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특검법’은 ‘김건희 특검법’에 합치기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5개 정당은 25일 오후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공동 재발의하기로 했다.

 

김성회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이날 오후 발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기 발의한 명태균 특검법은 (김건희 특검법과) 각각 (발의)하기보단 다 모아서 하나의 특검법으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 특검법은 ‘김건희’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만큼, 김 여사를 중심으로 법안을 하나로 합쳐 수사 범위를 구성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검찰 조사 결과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 캠프 ‘비선실세’로 지목된 ‘건진법사’ 전성배(64)씨가 2022년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본부장 윤아무개씨로부터 6천만원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김 여사 선물용으로 받았다는 사실 등이 공개되면서, 민주당은 김 여사와 관련된 여러 의혹을 하나로 합쳐 ‘더 센 특검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울러 민주당은 이날 기존 당내 ‘명태균 게이트 진상조사단’을 확대 재편한 새 진상조사단을 꾸려, 명태균 게이트를 포함한 새로운 김건희 특검법의 주무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조사단은 명태균 의혹 분과와 건진법사 의혹 분과로 구성될 것”이라는 게 김 대변인 설명이다.

 

또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전말을 특별검사가 수사하도록 한 ‘내란 특검법’의 경우, 국민의힘 의원들의 특검법 표결 동참을 설득하기 위해 뺐던 ‘외환죄’ 혐의를 다시 포함시키기로 했다.

 

민주당은 두 특검법을 5월 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쳐, 대선 뒤 6월 안에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 한겨레 김채운 기자 >

 

안경호 기획관리실장 지난 21일부터 경호처장 직무대리 맡아서 조치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저지 등에 앞장섰던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이 대기발령됐다.

 

경호처는 25일 “안경호 경호처장 직무대리 기획관리실장이 김 차장과 이 본부장에 대해 4월28일자로 대기를 명했다”고 밝혔다. 안 기획관리실장은 지난 21일부터 경호처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고 12·3 비상계엄의 핵심 증거 중 하나인 대통령실 비화폰 데이터 삭제를 지시한 혐의 등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경호처 직원들은 지난 8일 “김 차장과 이 본부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경호처를 사조직화했으며 직권남용 등 갖은 불법 행위를 자행해 조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연판장을 돌리며 두 사람의 사퇴를 요구했다.

 

경호처 등에 따르면 김 차장은 지난 15일 내부 직원회의에서 ‘이달 말까지 근무하고 물러나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전날 휴가를 냈다. 이 본부장도 최근 휴가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 한겨레  신민정 기자 >

4·27 판문점선언 7주년 기념식

 

 
 
4·27 판문점선언 7주년 기념식 참석차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전 대통령이 25일 ‘4·27 판문점선언 7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3년은 그야말로 반동과 퇴행의 시간이었다. 마음 편할 날이 없던 3년이었다”며 윤석열 정부 3년을 작심 비판했다. 퇴임 뒤 고향인 경남 양산으로 돌아간 문 전 대통령이 공식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것은 9·19 평양 공동선언 5주년 행사에 참석한 2023년 이후 2년 만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김대중재단·노무현재단·포럼 사의재·한반도평화포럼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7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3년 됐다”며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3년이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가 국민과 함께 공들여 이룩한 탑이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걱정해야 하는 나날이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자긍심은 사라지고, 추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탄식과 우려가 커져만 갔다”며 “전임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참담하고 무거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검찰총장에 발탁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밝혔지만, 공식석상에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두루 비판한 적은 없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 정부가 이룬 성과들이 “모든 분야에서 멈춰서고 뒷걸음질쳤다”고 평가했다. 경기 침체에 대해선 “한국 경제는 지난 3년간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중고에 민생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잠재성장률 2%에도 미치지 못하는 1%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저성장의 늪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토록 경제가 어려운데도 국가재정은 제 역할을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나라 곳간이 비면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와 서민들의 민생과 복지를 위한 정부 역할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패와 무책임한 부자 감세에 기인한 것으로, 세수 기반이 허물어지고 우리 경제의 대응력을 약화시킨 후과를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떠안게 됐다”고 성토했다.

