부회장과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팀장은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 부회장 승계와 무관하다고 거짓 증언한 혐의(위증)가 추가됐다.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미전실로부터 수시로 보고받은 구체적인 문건을 여럿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런 객관적인 물증에도 이 부회장이 불법적인 부분은 몰랐다는 취지로 부인해 구속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삼성이 20157월 제일모직의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나스닥 상장 추진도 내부 문건을 통해 주가 부양을 위한 허위상장 발표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주 두 차례 이 부회장을 조사한 뒤 지난 1일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튿날인 2일 이 부회장 쪽은 기소 및 수사 계속여부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판단해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 이 부회장 쪽이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건은 관련 절차대로 진행되지만, 이날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사실상 실효성은 떨어지게 됐다. 이 부회장 쪽 변호인들은 이날 낸 입장문에서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원회의 안건 부의 여부 심의 절차가 개시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전문가의 검토와 국민의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보고자 소망하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 부회장 등 3명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8일 오전 1030분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다. < 김정필 임재우 기자 >

, 이재용 수사심의 신청전 영장 청구결정물증에 자신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 미전실 문건 등 다수 확보해

검찰은 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오늘 구속영장 청구가 삼성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에 대한 전격적인 반격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에 맞대응형식으로 갑자기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아니라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원칙대로 수사를 진행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은 우선 구속영장 청구 사유인 범죄의 중대성을 입증할 물증을 탄탄하게 확보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조원대 지배권 이득을 가져올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장에 허위정보를 제공해 주주와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는 데 이 부회장이 직접 앞장섰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님 보고 필이라는 제목이 달린 다수의 문건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현안을 상세하게 보고받았고,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 계열사들이 주가 부양등 시세조종에 나설 때 주가관리 보고도 계속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2014년부터 직접 추진했던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상장 추진도 결국은 주가 부양을 위한 허위 발표로 결론 내렸다. 삼성은 201571, 합병안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제일모직의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나스닥 상장을 발표했지만, 그해 초 나스닥 상장은 당분간 어렵다는 결론을 담은 내부 문건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의 최종 수혜자로서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행위를 보고받은 것으로 파악했지만, 이 부회장은 두 차례 조사에서 미래전략실 등 임직원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확한 물증에도 혐의를 부인하면 검찰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달 29(금요일) 이 부회장에 대한 두 번째 조사를 마친 뒤, 지난 1일 일찌감치 영장 청구 방침을 확정했다. 그사이 다급한 사정에 몰린 삼성이 2일 돌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소집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영장 청구와 기소 시점이 뒤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이미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린 만큼, 이 부회장 쪽의 여론전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분식의 규모, 죄질,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 등을 감안해 피의자 측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 이전에이미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하고 검찰총장에게 승인을 건의했다고 강조했다. 오는 7월 검찰 인사를 앞둔 상황이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기소가 지연될 경우 수사 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심의위 논의를 통해 수사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 여론의 판단을 받아보고자 했던 삼성의 시도는 일정 정도 무력해졌다. 검찰은 또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큼 수사의 명분을 쌓은 상황이라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영장 청구 자체가 구속 기소가 필요할 만큼 혐의가 입증됐다는 판단을 전제한 것이므로, ‘기소 타당성논의가 상당 부분 힘이 빠졌다고 짚었다. < 임재우 기자 >


서울 도심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평화행진 예정

케이팝국외팬들, 가수·국내 팬에 호소

 

미국 백인 경찰의 강압적 체포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 세계로 번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이번 주말 도심에서 평화행진이 열리는 등 연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등 케이팝(K-Pop) 스타들도 팬들의 요청에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며 연대에 합류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4일 공식 트위터 계정(@BTS_twt)에 글을 올려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LivesMatter)’는 해시태그와 함께 영어로 번역한 글도 함께 올려 국외 팬들도 읽을 수 있게 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계기로 벌어지고 있는 흑인 인권운동에 동참해달라는 국외 팬들의 목소리에 화답한 것이다. 케이팝 스타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크고 작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국외 팬들의 요청이 있었다.

