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 합의 TF가 밝혀야 할 쟁점

일본정부 법적책임 인정 못받고 20년 전 사과 수준 추락한 합의
막판에 청와대가 타결주도 의혹
일본정부가 내놓은 10억엔과 소녀상 철거 이면합의 여부도

오태규 위원장 “필요하면 모두 면담”

2015년 12월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마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위원장 오태규·이하 티에프)가 31일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국가 간 맺은 외교적 합의에 대해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티에프가 검토 작업을 벌이는 것 자체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12·28 합의를 둘러싼 의혹과 쟁점이 많은 탓이다.

12·28 합의의 치명적인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노 담화(1993년)-무라야마 담화(1995년)-간 나오토 담화(2010년)를 거치며, 사과와 반성을 넘어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다가서던 일본의 태도는 12·28 합의로 다시 20년 전 ‘사과’ 수준으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왜 이런 내용에 서둘러 합의했는지에 의혹이 쏠리는 이유다.

티에프가 밝혀내야 할 쟁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풀기 위해 2014년 4월 국장급 협의를 시작했다. 당시 협의의 주체는 외교부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막판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직접 나서 합의 협상·타결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석달만 시간 여유를 주면 개선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박 전 대통령에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증언까지 나온 터다. 협상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왜 서둘러야 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12·28 합의는 인권에 관한 내용인데도 군축협상에서나 나올 법한 용어가 등장한다. 합의 발표 당시 정부는 일본 정부의 (합의 이행) 조처를 전제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지난 1993년 8월 발표된 고노 담화는 ‘위안부’ 제도의 비극을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게 뼈대였다. 하지만 12·28 합의가 공개된 직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 아들이나 손자들에게 계속 사죄를 할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2·28 합의가 ‘망각을 위한 합의’로 비판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종적·불가역적’이란 말이 합의에 들어간 과정이 밝혀져야 할 이유다.

12·28 합의 이전부터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이전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합의문 발표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소녀상에 대해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언론 쪽에선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내놓은 ‘10억엔’이 소녀상 이전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소녀상 철거·이전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합의 이행 과정도 눈여겨봐야 한다. 합의 체결 이듬해인 2016년 1월 피해 할머니들은 “사과 없는 일본 쪽 10억엔은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부는 같은 해 7월 말 이 자금을 바탕으로 화해·치유재단을 출범시켰다. 한달 뒤인 지난해 8월 강일출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 할머니 12명은 12·28 합의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반면 일본은 12·28 합의 때 밝힌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이어갔다. 합의 발표 당시 일본 쪽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일본 정부는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제출한 바 있다. 지난 5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12·28 합의 수정을 권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티에프의 오태규 위원장은 “결론을 상정하고 활동하는 게 아니다”라며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관계자는 어디 소속이든 모두 면담하자는 게 기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2·28 합의 과정에 있는 모든 걸 검토한다고 이해하면 된다”며 “법 절차를 준수하는 범위 안에서 외교문서도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사정에 밝은 한 일본 전문가는 “12·28 합의의 내용도 문제지만,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불투명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며 “티에프가 해법을 내놓을 순 없지만, 합의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합의 과정의 불투명성을 해소하면 붕괴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은 이날 성명을 내어 “외교부는 피해자·지원단체와 소통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온 법·역사·여성학자들은 배제한 채 국제정치·외교 전문가 위주로 티에프를 구성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재단 쪽은 이어 △12·28 합의 졸속 발표 이유 △합의 도출 과정 △10억엔 거출 경위 △소녀상 관련 일본 쪽 요구사항과 한국 정부 대응 등 7개항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촉구했다.

< 정인환 김미향 기자 >


중국 ‘죽은 류샤오보’도 경계

● WORLD 2017. 8. 1. 17:13 Posted by SisaHan

반정부시위 우려 ‥ 사망 이틀만에 화장해 ‘수장’

생전에 류샤오보를 결박했던 중국 당국이 사후엔 그의 주검을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지웠다. 중국 정부가 지난 13일 숨진 류샤오보를 이틀 만에 화장해 바다에 뿌리게 한 것과 관련해, 그의 묘역이 ‘민주화의 성지’가 될 가능성을 사전 차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AP> 통신 등 외신은 “류샤오보의 형 류샤오광이 15일 오후 중국 당국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날 오전 동생의 시신을 화장하고 정오께 유해를 바다에 뿌렸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류샤오광은 당국이 동생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인도주의적 배려를 해줬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화통신>도 이날 류샤오보의 주검을 화장하기에 앞서 류샤와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단한 장례 의식이 열렸고, 가족의 뜻과 지역 풍습에 따라 유해를 바다에 뿌렸다고 보도했다.