 

후퇴한 민주주의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문 전 대통령은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연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16위까지 상승했던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윤석열 정부에서 큰 폭으로 하락하며 역대 최저 점수, 최저 순위를 기록했고,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도 큰 폭으로 하락해 세계 62위를 기록한 점을 들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외교·통일 문제를 두고도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대 정부의 성과와 노력은 송두리째 부정됐고 남북 관계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고 우려했다. 또 “급기야는 윤석열 정부가 계엄을 위한 위기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 수사가 주목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가 계승해 온 균형외교를 파기하고,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편협한 진영외교에만 치중했다. 그 결과 주변국의 반발을 키우며 국익은 훼손되었고, 평화와 번영의 땅이 되어야 할 한반도는 신냉전 대결의 최전선이 됐다”고 거듭 성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윤석열 정부의 모든 분야에 걸친 총체적인 국정 파탄은 대통령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님을 보여준다. 집권 세력의 낡은 이념과 낡은 세계관, 낡은 안보관과 낡은 경제관이 거듭해서 총체적인 국정 실패를 초래해왔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12·3 내란이야말로 “대한민국 퇴행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했다. “민주화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시대착오적 일이 대명천지에 벌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수십년 전 군부독재 시대에나 있었던 어둠의 역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고 세계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남긴 상처와 후유증은 매우 깊다”며 “비정상과 몰상식이 판을 치며 민주주의를 근본에서부터 흔들고 있는 현실을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고 통합과 상생, 연대와 협치의 정치도 이 토대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돌이켜보면, 역대 민주당 정부는 역대 보수정권이 남긴 퇴행과 무능을 바로잡고 대한민국을 다시 전진시켜내는 것이 운명처럼 됐다. 국민이 선택하게 될 새 정부가 국민과 함께 훼손된 대한민국의 국격을 회복하고, 더욱 유능하게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엄지원  김채운 기자 >

 

문 전 대통령 “부당한 기소…검찰권 남용·정치화 국민께 알리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4·27 판문점선언 7주년 기념식 참석차 25일 국회를 방문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면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은 25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검찰이 자신을 기소한 데 대해 “기소 자체도 부당하지만 검찰이 뭔가 정해진 방향대로 무조건 밀고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4·27 판문점 선언 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해 우 국회의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검찰의 기소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이 검찰의 기소와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문 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먼저 우 의장이 “(문 전 대통령이) 답변 준비 중에 갑자기 기소됐다고 해서 납득이 안 된다”며 “이렇게 절차가 안 지켜지고,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저도 잘 납득이 안 되는데 국민들도 납득이 안 될 것”이라고 하자 대꾸하는 형태로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한 건 2022년 퇴임 이후 처음이다. 문 전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하루 앞두고 검찰은 옛 사위 특혜 채용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을 뇌물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 기소 전) 제가 기억하는 범위 내의 답변을 이미 작성해놓고 사실 관계를 깊이있게 확인하기 위해 대통령 기록관에서 기록을 열람 중이었다”며 “그 과정이 검찰과 협의되면서 조율 중이었는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기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기소는) 검찰이 정치화되고 있고 또 검찰권이 남용된다는 아주 단적인 사례”라며 “앞으로 내 개인적인 무고함을 밝히는 차원 넘어서 검찰권의 남용과 정치화 이런 부분을 제대로 드러내고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조기 대선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서 나라를 빠르게 정상화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대립이나 분열이 지속된다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며 “국회가 새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민생이 안정되도록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 한겨레 김규남  김채운 기자 >

