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나 근육은 ‘부수적’
세포재생 돕고 뇌 활성화
활력 증진시켜 노화 늦춰
적합한 운동찾아 꾸준히…

운동이 왜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거의 모든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며 호전시키는 처방으로 운동이 권고되는 것은 그만큼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래서 누구나 당장이라도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운동은 해야 하고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새해 또 다시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그 작심삼일을 반복한다는 각오라도 하고서 운동을 하고, 운동으로 건강을 지켜나가자.
살펴보면 우리 주변 환경은 운동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집이나 직장 주변에서 피트니스센터를 쉽게 볼 수 있고, 운동과 관련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마음만 먹고 약간의 시간과 비용만 투자하면 뱃살은 쏙 빠질 것이고, 당과 콜레스테롤 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삶에 활력이 솟아남은 물론이다.


당장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선 그와 같은 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자각하는, 즉 내가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먼저 강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내 몸에 장차 어떤 악영향이 초래될지 예측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런 다음 운동을 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없다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운동을 찾아서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요령과 지식을 알아보고 점진적으로 실행해 나가도록 한다. 적합한 운동이란, 자신의 체구와 체력, 기구와 여건,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및 효과 등을 감안해 보면 된다.
흔히 운동이라고 하면 주로 날씬한 몸매나 보기 좋은 근육만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심미적 효과에 국한되는 것으로, 운동의 다양한 효과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일정 강도’ 이상의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누구나 심미적 효과에 가려진 더 많은 부수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운동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결실은 근지구력이나 심폐지구력 등 각종 신체능력의 향상이다. 간단히 말해 운동을 하면, 더 힘이 세지고, 좀 더 멀리, 좀 더 많이 뛸 수 있다는 뜻이다.


힘이 세지고 많이 뛸 수 있다는 것은 남들은 힘들어하는 병뚜껑을 가볍게 따거나 아들의 운동회에 가서 다른 학부형들을 이기는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루 종일 힘차게 그리고 긴 시간을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축 처진 어깨와 게슴츠레한 눈빛이 아닌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일정 강도’ 이상의 ‘꾸준한 운동’은 체지방 및 체중 감소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질병 발생 요인을 감소시킴은 물론 심미적 효과와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정직하기 때문에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하다. 섭취하는 칼로리에 비해 소비하는 칼로리가 많아야 살이 빠지며, 건강하게 살이 빠지려면 이 두 항목 간의 적절한 조절과 균형이 필요하다. 따라서 운동과 함께 식생활 관리도 뒤따라야 한다.
이 같은 운동의 일차적 목표로 건강 유지가 이뤄진다면 거기에 이차적인 원대한 효과는 노화의 속도를 늦춰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몸 속의 세포는 일정 강도 이상의 꾸준한 움직임을 통해 계속 자극받으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에 비해 재생 주기가 빨라진다. 이는 좀 더 팽팽한 피부 조직이 유지되고, 나이가 들어도 젊었을 때처럼 더 많이 지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정 강도 이상의 꾸준한 운동은 뇌세포를 자극하고 세포 소멸을 억제해준다. 이는 더 많은 지식을 계속해서 습득하고 저장하며 보다 현명한 사고를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머리가 나빠지지 않고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리드미컬한 운동은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시켜 준다. 세로토닌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세로토닌이 충분히 분비되면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곧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흔히 말하듯 식스팩을 만들고, 날씬한 몸매를 만든다는 것은 운동 효과의 극히 일부분이며 자연스러운 부산물일 뿐, 더 크고 유익한 효과가 많다는 이야기다. 혹시 운동을 외면하고 있다면, 당신이 모르는 사이 몸이 빠르게 늙고, 병소들이 차츰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생활이 힘들고, 늘 지쳐 있다면 그 조짐으로 보아야 한다.


새해 새 아침, 바로 오늘부터 운동을 하자. 단잠이 피로를 풀어주듯, 운동이 지금 겪고 있는 많은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운동은 우리의 삶에서 선택 사항이 아니다.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충실히 이행해야 할 본능이면서도 그 부수효과가 너무나 많은 건강의 필수요소다.


불확실성 크나 완만 성장 예상

● Biz 칼럼 2018. 1. 16. 20:50 Posted by SisaHan

새해 세계 경제는 미국의 세금삭감 계획, 북미자유무역을 포함한 주요 무역협정의 재협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글로벌 금리인상, 북핵 위험 등 지정학적인 변수 등으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상황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미국이 성장을 주도하면서 전년과 비슷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는 캐나다의 주요 이슈를 중심으로 새해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관해 알아 본다.