케이팝 가수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팬들의 커뮤니티에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미국 시위를 알리는 국외 팬들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가수들에게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를 공유하거나, 경찰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국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들 역시 이 목소리에 답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31(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이 아이워치 댈러스(iWatch Dallas) 앱을 통해 불법시위 영상을 제보해달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자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 가수들의 사진·영상 등을 도배해 무력화한 일도 있다. 케이팝 팬인 한 트위터 이용자가 팬캠(팬이 직접 찍은 가수의 무대영상)으로 앱을 도배해 시위대를 지키자는 제안을 한 데 따른 것이다. 팬들에 화답해 현재까지 소녀시대 출신의 티파니 영, 박재범, 투애니원(2NE1) 출신의 씨엘, f(x)(에프엑스)의 엠버 등이 자신의 SNS에 시위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거나 기부를 하는 등 연대에 나섰다.

추모와 연대의 물결은 국내 시민들에게도 번지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한국인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계정(@BlmKorean)을 만들어 각종 영문자료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흑인 인권운동 단체들이 어떻게 시위 과정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가를 보여주는 기사, 흑인 인권운동의 역사 등이 소개됐다.

오는 6일엔 서울 도심에서 인종차별을 규탄하고 미국 시위와 연대하는 평화 행진도 열린다. 시위를 제안한 심지훈씨는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종을 떠나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일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폭력시위로 분노를 표출하자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 거리두기수칙을 지키면서, 2미터 이상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천천히 주한 미대사관 앞으로 행진하며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고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작은 움직임을 시작하자고 밝혔다. 시위는 6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밀리오레 쇼핑몰 앞에서 시작되며 주최 쪽은 마스크손팻말을 준비해달라고 공지했다. 참가자들은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846초동안 바닥에 엎드리는 추모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 박윤경 기자 >

김여정  개성공단 철거·군사합의 파기 경고,

통일부 금지법 이미 검토 중” ...역대정부 골칫거리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일부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뿌리기를 문제 삼아 이런 악의에 찬 행위들이 방치된다면 남조선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노동신문>4일치 2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통일부는 대북 전단 뿌리기를 차단할 법률 정비 계획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며 신속하게 입장을 밝혔다. 악재로 불거진 대북 전단 문제로 남북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는 한편, ‘김여정 담화를 남북 당국의 신뢰 회복 계기로 삼으려 하는 모양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는 제목의 개인 담화에서 “531탈북자라는 것들이 전연(최전선) 일대에 기여나와 수십만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측 지역으로 날려보내는 망나니짓을 벌려놓은 데 대한 보도를 봤다. 문제는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며 핵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의 조항을 결코 모른다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20184·27 판문점 선언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21), 9·19 군사합의는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1조 서문)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고는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개성) 북남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북남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531일 경기도 김포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 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 적은 전단 50만장, 1달러 지폐 2천장 등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쪽으로 날려 보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의 기자회견으로 발표한 대북 전단 관련 정부 입장에서 접경지역 국민들의 생명·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적 개선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대북전단 금지 입법 추진남북관계 풀 실마리 될까

DMZ평화지대와 관련 법안에 단속 조항포함 형태로 추진

일부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뿌리기(531, 김포)를 계기로 남과 북의 당국이 4일 오랜만에 일합을 주고받았다.

북쪽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이자 최측근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나섰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개인 담화에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뿌리기를 최고존엄까지 건드망나니 짓이라며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고 했다. “적대행위 금지를 명시한 20184·27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서를 상기시키며, “법이라도 만들고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남쪽 당국에 주문했다.

정부는 김여정 담화에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유감을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법률 제정을 통한 대북전단 단속 의지를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경찰관직무집행법과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법등을 원용해 대북전단 뿌리기를 단속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입법을 통해 단속의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향적 대응 기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대북전단은 백해무익한 것” “안보에 위협이 되는 행위라고까지 했다.

정부의 이런 대응엔 이유가 있다. ‘김여정 담화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대북전단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합의 위반이기 때문이다. 20184·27 판문점선언은 “5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21)고 명시했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9·19 군사합의)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1조 서문)고 밝혔다.

판문점 선언 이전에도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뿌리기는 역대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201410월 한 탈북민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띄우자 북쪽이 고사총을 쏴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고, 접경지역 주민과 탈북민 단체가 갈등을 빚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경찰을 내세워 단속하자 탈북민단체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대법원은 대북전단 뿌리기가 표현의 자유영역에 있다면서도, 접경지역 위험 초래 등을 이유로 경찰 등의 제지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문재인 정부는 4·27 판문점 선언에 따른 적대행위 중지시점인 201851대북전단 살포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전단 살포 중단은 군사적 긴장 완화, 접경지역 주민의 신변 안전, 사회적 갈등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고 밝히고, 입법 등 관련 대책을 내부 검토 해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선언에서 비무장지대의 실질적 평화지대화에 합의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합의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여러 조처들을 법률로 규정하며 대북전단 문제에 대한 입법적 조처를 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대북전단 단속만을 목표로 한 법률 정비나 입법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를 뒷받침하려고 검토·추진 중인 새 법률안에 대북전단 단속조항을 담겠다는 얘기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과 보수층의 반발을 염두에 둔 현실정치적 고려도 담겨 있는 셈이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입법을 통한 대북전단 제어 방침을 밝힌 건 남북관계에 일단 긍정적이라면서도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려면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실마리 삼은 보건의료협력 등 좀 더 과감한 접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이제훈 성연철 기자 >