상호관세 유예 기한 못 박고 다양한 양보 요구하는 미 의도 충실 반영

전체 한국 상품 대해 25% 상호관세 철폐 &경감 계획은 구체 제시않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 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서 한·미 ‘2+2 통상 협의’ 결과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한국과 미국의 경제·통상 장관들이 ‘2+2 통상 협의’에서 미국 고율 관세를 둘러싼 논의 범위와 일정에 관해 큰 틀에서 합의함으로써 협의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이런 합의에는 상호관세 유예 기한을 못 박고 다양한 양보를 요구하는 미국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협의 뒤 브리핑에서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7월8일 이전까지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줄라이(July·7월) 패키지’를 마련할 것과 양측의 관심사인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 협력, 통화 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이번에 “협의 과제를 좁히고 논의 일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협의의 기본틀, 즉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고 평가된다”고 했다. 그는 역시 협의에 참여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그리어 대표가 별도 회동에서 앞으로 협의를 진행할 복수의 작업반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한·미 양국 간의 향후 협의의 틀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있었다”며 “‘줄라이 패키지’ 도출을 목표로 향후 협의의 방식, 범위에 대해 다음주 중 양국 간 실무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큰 틀의 의제와 협의 일정은 주로 미국의 이해관계와 협상 틀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역적자를 상대국의 관세·비관세 장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은 이런 장벽의 해소를 요구하면서 자국에 대한 직접투자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경제안보라는 개념도 경제와 안보가 불가분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미국이 주로 중국을 염두에 두고 동맹국들과의 공급망 연계나 수출 통제 강화를 추진할 때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은 또 무역 상대국들이 의도적으로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해 대미 수출을 독려하면서 무역흑자를 늘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8개 비관세 부정행위’를 거론하면서 환율 조작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환율을 둘러싼 통화 정책 문제의 경우 정부가 관세 협상 의제로서 공식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꺼렸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논의 주제가 설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일본과도 환율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논의에는 응하지만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 평가절상을 했다가 큰 타격을 입은 기억 때문에 급격한 엔화 평가절상은 다시 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줄라이 패키지’를 추진한다는 것도 미국의 협상 전략과 궤를 맞추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이달 9일 57개국을 상대로 상호관세(한국은 25%)를 발효했다가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13시간 만에 상호관세 적용을 7월9일로 90일간 유예해놓은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예 기간 안에 협상을 타결지어야 유리하다며 상대국들을 독려하는 동시에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패키지’라는 표현은 또 여러 분야에서 양보를 받아낸다는 미국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쇠고기 등 농축산물 수입 확대나 위생 규정 개정,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해결 등 무역수지와 관련된 문제 외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참여 등도 요구하는 등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6월2일 알래스카에서 열리는 엘엔지 관련 고위급 회담에 한국과 일본 등이 참여해 투자의향서에 서명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처럼 한국에 여러 양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자동차·철강·알루미늄에 대해 부과한 25% 품목별 관세나 유예 기간이 끝나면 발효할 예정인 전체 한국 상품에 대한 25% 상호관세에 대한 철폐 내지 경감 계획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안 장관은 브리핑에서 “전체 패키지가 사실 합의가 돼야 하기 때문에 일부 한국의 이슈가 먼저 정리가 된다는 것을 가지고 관세가 어떻게 된다고 사전에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를 종합하면, 미국은 한국의 양보안을 검토하고 확실한 약속을 받은 뒤에야 ‘대가’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부가 이번 협의에서 일단 미국 쪽이 방위비 분담금과 대중국 압박 공조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그나마 부담을 줄여주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진다. 최 부총리는 이에 관한 질문에 “방위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했고, 중국에 관해서도 관련 언급이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한 뒤 무역뿐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등을 포함시키는 “원스톱 쇼핑”을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초기 관세 협상 상대국들에 △중국 화물선 경유 금지 △미국의 대중국 관세 회피용 제3국 투자 금지 △중국산 저가품 구매 금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협조하는 국가에는 “대등한 반격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베선트가 이번 회의 결과를 놓고 다음주 중 “양해에 관한 합의(agreement of understanding)”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혼선도 빚어졌다. 베센트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관세 협상에 대해 설명하라는 트럼프의 지시에 “한국 최선의 제안을 가져왔고, 우리는 그들이 그것을 이행하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한국과의 협의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르면 다음주에 양해에 관한 합의에 도달하면 기술적 조건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미가 양해각서(MOU) 같은 식의 합의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최근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는 인도나 일본과의 관세 협상에서 큰 틀의 합의를 먼저 한 뒤 세부 내용을 협상으로 결정한다는 ‘2단계 합의론’이 제시돼왔다.