올해 캐나다 경제 전망은…

금리 인상, 경기 회복세·미국 추이 영향
대출규제 부동산 압박‥ 환율 전반엔 약세

먼저 지난 해 상반기까지도 캐나다 경제는 선진국 그룹인 G7국가 중 경제상장을 선도할 만큼 높은 성장세를 보였으나 과열된 부동산경기를 진정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등으로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크게 둔화되었다. 그러나 유가와 금속 원자재들의 가격이 상승하는 등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들에 힘입어 지난 해 경제는 3% 수준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새해에는 모기지 스트레스 테스트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금리 인상, 주택건설투자 감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내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연방 및 지방정부들이 사회간접자원인 인프라 투자지출을 확대함에 따라 경제성장의 마이너스 요인들을 상당부분 커버할 것으로 보이며, 작년부터 회복되기 시작한 에너지기업들의 비즈니스투자도 미국의 캐나다 제품에 대한 수요증가와 함께 늘어날 것으로 보여 새해 캐나다 경제는 2%내외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분야별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캐나다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금년에 금리가 얼마나 오를 것인가이다. 금리는 주요 경제정책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예금 및 모기지 이자는 물론 모든 투자와 국가 간 자본이동, 환율 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소비자부채가 사상 최고 수준인 캐나다 국민들에게는 적은 금리변동에도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캐나다는 작년 하반기에 2차례에 걸쳐 금리를 0.5%에서 1%로 인상한 후 현재까지 동결된 상태에 있다. 새해에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 예상되기 때문에 현상태를 유지하다가 회복세로 돌아서는 중반 이후 두어 차례에 걸쳐 1.5% 수준까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경제가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여 3~4차례에 걸쳐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만일 미국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성장하여 금리가 큰 폭으로 올라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1%이상 된다면 미국으로의 자금이동을 막는 차원에서도 캐나다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새해 경제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지난 해 온타리오 주정부는 부동산시장이 과열상태가 되자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BC주 처럼 외국인의 부동산구입에 대해 15%의 추가 세금를 부과하기로 한 이후 부동산시장은 크게 냉각된 상태에 있다. 더욱이 새해부터는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모기지 갱신(모기지 대출기관을 변경할 경우)을 포함하여 모든 모기지에 대해 계약금리보다 2%정도 높은 이자를 기준으로 심사하여 모기지 금액을 결정하도록 하는 모기지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도록 의무화하였다. 또한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부담과 함께 모기지 금액의 축소(최고 모기지 가능금액의 약 20%)로 부동산시장이 폭락할 가능성은 적지만 적어도 올해까지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는 유가, 금속, 식품 자원 등 불안요인도 있지만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제의 글로벌화와 비즈니스의 전자상거래 가속화 등으로 물가상승을 완화시키는 요인도 있어 전반적으로는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 투자의 글로벌화로 중국 등 저가제품 수입 증가와 인공지능 등 자동화기술 진보에 의한 생산성 향상으로 생산비용 감소, 정보통신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하락, 전자상거래의 급성장에 따른 기업 간 경쟁심화로 인한 제품가격 하락 등은 물가상승을 상당부분 중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환율은 작년 하반기 이후 유가상승과 금속 등 자원가격 상승 등에 힘입어 캐나다 달러화도 미화대비 가치가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새해에는 미국의 세금개혁에 따른 해외자금의 미국송금 증가, 미국의 금리인상 등으로 상반기에는 미화 대비 약세를 유지하다가 하반기에는 캐나다도 금리 인상을 하고 경제도 다시 호전되면서 다시 상승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여 환율이 미화 당 75센트에서 80센트 사이에서 변동할 것으로 보인다.