 


4일 홍콩 입법회(국회) 의원들이 중국 국가모독금지법안(국가법)을 심의하고 있다. 이날 심의 도중 민주파 의원 2명이 본회의장에 오물을 뿌려 경찰과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의원들 자리에는 198964일 일어난 천안문 시위’ 31주년을 기념해 잊지 말자 6·4, 사람의 마음은 죽지 않는다는 글귀가 쓰인 팻말이 놓여 있다.

          

집회불허 속 1.5m 거리 두고 ‘64초 묵념홍콩서 타오른 천안문 촛불

무장경찰 3천명 도심서 삼엄한 경계 입 틀어 막는다고 힘·권위 안 생겨

       

1989년을 상징하는 4일 저녁 89분 홍콩섬 중심가 코즈웨이베이에 자리한 빅토리아공원이 침묵에 휩싸였다. <나우뉴스> 등 홍콩 매체가 전한 현장 화면을 보면, 모여든 인파는 64일을 상징하는 64초 동안 팔을 쭉 뻗어 손에 든 촛불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198964일 천안문 민주화시위 유혈진압 31주년을 맞아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묵념이었다.

홍콩 경찰은 이날 1990년 이후 해마다 빅토리아공원에서 열리던 ‘6·4 촛불집회를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30년 만에 처음으로 금지했다. 진압장비로 무장한 경찰 3천여명이 도심 전역에 배치돼 하루 종일 삼엄한 경계에 나섰다. 주최 쪽인 애국민주운동 지지 홍콩시민연합회’(지련회)는 준법투쟁을 예고했다. 8명씩 1.5m 간격을 두고 공원에서 촛불을 들기로 했다.

<핑궈일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집회 예정 시간을 30여분 앞둔 이날 저녁 730분께부터 빅토리아공원 인근 지하철 코즈웨이베이역 부근이 인파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공원 앞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지하철역 부근까지 길게 늘어섰다.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이나 종이 손팻말을 든 시민들은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물밀 듯 공원으로 들어섰다. 홍콩섬 사이잉푼과 카오룽반도 몽콕·툰먼·타이와이 등지에서도 인도를 빼곡히 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앞서 이날 오전 홍콩 입법회 본회의장에서도 민주파 의원들이 64초간 묵념을 했다. 일부 의원은 인민은 잊지 않는다고 적힌 검은 티셔츠를 입었다. 홍콩 입법회는 이날 중국 국가모독금지법안(국가법)을 최종 심의했다. 친중파 챈 킨 의원이 국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시작하자, 묵념을 마친 민주파 의원들은 “6·4를 잊지 말자. 인민의 마음은 죽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친 뒤 퇴장했다.

홍콩 입법회는 이날 오후 민주파 의원들의 불참 속에 국가법안 처리를 강행해, 친중파 의원 41명 전원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앞으로 홍콩에서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의 가사를 바꿔 부르거나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모독행위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만 홍콩달러(78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앞서 민주파 의원들은 국가법안 표결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 오물을 뿌리며 저항하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둘째)6·4 천안문 민주화시위 31주년을 앞두고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왕단(가운데) 등 시위 주역들을 면담한 사진을 3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했다.

내년부터 촛불집회가 아예 열리지 못한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천안문 유혈진압이 발생했고, 무고한 사람이 총에 맞았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둥팡 중국노동자통신’(CLB) 사무총장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철도노동자였던 한 사무총장은 광장 점거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중국 최초의 독립노조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1993년 홍콩에서 중국노동자통신이란 단체를 설립해 중국 내 노동조합운동 지원을 이어온 한 사무총장은 보안법은 홍콩인들의 머리 위에 걸린 커다란 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제, 누구에게든 날아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홍콩을 떠날 계획이 없다. 그는 사람들 입을 틀어막는다고 더 큰 힘과 권위가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