 

안 장관은 이에 대한 질문에 “잠정 합의와 관련해 오늘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며 “‘양해에 관한 합의’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다만 안 장관은 “다음주에 (실무진이) 기술적 협의에 들어간다는 합의는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최선이 제안을 가져왔다는 베센트의 발언을 놓고는 “저희가 이번에 설명한 내용 중에 특히 조선 산업 협력의 비전에 대해 상당히 공감대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 이본영 선임기자 >

 

“미, 6월 알래스카 LNG 회담서 ‘한·일 투자’ 공식 발표하게 압박”

 

 
 
알래스카에서 석유 시추 중인 시설의 모습. 2007년 촬영됐다.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 등에 알래스카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백악관의 에너지위원회가 알래스카 천연가스(LNG) 프로젝트와 관련해 6월2일 알래스카에서 개최예정인 고위급 회담에 한국과 일본의 통상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업 참여 등을 발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은 일본과 한국이 이날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관련 투자 또는 구매 의향서(LOI)에 서명했다고 발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대만 국영 에너지회사인 대만중유공사(CPC)는 미국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와 천연가스 구매·투자의향서를 체결한 바 있다. 지난해 수입한 총 액화천연가스 양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00만톤 가스를 구매하기로 했다.

 

트럼프 정부가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가스관 사업. 북극권 유전에서부터 알래스카 남부로 파이프라인 1300㎞를 연결해 운송한 뒤 액화해 국내용과 아시아 수출용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뉴욕타임스 갈무리

 

트럼프 정부가 국가별 관세 협상에서 에너지 수출 문제를 주요 의제로 제시한 가운데, 자국에서의 석유와 가스 생산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표 방안이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사업이다. 북극권에 있는 알래스카주 노스 슬로프 유전에서 생산된 가스를 1300㎞ 길이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해 알래스카 남쪽에서 액화시킨 뒤 이 액화천연가스를 국내에서 사용하거나, 아시아 국가들에 선박을 이용해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 사업비는 약 440억 달러 규모다. 20~30년 전부터 사업이 추진되어왔으나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 부담과 불확실한 경제성 등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원만하게 추진되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월20일 취임 첫날 파이프라인 건설을 포함한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주요 사업으로 급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요구하는 동시에 무역 관세 정책을 앞세워 이 사업에 참여할 것을 강권하고 있는데, 참여를 원하는 국가로 한국과 일본을 콕 짚었다.

 

지난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알래스카에서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인 거대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며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알래스카산 천연가스의 소비자가 될 수 있는 타이와 한국 정부 관계자가 2주 안에 알래스카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무역대표부(USTR)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워싱턴 재무부 청사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양자회담을 마친 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알래스카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대해서 “모든 고려 사항을 다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고 사업 타당성이 현 시점에 나오기가 쉽지 않다”며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정밀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서 사업을 할 수 있는지와 천연가스 수입 확대 물량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지 실사를 해서 현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는 걸로 이해하고 있다. 실사단의 실사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최우리 기자 >

 

‘환율 문제’ 미·일은 논의 안 한다는데…최상목 “핵심 협상 대상”

 

 
 
25일 일본 도쿄 한 전광판에 엔-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미국 관세 협상 책임자인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엔-달러 환율의 구체적 수준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재확인하면서 미·일 관세 협상에서도 통화 문제가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첫 관세 협상에서 통화 정책을 포함해 ‘패키지 협상’에 나서기로 한 것과 대비된다.

 