< 김경태 - 경제학박사, Global Maxfin Capital/Investment. Inc. >


시사 한겨레가 캐나다 땅에 첫 선을 보인지 어언 열 두 해가 됐습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지나 온 발걸음들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습니까. 초창기 다소 생경한 신문논조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 이들도 있었고, 거북한 말투로 걸려 온 전화도 귀에 생생합니다. 모처럼 제대로 된 기사들을 본다며 반가워하고 힘내라고 격려 해준 분들도 물론 많았습니다. 그렇게 비판이든 응원이든 모두가 관심과 배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려니, 돌아보면 정말 고맙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제 12살 연륜을 쌓은 오늘의 시사 한겨레는 바로 그런 모든 분들의 은덕으로 풍랑을 헤치고 눈비 속에 담금질 해왔다고 믿어,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처음 닻을 올리면서부터 저희가 간직해 온 소망이 있습니다. 여건이 녹록치 않고 체구는 작을지 몰라도 본령에 충실한 참 언론의 모습입니다. 바르고 정의로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당돌한 꿈입니다.
우리 주변은 언론과 정보가 넘쳐납니다. 매섭고 값진 기사가 있는 반면에, 눈속임의 달콤한 독성뉴스, 치우친 보도로 판단을 흐리고 여론을 호도하는 신문들, 이념과 권력에 경도된 관변언론까지, 독자들을 오도하고 마비시키는 언론 홍수가 가치판단과 분별의 지혜를 요구합니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 치열한 보수와 진보의 논전만 보아도, 한 쪽만 비대하고 자기들만 선(善)을 주장하는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양 날개가 조화롭게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라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날아오를 텐데 말입니다. 기울어지고 홍수난 운동장에는 바로 잡고 일깨울 파수꾼의 외침이 절실합니다. 진정성 있는 외침이라면 비록 작은 목청일지라도 귓전을 때려 호응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지, 저희의 꿈이 바로 그런 겨자씨 같은 역할이었으면 하는 비전에 다름 아닙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민 1세대는 애국 향수와 독재 시대에 익숙했던 사고의 경향이 강합니다. 정통성 없는 역대 정권들의 공공연한 작용도 무관치는 않습니다. 그렇게 소위 보수 편향의 풍토에, 종래와는 결이 다른 논조의 신문으로 변화의 씨를 뿌려보겠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모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 날개론’의 관점은 물론이려니와, 의식의 다변화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들 사고 수준의 ‘업그레이드’라는 기대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정말 의미있는 도전이 아니겠습니까?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저희 신문의 지난 면면들을 살펴보면 우리네 발자취가 시사 한겨레라는 소박한 거울에 투영된 모습들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판단은 어떨지 자못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시사 한겨레에 익숙해져서 친근감을 느끼고, 양호하다 평가하신다면, 기울어진 언론지형에 긍정적 변화의 조짐은 아니겠는지요. 신문에 비친 사회상에 눈을 돌려 봅니다. 최근 한국의 격동 정국에서 정권이 세월호 은폐에 몰두할 때 이 곳에서 규탄과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탄핵을 외치며 해외 어느 지역보다 뜨겁게 타오른 촛불의 열기에서도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들을 읽는다면 ‘아전인수’의 시각일 뿐인지…,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말입니다.

1700만 촛불혁명으로 한국은 이제 정상화의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는 지난 정권들의 적폐는 상상 이상입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 헌신했어야 할 지도자와 그 정부의 행태는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었습니다. 공적 시스템과 국민세금을 사적 이익추구의 방편으로 사용하며 불법과 편법을 남발했습니다. 그러고도 뭘 잘못했느냐는 적반하장입니다. 저들의 그런 불법과 편법,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일까요? 그 키워드가 바로 ‘언론장악’임은 공지의 사실입니다.
권력의 일탈에 눈감고, 나팔수에만 충실했던 방송과 신문들. 그 훼절과 굴종의 모습들은 “이게 나라냐”는 질타를 빼닮은 “그게 언론이냐”라는 말에 압축됩니다.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고 권력에 야합하면서 감시와 비판은 사라졌고, 권력의 폭주에 편승해 소수의 가진 자와 누리는 자들만의 편리한 도구로 전락한 폐해는 해외 한인사회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문을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 것은 지면에 사회상을 담기도 하지만, 사회에 ‘빛’을 비춘다는 뜻도 있을 겁니다. 그동안 일부 언론은 기득권과 권력중심, 가진 자 위주의 기사들로 편향된 시야만을 보이면서 자기들만의 세상에 화려한 빛을 비췄습니다. 그러나 바른 언론의 모습은 그게 아닙니다. 그래선 안될 것입니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 풀뿌리 민초들의 소리를 담아내며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설파해야 합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고 합니다. 옳고 바르게, 선하고 정의로운 기사로 어두움에 빛을, 후패하는 곳에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요즘 모국의 사정이 말해 주듯이, 모든 것이 정상화되고 파사현정(破邪顯正) 하려면, 적폐 세력과의 철저하고 중단없는 싸움이 불가피 합니다. 참된 언론의 길도 가시밭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과 행동하는 정의감으로 꿋꿋이 헤쳐 나가야 할 명제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바른 언론의 소임이 시대나 지역, 사세가 크고 작음에 좌우될 리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언론과 언론인의 최우선 덕목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되새기는 저희의 다짐도 ‘빛과 소금’의 덕목입니다. 지금까지 간직해 온 참 언론의 소담한 꿈을 더 키우며 한걸음씩 묵묵히 나아가고자 합니다. 열악한 여건에서 멀고 험한 길이지만,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나아가려 합니다.
옷깃을 다시 여미는 시사 한겨레에 변함없는 편달과 성원을 당부드립니다.