류샤오보의 지인들은 평소 고인과 소원한 관계였던 류샤오광과 중국 쪽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뉴욕 타임스> 등 외신은 유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화장을 강행했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중국 장례 풍습대로 류샤오보의 주검을 7일간 보존하려 했으나 당국이 서둘러 화장을 치르게 했다는 것이다. 홍콩 소재 중국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는 16일 오전 누리집을 통해, 류샤가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데 동의하지 않았으며 기자회견이 가능해지면 직접 밝힐 것이라는 류샤 친척의 말을 전하고 당국이 류샤오보의 친필 원고와 책, 서평 등 옥중 유품을 류샤에게 넘기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는 “(류샤오보의 무덤이) 공산당에 저항하는 시위대를 집결시키는 자석이 될까 우려했다”고 풀이했다.


바다에 수장하는 유해를 슬피 바라보는 아내 류샤.

타계한 ‘중국 민주화 상징’ 류샤오보

“내겐 적도, 원한도 없다”

중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류샤오보는 13일 오후 5시35분 아내 류샤, 형 류샤오광, 동생 류샤오쉬안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아내 류샤에겐 “잘 사시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938년 나치 수용소에서 숨진 독일 평화주의자 카를 폰 오시에츠키에 이어 두 번째로 구금된 상태에서 사망한 노벨상 수상자다.
“나에겐 적이 없다. 나에겐 원한도 없다.” 류샤오보가 평생 강조한 이 말엔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에서 출발해 30년 가까이 수없는 탄압과 고통 속에서도 중국의 억압적 현실을 바꾸기 위한 분투를 멈추지 않은 강력한 ‘저항’ 정신이 담겨 있다. 그는 중국 당국에 의해 지워진 ‘천안문 정신’의 산증인으로 끝까지 천안문의 이상에 충실했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놨다. 여러 차례 해외로 망명할 기회가 있었으나 끝까지 중국에 남아 뿌리내리고 분투하길 원했다. 그의 죽음은 중국 체제 내에서 민주화 개혁을 꿈꿨던 희망의 종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955년 12월 지린성 창춘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문화대혁명(1966~76년) 때 하방(下放·지식인을 농촌 등 노동 현장으로 보냄)돼 건축 노동자로 일했다. 문혁이 끝난 뒤 1977년 지린대 중문과에 입학했고, 베이징사범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리쩌허우에 도전하는 글을 발표하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문화에 대한 미학, 문화 평론들을 내놓으면서 촉망받는 스타 학자이자, 평론가, 시인으로 떠올랐다. 1989년 봄, 그의 인생도 중국 사회도 큰 전환점을 만났다. 천안문광장에서 민주화와 부정부패 타파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썬크림 충분히 바르는 게 좋아

● 건강 Life 2017. 8. 1. 17:08 Posted by SisaHan

여름철 강한 자외선… 피부를 지키자

여름철 야외활동이 많아지면서 강한 자외선이 신경을 쓰게 만든다.
일부에서는 건강을 위해 햇볕을 자주 쬐는 게 좋다며 실외 활동을 권장하기도 하지만 햇볕이 좋고 자외선이 강한 날 오랜 야외활동을 하다간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거나 따끔거리고 벗겨지고, 심지어 피부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여름철 한층 강해지는 자외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풀어본다.