24일(현지시각)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은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베선트 장관과 50여분간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 쪽에서 엔·달러 환율 수준 목표나 관리에 필요한 틀 등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며 “환율 문제에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그는 “환율 관련 데이터는 시장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며 환율의 과도한 변동은 경제·금융 안정성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미국 정부와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가토 재무상은 다음달 1일로 예상되는 미·일 관세 2차 협상을 앞둔 데 대해 “현재 진행 중인 미·일 무역(관세) 협상과 관련해서도 환율 문제는 지속적이고 긴밀하면서 건설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를 문제삼으며 달러 대비 엔화 가치 약세가 미국산 제품 수출에 어려움을 준다는 입장을 잇따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가토 재무상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엔 약세-달러 강세가 문제라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환율 관련 미국 쪽 요구는 ‘전혀’ 없었다”는 대목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도 이날 가토 재무상과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환율의 구체적 목표를 일본 쪽에 요구할 의도가 전혀 없다”며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선진 7개국(G7) 합의를 일본이 준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만 밝혔다. 앞서 엔-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첫 테이프를 끊은 미·일 관세 협상에서 현안이 될지 여부로 주목받았다. 일본 쪽 관세 협상 책임자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1차 협상 뒤 “환율은 거론되지 않았다”며 “환율은 펀더멘털을 반영해 결정되는 것으로 (일본 정부가) 시장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없는 만큼 특별히 언급할 내용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1차 협상 때 논의되지 않은 게 확인된 뒤에도 2차 협상 때 다시 거론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일 관세 협상의 키를 잡은 베선트 장관이 환율 문제를 관세와 연결짓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달리 원-달러 환율 문제가 관세 협상의 한 축이 됐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시각 기준 24일 미국 워싱턴 디시(D.C.)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한미 2+2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7월 패키지’를 마련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가지 분야가 핵심 협상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두 나라는 환율 정책과 관련해 각각 기재부와 재무부간 별도로 논의하고, 조만간 실무협의를 예정했다. < 도쿄 워싱턴/홍석재 김원철 특파원 >

 

최상목 “한미, 관세 폐지 위한 ‘7월 패키지’ 마련 공감대”

상호관세 유예 종료되는 ‘7월8일’까지
관세·경제안보·환율 등 4개 분야 협의키로
방위비·대중국 압박 동참은 논의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상대국을 상대로 고율의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한-미 간에 첫 고위급 회의가 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재무부에서 열렸다. 회의에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부터)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한·미 양국이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조치 종료 기간인 ‘7월8일’을 데드라인 삼아 상호관세 및 품목별 관세 폐지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국 정부가 밝혔다. 논의 대상은 ‘관세·비관세조치’ 등 4개 분야다.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대중국 압박 동참 요구 등은 논의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았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D.C.) 주미대사관에서 진행한 ‘한미 2+2 고위급 통상 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7월8일 이전까지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줄라이(7월) 패키지’를 마련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해 나가는 데에도 한미가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협의의 출발점인 ‘2+2 회의’를 통해 협의 과제를 좁히고 논의 일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협의의 기본틀, 즉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 디시(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2+2 고위급 통상 협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 기자단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 통상협의’에 이어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와 별도 면담을 갖고 “상호관세 및 일체의 관세를 면제해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고 밝혔다. 다음달 15일부터 이틀간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와 안 장관 간 추가 고위급 협의도 잡혔다.

 

환율정책과 관련해 최 부총리는 “한국 기재부와 미국 재무부 간 별도로 논의해 나가기로 양국이 합의했다”며 “조만간 실무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협의에선 자동차와 조선분야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최 부총리는 “특히 우리 경제에 부정적 효과가 가장 큰 자동차 분야에 대해 중점 설명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조선 산업 협력의 비전에 대해서 상당히 공감대를 나타낸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줄라이(7월) 패키지’가 의미하는 ‘7월8일 협상 데드라인론’과 관련해 다소 다른 입장을 보였다. 베선트 장관은 ‘2+2 협의’ 뒤 백악관에서 “오늘 우리는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 회의를 가졌다”며 “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이르면 다음 주부터 기술적인 조건들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며, 다음 주 중 ‘이해에 기반한 합의’(agreement on understanding)에 이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인들은 일찍 (협상하러) 왔다. 그들은 자기들의 최선의 제안(A game)을 가져왔고 우리는 그들이 이를 이행하는지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상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최 부총리는 “4개 분야로 한정해 7월8일까지 협상하자는 ‘줄라이 패키지’에 미국이 공감한 게 맞는다”고 거듭 확인했다. 베선트 장관이 밝힌 ‘이해에 기반한 합의’라는 표현과 관련해 안 장과은 “통상 분야에서 쓰는 표현이 아니다.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라며 “‘다음 주부터 실무 협의를 공식적으로 개시하기로 합의가 될 것’이라는 걸 설명하려고 쓴 표현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한겨레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