< 김종천(金鍾天) 발행인 겸 편집인 >


영화 <1987>은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해 열사의 죽음으로 끝난다. 1987년 1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숨진 박종철과 그해 6월 최루탄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이한열은 독재의 잔혹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열사’들이 무수히 출현하던 5공화국의 마지막 시기를 영화는 담고 있다. 꽃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이 분노가 철옹성 같던 군부독재를 무너뜨렸다. 경찰에 쫓기는 시위학생을 숨겨주는 신발가게 아줌마, 그리고 연희(김태리)가 버스 위에 올라서 바라본 서울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은, 그 시기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민주 진영의 힘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토록 뜨거웠던 국민 열망에도 민주화는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직선제 개헌에도 불구하고 그해 12월16일 대선에선 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 몇달 전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는 전태일부터 이한열까지 26명의 민주열사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문 목사는 열사의 호명이 마지막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 뒤로도 훨씬 더 많은 ‘열사’들의 출현을 막을 수는 없었다.
87년보다 더 참혹했던 시기는 1991년이었다. 1991년에만 15명이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 숨을 거뒀다. 그중 명지대생 강경대는 경찰 폭력에 의해 숨졌고, 성균관대생 김귀정은 시위 도중 경찰에 쫓기다 사망했다. 국가 폭력에 의한 죽음은 87년이나 91년이나 크게 다를 게 없었다. <1987>이 보여주는 감동스러운 장면의 뒤편엔, 그 이후에도 길고 길게 이어진 폭압과 고통의 역사가 소환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1987년 6월의 ‘짧은 승리’는 더욱 가슴 아프고, 마음을 시리게 한다.


‘열사’라는 단어가 신문 사회면에서 사라진 건 1999년 들어와서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반세기 만에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일 터이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민주정부 탄생’이란 열매를 맺는 데 꼭 10년이 걸린 셈이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직후 이재경씨는 창간 준비 중이던 한겨레신문을 찾아와 “한판의 선거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고 토로했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라는 한겨레 창간준비위원회의 유명한 신문광고 카피는 그로부터 탄생했다. 맞다. ‘한판의 대통령선거’로 민주주의를 이룰 수는 없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민주화가 ‘한판 승부’가 아닌 건, 1987년이나 2017년이나 다르지 않다. 광장을 밝힌 수백만 촛불의 힘으로 무도한 권력자를 내쫓고 다시 ‘민주정부’를 탄생시켰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2017년 대선의 압도적 승리가 정치·사회개혁 과제의 성공을 담보하진 못한다. 박종철 이한열 이후의 수많은 죽음을 떠올린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987년엔 정치적 자유 확대에 주력했다면, 지금은 그때 놓쳤던 사회경제적 평등과 분배의 가치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촛불이 외친 건 단지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라,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정의의 실종과 부의 대물림, 양극화의 심화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였기 때문이다. 과제는 산적해 있고 저항은 훨씬 더 거세다. 검찰개혁 핵심으로 꼽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은 국회 법사위에 묶여 한발짝도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는 ‘좌파의 국가안보 포기 선언’이라는 야당과 극우보수 진영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87년 개정한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문구를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 실현’으로 바꾼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초안을 두고, 어느 보수신문은 ‘국가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개념을 빼거나 수정한 좌편향 개헌안’이라 공격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란 표현이 국기를 흔든다는 엉터리 주장은 ‘빨갱이 잡는 걸 방해하면 모두 빨갱이’라는 <1987>의 박처원 치안감(김윤석) 시각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흘렀어도 민주주의 가치를 핵심에 둔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30년 전의 신문광고 카피를 다시 꺼내 읽는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운동화 끈을 바싹 조일 때다.

< 박찬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