◆ 비타민 D 보충은 15분 일광도 충분: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가장 긴 파장(320∼400nm)의 자외선A(UVA), 중간 파장(290∼320nm)의 자외선B(UVB), 가장 짧은 파장(200∼290nm)의 자외선C(UVC)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자외선B는 비타민D 합성을 통해 칼슘의 흡수에 도움을 주고 멜라토닌 분비 조절을 통해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등의 유익한 역할도 한다. 칼슘 대사와 뼈 건강에 중요한 비타민D의 90%를 피부에서 만드는 만큼 자외선B는 좋은 역할도 하는 셈이다. 특히 동양인은 비타민D 부족이 많아 햇빛을 자주 쬐어줘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비타민D 합성을 위해서라면 여름에는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하루 15분 정도, 겨울에는 30분 정도 햇빛을 쬐면 충분하다. 다만 여름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는 햇빛이 너무 강해 일광화상의 위험이 있는 만큼 이 시간을 피해 일광 노출을 하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반대로 이 시간대 일광욕이 더 좋다.
전문의들은 “하루 30분 일광 노출도 어렵다면 비타민D 섭취나 근육 주사를 통해 보충할 수 있다”며 “비타민 섭취 시, 비타민 D2보다는 피부에서 만드는 비타민 D3가 포함된 제재를 먹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 자외선이 피부암 발생률 높여: 비타민D를 이유로 필요 이상의 자외선을 받게 되면 기저세포암, 편평세포암, 악성 흑색종 등 피부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 자외선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자외선A는 기미, 주근깨와 같은 색소질환 악화와 피부 건조·피부암을, 자외선B는 광노화, 피부암 발생은 물론 일광화상과 홍반을 일으킨다. 최근 피부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피부암의 발생률은 오랜 시간 자외선 노출로 증가하기도 하지만 강한 자외선에 노출될 경우도 증가한다.
전문의들은 “평생 자외선으로부터 받는 피부 손상의 80%가 18세 이전에 일어나는 만큼 어렸을 때 자외선 차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양산·긴팔 옷보다 차단제가 효과적 : 자외선 차단에는 옷, 스카프, 양산 등을 이용한 물리적인 차단 방법도 좋은 방법이지만 자외선A의 경우 얇은 천은 투과할 수 있고 반사되는 자외선도 있으므로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편리한 방법은 자외선 차단제라고 할 수 있다.
자외선 차단제는 성분에 따라 아연, 티타늄 등의 금속성분이 포함된 무기 자외선 차단제와 그렇지 않은 유기 자외선 차단제로 나눌 수 있다. 무기 자외선 차단제 성분은 빛에 대해 안정적이어서 비교적 오래 유지되고 전신 흡수가 되지 않으며 피부트러블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등 많은 장점이 있으나 발랐을 때 하얗게 뜨는 ‘백탁 현상’이 큰 단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백탁 현상이 적은 제품들도 나와 편하게 바를 수 있다. 만 2세 미만의 유아, 민감성 피부의 경우에는 무기 자외선 차단제를 쓰는 것이 좋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피부와 점막에 모두 자극이 적은 산화티타늄 성분이 들어간 자외선 차단제가 낫다.


◆ 차단제는 2시간 간격 덧바르는 게 좋아 : 일반적인 생활환경에서 자외선 차단제 정량을 적절한 시간 간격을 두고 덧바를 수 있다면 여름에도 SPF30, PA++ 정도의 제품이면 충분할 수 있다. SPF30인 제품보다 SPF60인 제품이 피부에 닿는 자외선의 양이 절반으로 감소하며 같은 양 발랐을 때 피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지속 시간도 2배 정도 길기 때문이다.
피부에 바른 자외선 차단제가 일정한 두께로 골고루 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외출 15∼30분 전에 바르는 것이 적당하며, 2시간 간격으로 덧바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자외선 차단제는 오래 효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자외선 차단 성분 입자에 오일막을 입히는 공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클렌징 오일과 클렌징 폼으로 2중 세안한다.


◆ 차단제 바르면 여름 피부시술도 무방 : 여름철이면 자외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겨울에 비해 자외선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철이나 비가 오는 날이이어도 한여름 맑은 날의 60∼70% 수준의 자외선에 노출된다. 태닝된 자동차 유리를 통해서도 70%, 얇은 커튼을 통해서도 40%의 자외선이 투과된다.
결론은 자외선 차단제를 사시사철 잘 바르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철에 색소 레이저를 하고 차단제를 바르지 않을 생각이라면 여름에 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게 훨씬 낫다.


노승환 담임목사(뒷줄 왼쪽)와 함께 한 밀알교회 안수집사·권사 임직자들.

밀알교회, 안수집사 2·권사 6명 등 8명 임직식

밀알교회(담임 노승환 목사)는 7월16일 주일 오전 10시30분 2부 예배 시간에 안수집사와 권사 8명의 임직식을 거행했다. 이날 임직식에서는 류형모·문재국 집사가 안수집사로 장립하고 강석주·김윤숙·박미순·윤혜자·조병금 집사가 권사로 임직했으며, 김순희 권사가 취임했다.


이날 예배에서 설교한 노승환 목사는 마태복음 7장 17~28절과 23장 25~28절을 본문으로 ‘영적 오해들- 죄 져서 죄인이고 착한 일 해서 의인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노 목사는 말씀 가운데 특히 임직자들을 향해 ‘주님 닮아가는 성품’을 강조했다. 노 목사는 “영적으로 깊어지는 것은 외적 행위로써가 아닌,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안과 밖,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내적 성품이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고 전하고 “직분자는 교회에서 사역을 잘하는 것도 좋으나, 일 잘하고 실력과 능력이 있는 자를 뽑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품어주고 화평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를 세우는 것”이라며 “직분자의 본질적 역할은 교회가 푸근하고 아늑해지게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자들로, 억울하고 오해도 받고 아픔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겠지만 더 많은 수고와 인내와 희생과 섬김으로 화평과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할 성령충만의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씀을 주었다.
이날 임직자들은 서약을 하고 안수기도를 받았으며, 1부 예배와 3부 예배에서는 성도들에게 인사했다.


< 문의: 416-226-4190 >